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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마키스와 투트모세의 약속 기록 ‘꿈의 비석’

제주한라병원 2022. 6. 3. 14:21

역사 속 세상만사- 이집트 이야기 / 스핑크스와 꿈의 비석 ② -

 

무릎을 꿇고 자신의 불행을 호소하며 해결해달라고 기도하자

“거추장스러운 모래 걷어내면 위대한 제왕으로 만들어주겠다”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던 투트모세 왕자는 위대한 신 하르마키스(스핑크스)에게 기도를 하고 싶어 전차를 몰아 달려갔다. 쿠푸, 카프레, 맨카우라의 세 피라미드가 장엄하게 서있는 기자의 고원에 도착해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모래 위로 목의 일부와 거대한 머리만이 솟아 있던 스핑크스를 향해 걸어갔다.

 

투트모세는 스핑크스의 옆에 서서 한참 동안 그의 근엄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스핑크스는 머리에 코브라가 조각된 이집트의 왕관을 쓰고 있었다. 한동안 스핑크스를 바라보던 투트모세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불행을 호소하고 고민거리들을 해결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스핑크스가 꿈틀하는 것처럼 보였다. 투트모세는 깜짝 놀랐다. 자신을 내려보는 스핑크스는 어느새 눈에 유리를 박아 놓은 돌덩어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신처럼 보였다. 스핑크스는 투트모세를 향해 말했다. 우렁차면서도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는 듯 자상함이 배어있는 목소리였다.

 

“나를 보라, 이집트의 왕자 투트모세야. 나는 너의 조상이요, 모든 파라오들의 조상인 하르마키스니라. 파라오가 되어 상·하 이집트의 이중 왕관을 쓰느냐 못쓰느냐 하는 것은 오직 너에게 달려 있다. 네가 파라오가 된다면 이집트의 두 땅에서 나는 모든 산물과 세계 만방에서 들어오는 공물들이 너의 것이 될 것이다.

투트모세야, 나는 네가 처해있는 상황을 동정한다. 그러나 보아라. 나의 몸과 발을 덮고 있는 이 모래들을…. 이것들은 정말 나를 질식시킬 것 같구나. 나에게서 이 거추장스러운 모래들을 걷어내 주려무나. 그러면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를 인도하여 위대한 제왕으로 만들어주마.”

 

어리둥절해진 투트모세가 스핑크스 앞으로 걸어나가는 순간 스핑크스의 두 눈으로부터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을 보자 두 눈이 캄캄해지고 머리가 빙그르르 도는 것처럼 어지러워졌다. 투트모세는 모래 위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투트모세가 의식을 차렸을 때엔 이미 태양이 카프레의 피라미드 꼭대기 너머로 지고 있었다. 스핑크스의 그늘이 그의 몸을 덮어 주위는 선선했다. 투트모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모래에 반쯤 파묻힌 스핑크스는 저녁 노을을 받아 분홍색과 자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빛나는 스핑크스의 얼굴을 보니 조금전 보았던 환상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는 다시 한번 무릎을 꿇었다.

 

“하르마키스, 나의 아버지여. 당신과 이집트의 모든 신들게 맹세합니다. 제가 파라오가 된다면 제일 먼저 당신을 덮고 있는 그 모래를 제거한 후 성소를 건설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당신이 명령하신 것과 제가 약속한 것, 그리고 제가 어떻게 그 약속을 실천했는지를 켐의 신비한 문자로 적어 놓겠습니다.”

 

투트모세가 스핑크스 앞에서 맹세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하인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트모세는 그들을 태우고 함께 전차를 몰아 멤피스로 돌아왔다. 그 후 투트모세의 모든 일은 순조롭게 풀렸다. 파라오 아멘호테프 2세는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공식 선언했고 얼마 되지 않아서 예언이 이루어졌다. 그가 바로 투트모세 4세이다.

 

세월이 흘러 20세기 중반에 이 스핑크스는 한 고고학자에 의해 목까지 모래에 잠긴 상태로 다시 한 번 발굴되었다. 스핑크스의 발밑에는 성소의 유적이 있었기에 발굴해보니 14피트 높이의 상형문자 비석이 나타났다. 붉은 화강암에 상형문자로 기록된 비석의 내용은 투트모세 왕자가 어떻게 왕위를 이어받았으며 그가 하르마키스에게 어떤 약속을 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비석에 따르면, 파라오 투트모세 4세가 재위한 첫 해에 하르마키스를 덮고 있던 모래를 치웠고, 그로 인해 파라오가 될 수 있었다고 적혀있었다.

 

‘꿈의 비석’이라고 불리는 이 비석은 아직도 기자의 스핑크스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한다. ‘꿈의 비석’은 바로 ‘꿈을 이루게 해준 비석’이었던 것이다.

 

 

<한국장학재단 홍보팀장 안대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