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병원매거진/질토레비가 들려주는 제주이야기

개벽신화가 내려주는 제주정신 이어받아야

제주한라병원 2022. 11. 30. 14:31

삼성신화(三姓神話)와 사시복지(射矢卜地)

 

살쏜장오름에서 화살을 쏘아, 1도, 2도, 3도로 거주할 곳을 나눠

탐라선인들이 쌓았던 조선술·항해술이 출륙금지령으로 쇠퇴하기도

 

 

탐라문화제 개회에 즈음하여 삼성혈에서 삼신인과 삼공주를 맞는 칠선녀

신화는 인간의 바람과 상상이 실린 이야기다. 일만팔천 신들의 이야기인 제주신화에는 옛 선인들의 바람과 함께 교훈도 녹아 있다. 탐라개국을 다룬 삼성신화를 통해 이를 엿보고자 한다. 모흥혈(삼성혈)에서 솟아나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던 삼을나는, 신비로운 목함이 동쪽 바다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온평리 바닷가인 연혼포로 날아갈 듯 줄달음쳤다. 그리고 사신과 함께 배에서 내린 벽랑국 삼공주를 나이순으로 맞아, 혼인지에서 목욕재계한 후 ‘신방굴’에서 신혼 첫 밤을 보냈다. 이어 한라산 중턱의 살쏜장오름(射矢長兀岳)에서 화살을 쏘아, 거주할 곳인 1도·2도·3도를 정했다. 우리는 이를 사시복지라 칭하는데, 사시복지는 제주문화의 열쇠어로, 투쟁이 아닌 상생에 대한 상징이자 교훈으로 읽히는 4자성어이다. 이제 승자 1인의 나라가 아닌, 을나 3인이 어울려 사는 나라를 다룬 삼성신화의 깊은 속내를 엿보려 한다.

 

삼을나와 삼공주가 목욕재계를 했다고 전해지는 혼인지

삼을나와 국제결혼(?)한 삼공주의 나라 벽랑국은 상상의 나라이다. 사시복지로 살 땅을 정한 삼을나와 삼공주는, 벽랑국에서 보낸 오곡의 씨앗을 뿌려 가꾸고 소와 말을 기르며 삶을 이어간다. 삼을라는 최초의 탐라인이고 삼공주는 최초의 외국인이다. 이는 곧 다문화 사회를 구현하려는 신화의 상징이자 교훈이다. 삼을나가 살 땅을 정하려 살쏜장오름에서 표적으로 쏜 돌이 삼사석이다. 제주도기념물 4호인 삼사석비는 1735년 제주에 온 노봉 김정 목사가 삼성신화를 듣고 관련 유적을 살핀 후 처음 세웠다. 화북과 삼양 경계지점에 있는 삼사석비에는‘옛날 모흥혈에서 활을 쏘아 맞은 돌이 남아 있으니, 신인들의 기이한 자취는 천추에 비추리라.’라고 적혀 있다. 사지복지 이후 후손들을 이어가며 여러 나라와 교역을 하던 탐라는, 660년 백제가 멸망하자 왜국(일본)과 함께 백제부흥운동을 펼쳤다고도, 또한 백제의 유민들이 탐라에 망명해 왔다고도 전해진다.

삼성신화를 다룬 영주지·고려사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는 삼신인의 거주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는 반면, 1450년 고득종이 지은 탐라고씨족보 서세문 등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을나 사는 곳은 한라산 북쪽 1도리로 제주땅이고, 양을나 사는 곳은 2도로 한라산 남쪽 산방리로 대정땅이고, 부을나 사는 곳은 3도로 한라산 남쪽 왼편 토산리로 정의땅이다.’

세월은 흘러, 삼별초가 제주에 와서 여몽연합군에게 응전하다 패한 1273년 이후부터 탐라선인들은 백 년 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아야 했으며, 또한 원나라가 보낸 죄수·왕족·관리·승려 등과 어울려 살기도 했다. 여말선초에는 고려왕조 유신들이 제주섬에 유배되어 선인들을 훈학하며 더불어 살았는데, 제주의 4현이라 불리는 한천(청주한씨 입도조), 김만희(김해김씨 좌정승공파 입도조), 이미(경주이씨 입도조), 강영(신천강씨 입도조) 등이 대표적이다.

제주도에는 지금 개벽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조선 15대 광해임금과 마지막 유배인 이승훈 등 300여 명이 제주에 와서는 후손과 문화를 낳기도 했다. 세월을 거슬러 가다 보면 제주를 떠난 선인들의 슬픈 역사를 만나기도 한다. 삼국과 당나라 등과 교역하며 탐라선인들이 쌓았던 조선술과 항해술은 출륙금지령(1629~1823)으로 쇠퇴하여, 제주 해안에는 테우만이 떠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제주에서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경계하는 투로 ‘육지 거’라 칭하곤 한다. 이는 문관보다 무관 위주의 목사와 관리들에 의한 착취와, 4·3 당시 서북청년단의 만행 등에서 비롯된 듯하다. 이렇듯 제주는 외침과 수탈을 수없이 당하면서도 삶을 개척해온 저항과 끈기의 섬이었으며, 자연재해를 극복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슬픈 변방이었다.

신화를 재조명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탐라선인들이 지은 개벽신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상징을, 제주의 여러 역사와 함께 다시 생각한다. 치열한 다툼이 아닌 상생의 삶을, 그리고 예로부터 내려온 제주정신을 찾아 이어가라 한다. 탐라에서 제주로 이어온 정신은 곧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성이고, 삼다삼무의 정신을 잇은 수눌음이고, 바다로 세계로 나아가려는 도전정신이리라.

문 영 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탐라순력도 ‘제주조점’의 한 부분. 제주성 안쪽에 삼성에게 제를 올리는 ‘삼성묘(三姓廟)’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