2009년 / 4월
윤씨 부인의 교훈
최근 기업인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이리저리 돈을 받은 사람들이 구설에 올랐다. 여야를 막론하고 펼쳐진 그의 정치권 로비 수사로 대한민국 상위층들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전직 대통령과 부인, 그리고 아들까지 수사대상에 올라있으니 서민들로서는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할지 참으로 서글퍼진다. 물론 수사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돈을 받은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하다 못해 미래의 어떤 일에 대비한 보험금 성격이라도-없이 받았으리라 추측하지는 않는 듯 하다.
하나같이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어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소박한 서민들로서는 억장 무너지는 배신감과 끝도 없는 허탈감에 한숨만 쉬게 된다. 힘들게 번 돈을 아끼고 아껴 훗날 어려운 이들에게 베풀었던 자린고비와 같은 구두쇠 이야기나, 크진 않지만 가진 전재산을 기부하고 돌아가신 독거노인의 이야기는 마치 딴 세상 이야기인 것 같다. 크든 작든 뇌물(賂物)을 받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행위는,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베풀고 나누며 살아가려는 선한 보통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기는 커녕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남들이 번 것을 힘들이지 않고 받아 사리사욕을 채운 부도덕한 작태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뇌물(賂物)의 한자 중 뇌(賂)자의 유래를 보면 조개 패(貝) 에 각기 각(各)을 결합해 만들어졌다. 뜻을 풀어보자면 ‘개별적으로 유통되는 재화’란 말인데, 조개껍질이 화폐로 통용되던 시절에 ‘공적으로 유통되지 않고, 사적으로 오가는 조개껍질’이었으니 곧 몰래 주고받는 선물이었다는 의미다. 또 뇌물을 뜻하는 영어 단어 브라이브(bribe)는 중세시대에는 선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뇌물의 역사는 그 뿌리가 매우 깊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전에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에는 ‘뇌물로 곡물 또는 금전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으면 처벌한다’는 명문화된 처벌 조항이 있다. (함무라비 법전은 뒤에 로마 십이표법과 헤브라이법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십계명이나 구약의 신명기에도 함무라비 법전과 비슷한 조항들이 나온다. 그때도 이미 뇌물 수수는 법으로 명시할 만큼 큰 사회적 문제였던 것이다.) 기원전 15세기 이집트 왕조는 ‘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공정한 재판을 왜곡하는 선물’을 살포하는 행위를 단속했다고 한다. 또 기원전 13세기 앗시리아 문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리아 설형문자판에는 당시 뇌물을 받았던 관료명단과 액수가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엔 왕자의 이름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경우 조선 초에 ‘분경(奔競)’이라는 것이 성행했다고 한다. 분경은 고관의 집을 드나들며 뇌물을 바쳐 관직을 얻는 행위였다. 예종 1년 요즘의 검찰격인 사헌부 관원들이 공신(功臣)인 정인지의 집에 분경한 인물을 체포하려 출동하자, 가동(家僮)들이 이를 몸으로 제지하고 정인지가 직접 나타나 이들에게 호패를 보이라고 호통친 사건이 있었다. 호패를 확인하고도 정인지는 “간간이 가짜 금란자(禁亂者, 사정공무원)가 있다”며 이들을 돌려보내는데 이 사건은 공권력조차 가벼이 여길 정도로 공신들 주변에 만연했던 뇌물 풍조를 짐작케 한다.
유사 이래 권력과 이권(利權)이 있는 곳마다 등장해온 뇌물은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 정도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우리가 뇌물 관행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선진국 수준으로 줄일 수는 있지 않을까.
싱가포르의 경우, 검찰과는 별도의 독립기관인 ‘부패조사국’을 두어 공직자는 물론 각 기업체의 직원까지 부정행위를 조사한다. 부정행위자에 대해서는 ‘영장없이 구속’할 수 있고 공직자·공공단체의 ‘직원 및 그 가족이 거래하는 은행의 관계 장부까지 조사할 권한’이 있다고 하니 언감생심(焉敢生心) 쉽사리 흑심을 품기 어려울 듯하다. 중국이 부패문제로 골머리를 앓다 부패공무원에 사형을 집행하여 경각심을 높였던 일은 도덕성 붕괴 위기에 처한 우리로서는 더 이상 남의 집 불구경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투명한 사회,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명성 지수가 높은 나라들의 선진사례를 꼼꼼히 배워 시스템적으로 유지되는 청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결집시켜 나가야겠다.
한편 이와 함께 대한민국의 세도가들께서는 제발 스스로 반성 좀 하셨으면 한다. 서포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 부인은 홀몸으로 길쌈을 해서 자식들을 키웠다고 한다.(윤씨 부인의 부군, 즉 서포의 아버지 김익겸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청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하였다. 그래서 서포는 아버지를 보지도 못한 채 태어난 유복자였다.) 윤씨부인은 아들이 장원급제하여 훗날 대제학이 되고 손녀(서포의 조카)가 왕비(인경왕후)가 됐지만 뇌물을 받기는 커녕 청탁도 하지 않았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존심과 품위를 지켰던 것이다. 임금의 귀에 쓴 충언을 하다가 남해의 외딴 작은 섬(노도)로 유배간 서포가 그런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소설이 우리 문학사의 수작으로 남아있는 ‘구운몽’이었으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쓴 일대기가 ‘윤씨행장기’였다.
우리사회의 지도층들 중에 이미 뇌물수수로 곤란을 겪으신 분들이나 아직 들키진(?) 않았지만 뇌물 또는 그 비슷한 것이라도 받으신 적이 있는 분들께서는 뇌물의 역사가 긴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라고 항변할게 아니라, 우리 선조들에게 이렇게 소중하고 훌륭한 귀감이 있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기억해주셨으면... 하고 기원해본다.
<한국기업데이터 홍보팀장 안대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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