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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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매거진/제주의 새

풍요와 다산의 상징, 이제는 멸종위기종 분류돼

제주한라병원 2022. 3. 11. 13:42

큰기러기 Bean goose (Anser fabalis )

 

가을이 깊어지면 북쪽에서 우리나라로 이동해
서로 간에 신의가 깊다고 하여 ‘신조’라고도 불려

 

달 밝은 가을 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고단한 날개 쉬어 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

 

윤석중 작사, Foster 곡의 기러기라는 동요입니다. 아주 어릴 때 들어보고서는 최근에는 들어보지 못한 곡입니다. 갈대들이 손을 저어 부른 큰기러기가 제주를 찾아와 겨울을 지내고 있습니다. 10여년전만해도 4~50마리에서 많게는 100여 마리가 하도철새도래지에서 겨울을 지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월동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10~20여 마리만 철새도래지를 찾고 있다. 아마도 먹이의 부족과 편안히 쉴 공간이 부족한 원인이라 생각 된다. 내륙지방에서는 추수가 끝난 논에 대규모로 월동을 하고 있는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기러기들은 가을이 깊어가는 시기인 늦가을에 북쪽의 번식지를 출발하여 우리나라로 내려온다. 북쪽에서 찬바람을 타고 날아온다고 하여 '삭조', 서로 간에 신의가 깊다고 하여 '신조', 큰 기러기와 작은 기러기를 '홍안'이라고 도 불렀다고 한다.

전통 혼례식 때 행해지는 전안례란 의식이 있는데 이는 농경사회에서 풍요 및 다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전통혼례에서는 신랑이 신부집으로 와서 혼례를 행한다. 이때 신랑은 백마를 타고 신부집에 가는데, 기러기 한 쌍을 든 기럭아비가 신랑보다 먼저 앞서 간다. 신랑이 당도하여 신부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바치면 신부 어머니는 기러기를 치마에 싸서 전안청에 안치한다. 전안례가 끝나면 신랑이 장인께 재배하고 나서 안대청에 마련된 초례청으로 안내되어 신랑 신부가 상견례를 하며 혼례식을 올린다.

이런 경사스런 자리에 기러기를 택한 것은 기러기처럼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아들딸을 많이 낳아 백년해로하게 해달라는 기원의 표시라고 한다. 조상들은 한 해 농사를 모두 마친 늦가을에 질서 있게 무리지어 날아와 금실 좋게 짝을 이루며 사는 기러기를 신의·화목·정절을 상징하는 새, 모두에게 풍요로움을 전하는 상서로운 새로 여겼던 까닭이다.

처음에는 전안례에 살아있는 기러기를 쓰다가 점차 나무로 만든 기러기나 닭을 대신 쓰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지난날 전통의 뿌리가 깊은 마을에서는 혼례를 위해 '기러기집'을 한 채씩 지어 수, 부, 귀, 다남 등 오복을 모두 갖춘 집에서 관리하고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한 번 빌려 쓰는데 그 비용은 쌀로 계산하여 받았다. "기러기집 딸은 묻지 않고 장가든다."는 말도 있는데 이런 집의 딸이 행실과 용모도 단정하거니와 눈썰미와 손썰미가 좋아서 오랜 경험 끝에 비법으로 전해온 음식맛을 내는 솜씨 또한 뛰어났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는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도 제법 추위가 한창이라, 바람이 매섭기만 하고 연일 전국적으로 한파가 몰아친다는 뉴스를 듣는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AI(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된 철새도래지는 더욱 추위를 느낄 만큼 삭막한 분위기다. AI 예방을 위해 철새도래지 인근을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 하고 있지만 철새도래지의 새들은 오히려 사람들의 출입이 없으니, 아랑곳 않고 먹이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큰기러기는 몸길이 85cm로 꽤 큰 편에 속한다. 짙은 갈색을 띠며 부리는 검정색이나 끝 가까이에 등황색 띠가 있고 다리는 오렌지색이다. 몸 아랫면에 가로무늬가 있다.

겨울철새로 육지에서는 비교적 흔히 볼 수 있지만 제주에서는 여간해서는 볼 수 없다. 10월 하순에 찾아오기 시작하여 3월이면 번식지로 모두들 떠난다. 농경지, 호수, 하천 등의 습지와 물가에서 먹이를 찾고, 쉴 때는 한쪽 다리로 서거나 배를 땅에 대고 머리는 뒤로 돌려 등깃에 파묻는다. 주변 경계가 심한 편이며 사람들이 조금만 다가와도 놀라서 날아오른다. 지난 겨울에는 11마리의 큰기러기와 쇠기러기 1마리가 겨울을 지내고 있다. 큰기러기는 날로 개체수가 줄어들어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 보호되는 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