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질토레비가 들려주는 제주이야기

김광종 곤밥하르방을 아시나요?

제주한라병원 2023. 5. 31. 13:17

 

관개수로 개척자

김광종 곤밥하르방을 아시나요?

 

 

관개수로는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논밭에 대는 물길이다. 안덕면 화순리(번내) 동쪽에 위치한 황개천을 마을에서는황개창·황게창으로도 부른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이곳에 누런 물개가 나타난다 하여 황개창으로, 누런 깅이가 산란한다 하여 황게창으로도 불렸다.

 

오래전 안덕계곡 주변에서 용출된 상당량의 물은 황개천을 지나 바다로 흘러갔다. 그냥 바다로 이입되는 물이 너무나 아까운 김광종(17921879)도채비빌레라는 지대의 암반을 뚫어 물이 흐르도록 하여 황개천 주변 광활한 일대에 논밭을 조성하여 주민들이 쌀밥인 곤밥을 먹을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주민들은 그를 논하르방·곤밥하르방으로 지금도 부르고 있다. 밭을 논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바꿨다는 의미로 수로가 끝나는 지점을 도채비빌레라 부른다.

 

당시 곡괭이··망치 등의 단순연장을 이용해 절벽 밑으로 수로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김광종은 견고한 바위에 장작과 독한 고소리 술로 불을 활활 붙인 다음 찬물을 끼얹는 방법으로 바위를 굴착하여 수로를 만들었다. 총연장 1,100여 미터에 이르는 수로를 10년 만에 뚫은 김광종은 18419, 드디어 5만여 평의 대지에 물을 대어 논밭을 조성할 수 있었다.

 

제주목 구우면(한경면) 저지리(닥모루)에서 태어난 김광종은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대정향교를 오가며 산방산에도 들리곤 했다. 그리고 산방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석간수를 보며 바위를 뚫어 수로를 만든다는 황당무계한 착상을 하였을 게다. 향교 과정을 마친 그는 돛단배에 소와 말과 양태 등의 제주특산물을 실어 한경면 용수리의 지삿개 포구를 통해 전남 영산포 등지로 교역하러 오갔다. 교역 다니던 길에 호남 영산강 일대의 관개수로 개척 사례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육지에서 구입한 소금··포목 등을 제주에 실어와 팔아 몇 년 후 큰 부자가 되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김광종은 1832년부터 주민들과 함께 안덕계곡을 흐르는 물을 가두는 제방인 보()를 쌓으며 물을 대는 관개사업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김광종은 황개창 근처에 세를 내어 마련한 세오래왓’(화순리 423번지)에 움막을 지어 살면서, 전 재산을 투자하며 10년 동안 수로 굴착 공사에 매달렸다. 결국 꿈을 이룬 김광종은 주민들과 함께 조성한 논밭에서 쌀을 생산하는 한편, 물세를 받아 자본을 축적하는 모임인 답회(畓會)를 조직·운영 하였다. (답회는 201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에 보답하려 1938년 답회 회원들과 후손들은 도채비빌레 맨 위에 김광종영세불망비(金公光宗永世不忘碑)’를 세웠다.

 

김광종의 관개수로 성공사례는 후세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한말의 채구석 군수는 천제연의 물을 중문 벼릿내인 성천천으로 끌어내었고, 일제강점기 애월읍 신엄리의 백창유는 어승생 물을 광령리로 끌어내어 논밭을 만들었다. 이들을 제주의 삼대 수로 개척자로 일컫는다.

 

자연이 내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제주 선인들의 지혜가 자랑스럽지 않은가. 이에 감흥을 받은 화순리 마을회의 제안으로, 2021년 안덕계곡의 물을 가두던 ()막은소()’에서 도채비빌레 600여 미터 지경을 김광종길로 지정하였다. 김광종길의 탄생은 또 하나의 역사문화의 부활이다. 선인들의 공덕과 지혜가 후손들에게 이어져 공유될 때 그 삶은 더욱 윤택하고 풍성할 수 있을 것이기에.

 

문영택 ()질토래비 이사장

 

수로 따라 걷는 산책로가 보이는 황개창 전경
울라봉 황개창 물가둔 보 유적
답회와 후손들이 도채비빌레에 세운 김광종 공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