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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어떤 건축이든 품는 힘이 있다

제주한라병원 2022. 6. 3. 14:29

미래를 설계하고, 기억될 만한 것을 만드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

건축은 삶의 기록, 삶을 긴밀하게 들여다보면 제주다움을 발견

 

[나는 제주건축가다] <5> ‘건축사사무소 오’ 오정헌  

건축가 오정헌은
 
‘오!’ 흔히 하는 감탄사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오!’ 외치는 사람이 있다. 뭔가에 감탄하는 일이란 즐겁다. 성씨가 오씨여서 사무실 이름도 그렇게 붙였지만, 그는 늘 웃음 띠며 건축 일에 묻혀 지낸다. 육지에서 대학을 다닌 이들은 고향 제주로 선회하기가 무척 어렵다. 고향 제주에 안착하기 전까지는 명절에만 오는 곳이 고향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다시 본 제주도. 그가 바라봤던 고향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너무 바뀌어 있었다.
다행이랄까. 어릴 때 살던 제주시 일도2동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토지개발이 이뤄지면서 옛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의 신구 교체가 일어나던 일도2동이다. 누구에겐 고전적인 초가가 기억의 모습이겠으나, 그에겐 갓 개발된 일도2동이라는 도심의 모습이 기억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목수의 다양한 실험실이다. ‘파라펫’이라고 불리는 옥상 난간의 모습은 목수의 경연장이다. 갖가지 모습의 파라펫은 여전히 일도2동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 목수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 제주에는 어떻게 내려오게 됐나.

육지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고향인 제주에 대한 이미지는 희미해졌다. 그러나 건축 실무를 시작하면서 제주 건축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다. 점차 디자인에 대한 의지와 목표가 명확해졌고 제주에서 동네의 삶을 기록하고 친밀한 건축을 만들고자 건축사사무소를 열었다.

 

 

- 서울 사무소엔 많은 이들이 있기 때문에 자기 작품을 만들지 못할 텐데. 제주에 내려와서는 정말 건축가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건축가’라는 단어를 스스로 쓴다는 것이 어색하지만, 설계를 진행하면서 건축가로서의 정체성이 다져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목표에 대한 방향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과 맞닿아 있다.

 

 

- 제주다움은 뭘까?

나는 제주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제주다움을 발견하려고 한다.

제주 출신이지만, 제주를 배우려고 제주 건축문화연구회를 시작했다. 제주다움은 뭘까?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적절한 표현을 찾진 못하겠지만 ‘될 수 있는 대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며 살아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제주 사람들은 있는 것을 잘 활용했고, 환경이 거치면 거친 대로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환경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에게서 제주다움을 발견하고 있다.

 

 

- 건축쪽에서 제주다움을 들여다본다면.

결국 건축은 삶의 기록이라 생각한다. 시대에 따라 혹은 지역, 국가에 따라서 우리 삶의 기록은 각각의 문화를 형성한다. 삶에 대해 긴밀하게 들여다봐야만 제주다움을 발견하기 위한 방향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 바닷가는 필지도 작고 큰 건물을 짓기가 어색해 보인다. 그런 곳은 땅을 존중해야 할 텐데, 제주도라는 땅이 가진 의미와 가치는 뭘까.

제주도는 흔히 “사이트가 깡패”라는 말을 많이 한다. 뭘 지어도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고 과하지 않다면, 제주는 어떤 건축이든 품어내는 힘이 있다. 서울 청담동의 건물을 제주에 그대로 옮겨 놓는다고 세련된 건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건축을 할 때 건물은 여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주도는 건물 자체가 여백이 되는 곳이다. 서울은 건물이 여백이 되어주지 않는다. 꽉 막혀 있다. 제주도는 사람도 여백이 있으며, 건물도 여백을 만들어준다.

 

 

- 제주도는 좋은 곳이 넘친다. 특히 좋아하는 곳이 있다면.

내가 주로 생활하는 곳은 구도심이다. 작은 동네임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 있다. 이 안에서 각각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관찰하는 기쁨이 크다. 그래서 너무 좋다. 이러한 장소가 유지되고 기록되었으면 한다.

 

 

- 어떤 부분이 매력적인가.

옛 건물을 보다 보면 당시의 목수, 타일공, 조적공 등 재미있는 시도를 한 동네 건축물을 발견하게 된다. 제주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돌담, 가옥배치보다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지어진 구옥에 눈길이 간다. 특히 제주시 일도2동에 구옥이 많다. 1층에 살짝 기와를 흉내낸 옥상이 있고, 파라펫(난간의 일종) 난간의 모양이 다 다르다. 그걸 구해보려 했는데 나오질 않는다. 유사한 것으로 디자인 블록이 있는데, 그 맛이 나질 않는다.

예전과 비교하면 동네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양쪽에 주차를 하고, 담장도 생기면서 이전의 풍경들이 사라졌지만, 시간의 흐름만큼 그때그때 보수하면서 바뀐 집들이 동네를 다채롭게 만든다. 다른 지역은 개발이 진행되면서 그런 색이 많이 사라졌지만, 일도2동은 주택이 많이 남아 있어서 너무 매력적이다.

 

 

-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누구나 쉽게 플랫폼을 통해 집을 짓는 시대가 되었다. 건축가는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건축주의 삶에 대해 접근해서, 함께 방향을 잡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전엔 건축을 “문제가 있으면, 해결방안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지금은 그것을 넘어 방향을 제시하고, 미래를 설계하고, 기억이 될 만한 걸 만드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다.

모던은 세련되고, 도회적이고, 도시적으로 느껴지지만 이제는 모던이 차갑다거나 정이 없다는 말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정이 넘치는 시대가 아니니까, 지금처럼 철저하게 물질화된 시대에는 오히려 사람 냄새 나는 작업으로 가야 된다. 건축이라는 작업 자체가 감정노동이 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