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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 성실·신뢰가 깨졌을 때 죗값 치러 ‘교훈’

제주한라병원 2022. 2. 8. 09:13

역사 속 세상만사 - 이집트 이야기 / 두 형제를 배신한 부인들 ⑦ -

  

얼떨결에 나무조각을 먹은 왕비는 아들을 잉태하고 낳았지만
왕자로 태어난 바타는 끝내 아내의 사악함을 폭로하고 처형해

 

배신한 아내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던 바타의 영혼은 씨앗에서 황소로, 황소에서 커다란 두 그루의 나무로 변해가며 끈질기게 그 숨결을 이어나간다. 어느 날 파라오와 왕비가 마차를 타고 성 밖으로 나가다가 이 나무 곁을 지나게 되었다. 왕비가 나무 곁을 지나갈 때 신성한 나무가 속삭였다.

 

“이 사악한 여인아! 나는 아직도 살아 있어. 보라구! 나야, 바로 바타란 말이야.”

 

그날 밤 왕비는 파라오에게 다시 애교를 떨며 부탁했다.

“신 앞에서 약속하세요. 내가 당신에게 하는 부탁을 들어주실 거죠?”

 

파라오가 신 앞에서 약속한다고 말하자 왕비는 말했다.

“저 궁성 앞에 있는 나무 두 그루를 베어서 예쁜 의자 두 개를 만들어 주세요.”

 

다음 날, 왕비가 원하는 대로 노련한 목수들에 의해 두 그루의 나무는 베어졌다. 왕비 역시 나무를 베는 광경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나무 가까이 서 있을 때 목수의 도끼에서 떨어져 나온 나무 조각 하나가 그녀의 입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얼떨결에 나무 조각을 삼킨 왕비는 그날로 임신을 하고 말았다.

 

얼마 후 태어난 아이는 아주 튼튼하고 총명했다. 파라오는 그 아이를 매우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뒤를 이을 황태자로 결정했다. 아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왕자는 왕비에게 차갑게 대하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들이 점점 바타의 모습과 닮아간다는 사실이었다. 왕비는 파라오에게 지난 날의 그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그 왕자는 바로 바타였던 것이다.

 

어느덧 파라오는 나이를 먹어 승하하고 황태자인 바타가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었다. 파라오에 즉위하자마자 바타는 모든 신하들을 모아 놓고 그의 이상한 인생을 이야기했다. 그는 신들이 어떻게 자신의 아내가 될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었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배반하고 악랄하게 살해하였는지를 말했다.

 

“이렇게 사악하고 악랄한 여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야만 할 것이다. 바로 저 여인이 그 여자이니라.”

 

바타는 이야기를 마친 후 어머니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녀는 곧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을 당했다. 그 후 바타는 30년 동안 이집트를 지혜롭게 다스리며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 두 형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신화를 통해 인간들은 그들이 살아가던 시대에 그들이 꿈꾸던 지향이나 소망, 바람직한 상(像) 그리고 교훈삼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오곤 했다. 그래서 신화에서는 권선징악적인 요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마련이다. 7회에 걸쳐서 살펴본 안푸와 바타 형제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뜨거운 형제애와 그에 걸맞은 해피엔딩 스토리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맥락은 바로 부부(夫婦)간에 반드시 지켜지길 바라던 당시의 사회적 요구, 바로 정절 또는 신뢰에 대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형 안푸의 부인, 즉 바타의 형수는 형이 자리를 비운 사이 시동생인 바타를 요혹하려다 수포로 돌아가자 거꾸로 바타가 자신을 범하려 했다고 음해하여 바타와 형 사이를 이간질한다. 물론 여차저차한 과정을 거쳐 결국은 바타의 결백이 밝혀지고 형수는 남편 안푸의 칼 아래 쓰러지며 응징을 받게 된다.

 

이후 홀로된 바타의 숙명을 가련히 여긴 신들이 그의 배필로 창조해준 바타의 신부는 파라오가 자신을 왕비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남편 바타를 배신하여 죽음으로 몰고간 뒤 왕비로 살게 된다. 하지만 배신의 끝은 역시 좋지 못한 법. 그녀가 창조되었을 때 사랑의 신 하토르가 “너는 단명할 것이다”라고 예언한 것처럼 그녀 역시 배신에 따른 값을 죽음으로 치르게 된다.

 

형은 형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부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된다는 이 이야기에서 특이하게도 두 여인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냥 누구의 부인, 누구의 신부라고만 표현된다. 부부간의 신뢰를 깬 부인들 캐릭터에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을 만큼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게 이야기가 구성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당시에도 부부간의 신뢰가 깨지는 일이 종종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야기 내용을 통해 부부간의 성실과 신뢰가 깨졌을 때 큰 죗값을 치르게 될 거라는 경종을 울려야 할 정도로, 또 신뢰를 깬 이들은 이야기에서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할만큼 후지게 취급된다는 교훈적 메시지가 필요했을 정도로 부부간 배신의 경우가 꽤 있었다는 반증 아닐까. 세상사 무진장 발전해왔지만, 돌고 도는 면도 적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