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36> 도대불①
얼마 전 들려온 소식. 제주의 옛 등대인 ‘도대불’이 제주특별자치도 등록문화재로 등록되는 절차를 밟는다는 내용이다. 정확하게는 ‘등록 예고’이다. 등록문화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정문화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가운데 보존이나 활용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문화재”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등록문화재는 대개 근대문화유산과 맥락을 함께한다. 등록문화재는 조선후기 개화기를 기점으로, 한국전쟁 전후의 기간에 만들어진 문화재가 중심이다. 때문에 등록문화재의 상당수는 일제강점기 때 건축된 유산들이 차지한다.
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도대불’은 쉽게 만날 수 없는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등록 예고된 이유도 바로 희소성에 있다. 제주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현무암이 도대불 건축의 소재였고, 바다를 오가는 어선들의 안전을 위해 작은 포구에 있었던 건축물이 바로 도대불이다.
도대불을 알려면 우선 근대식 등대를 알아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근대화된 등대는 한국의 불행한 역사와 함께한다. 등대 건축은 우리의 의지보다는 외국의 요청이 더 앞섰다. 바로 일본의 요청이었다. 일본의 특명전권공사였던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가 1895년(고종 32) 음력 3월에 등대 건설에 대한 의견을 조선정부에 보낸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조선의 연안 항해가 어렵다고 호소하면서 등대 건설이 필요하다고 쓰고 있다. 아울러 조선은 등대를 건설할 능력이 되지 못하기에 일본이 조선의 서해안과 남해안을 측량해서 등대 설치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노우에 공사가 조선 정부에 보낸 문서 내용을 살짝 옮겨본다.
“조선의 연안 항해는 매우 위험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현황을 돌아볼 때 등대 건설을 실행에 옮길 가망이 거의 없을 것 같으니, 우리나라에서 이 정부를 위해 연안을 측량하고, 등대를 건설할 장소를 지정해서 이 나라 정부가 하고자 하는 바를 대행해서 편의를 도모하고자 한다. 우선 이 나라의 서해안 및 남해안을 측량하려 하니, 그 측량 건에 대해 승낙을 요청하기 바라며, 아울러 측량이 완성된 뒤에는 신속하게 등대건설 계획을 세우도록 이 나라 정부와 협상을 개시함이 필요하다.”
이노우에 공사가 보낸 문서는 조선의 능력치를 드러내고 있다. 개화기여서 외국 상선도 많이 오고갔지만 조선의 연안은 이들 상선을 항구로 안전하게 안내할 등대가 없었다. 이노우에 공사가 문서에서 “등대 건설을 실행에 옮길 가망이 거의 없다”고 쓸 정도였으니, 미래의 조선이라는 나라의 운명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사실 1883년 조선은 일본과의 통상장정을 체결하면서 항구를 수리하고, 등대 등을 설치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실행이 되지 않고 있었다.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들도 조선 정부에 비슷한 내용의 문서를 보내곤 했다.
어쨌든 우리나라 근대 등대 건축은 일본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일본에서 조선에 파견된 인물이 등대 건축를 맡아서 진행하는데, 이시바시라는 인물이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 이시바시는 1895년 6월부터 9월까지 등대의 위치와 종류 등을 결정하기 위해 우리나라 해안을 조사한 인물이기도 했다.
조선은 등대 건축을 맡을 인물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들이고, 등대 업무를 보는 관련 부서도 만든다. 1902년 3월 인천해관에 ‘해관대동국’이 신설되는데, 우리나라 첫 등대 업무의 시작점이다. 해관대동국은 1902년 5월부터 소월미도 등 4곳에 등대 설치를 시작한다. <조선항로표식편람표>에 따르면 소월미도등대와 팔미도등대가 1903년 6월, 처음으로 점등을 했다고 나온다. 제주도 등대로는 우도등대가 1906년 3월에 점등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
등대와 달리 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도대불은 아주 작다. 등대가 먼 거리를 오가는 상선에게 절대적 존재였다면, 도대불은 작은 포구를 알려준다. 우리는 도대불이라고 부르지만, 도대불은 ‘등명대(燈明臺)’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료엔 항구를 오가는 배를 향해 지시를 해주는 ‘등대’는 있어도 ‘등명대’는 없다. 도대불, 혹은 등명대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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