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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는 약 나눠 드릴까요? "절대 안돼요!"

제주한라병원 2023. 11. 28. 14:26

 

내가 먹는 약 나눠 드릴까요? "절대 안돼요!"

 

 

약은 나눠 먹는 음식이 아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자신과 같은 증상을 호소 한다고 절대 인심을 써서는 안 된다. 약을 복용할 때는 먼저 증상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어떻게 아픈지를 전문가와 상담해야 하며 반드시 자신에게 처방·조제된 약만 복용해야 한다.

 

내가 먹는 약은 나에게 알맞게 처방된 나만의 약 몇 년 전 약국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한 환자분이 먹던 혈압약이 떨어졌는데 해당과가 휴진이라 먹던 약을 하루치만 따로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당연히 처방전 없이는 안 된다고 말씀드리는데, 옆에 계신 다른 환자분이 자신이 혈압약을 가지고 있다며 나눠주려고 했다. 약을 나눠 먹는 행위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리며 왜 안 되는지를 설명드렸다.

 

혈압약은 작용 기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혈관을 수축시키는 수용체를 막아 혈압을 낮추는 ARBACE inhibitor, 칼슘 채널을 막아 혈관 혹은 심근을 이완시키는 CCB, 심수축력을 약화시키는 β-blocker, 체액량을 줄여 혈압을 낮추는 이뇨제 등이 있다. 환자의 혈압, 나이, 기저질환 등에 따라 적절한 약물과 용량을 선택하기 때문에 통칭해서 혈압약이라고 부른다고 동일한 것이 아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고혈압 환자들은 두세 가지 성분이 합쳐진 복합제를 많이 복용하며 심지어 고혈압약과 고지혈증약의 복합제도 있기 때문에 혈압약의 종류는 더욱 다양하다. 타인의 혈압약을 먹을 경우 제대로 혈압이 조절되지 않거나 기립성 저혈압, 두통, 혈관 부종 등의 부작용으로 고생할 수도 있다.

 

 

미디어에서 종종 드러나는 모습 약을 나눠먹는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목격되곤 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은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다 갑자기 나타난 차에 올라타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우리가 익히 아는 헤밍웨이, 피카소, 고갱 등 유명한 예술가들을 만나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지만 정작 내 눈이 휘둥그레진 장면은 따로 있었다. 자살을 시도하는 피츠제럴드 부인에게 주인공이 미래의 약이라며 자신이 먹는 공황장애약을 나누어 주는 장면이다. 그 약은 다름 아닌 바리움으로, 마약류로 분류된 디아제팜 성분의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비록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타인의 약을 복용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이 미디어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부작용 문제뿐만 아닌 법적인 문제까지도 실제로도 마약류 의약품을 마약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나누어주는경우가 종종 있다. 요양 병원에서 환자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서 대형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알고 보니 옆 침대 환자가 나누어 준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패취를 허리에 붙이고 있었다거나, 과거 통증 병원 앞에서 근무할 때 환자분이 병원으로 오는 택시에서 기사님이 잘 듣는 진통제라고 나누어줬다며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코돈정을 보여준 적도 있다.

 

마약성 진통제는 법적으로 의사나 약사 등 지정된 사람만 취급할 수 있도록 제한하며 그 외의 사람이 마약성 진통제를 나누어주는 것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다. 마약성 진통제를 부적절하게 사용할 경우 메스꺼움, 어지러움, 호흡 억제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중독성과 의존성이 있어 관련법과 보험심사로 처방 대상 및 용량을 엄격히 관리한다. 약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선한 의도로 약을 나누어 주는 것이 나와 타인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

 

약이란 겉으로는 간단해 보일 지라도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 그리고 약사의 꼼꼼한 검수와 조제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나에게 처방·조제된 약은 나에게 맞춘 나만의 약이다. 병명이 같거나 증상이 비슷하다고 해서 약을 나눠먹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약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는 내가 먹는 약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진료를 볼 수 있게 도와주는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약제과 약사 - 이경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