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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매거진/제주의 새

물 위의 발레리나… 멸종위기종 1급 지정돼

제주한라병원 2021. 1. 4. 14:03

큰고니 Whooper Swan: Cygnus cygnus 

 


  


러시아의 세계적인 작곡가인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3편의 발레음악인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있다. 백조의 호수는 f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음악 중에서도 발레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 당대에는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여성 무용수의 각선미와 우아한 포즈를 살리는 것에 안무가 치중되어 있어 단순한 춤곡 반주, 그 위에 장대한 나열 형식 등의 발레 작품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춤추기 위한 음악보다는 절대음악의 성격을 지닌 난해한 작품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밤에는 사람으로 변신하고 아침이면 새로 변하는 백조여왕과 왕자의 사랑을 노래한 곡으로, 이들의 사랑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끝내 사랑을 이루게 되는 내용이다. ‘백조의 호수’에서 노래하는 새가 바로 큰고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고니들은 고니, 큰고니, 혹고니로 모두 세 종류이다. 고니류는 모두 천연기념물 제20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중 큰고니는 제201-2호로 지정되었으며 환경부지정 멸종위기종 1급이다.


고니는 일명 '백조'라고 하여 온몸이 하얀 아름다운 새다. 날아다니는 새들 중 가장 큰(?)새에 속하기도 하는데, 몸길이는 약 1.5m, 펼친 날개의 길이는 약 2.4m로 아주 큰 오리과의 새로 암수 모두 순백색이고 어린 새는 회갈색이다. 다리는 검정색 또는 짙은 회색이며 고니는 오리류 중에서도 몸이 크고 특히 긴 목을 가지고 있어 호수나 저수지, 해안의 얕은 수면에서 무리를 이루고 생활한다.


평균 몸무게 10kg, 날 수 있는 새 가운데 가장 무거운 편이지만 고고하게 세운 길고 가느다란 목과 날갯짓으로 이들은 물 위에서는 우아한 발레리나가 된다.


고니들은 휴식을 취할 때 종이배가 떠다니듯 유유히 움직인다. 목은 약간 S자로 휘어지기도 하며 간혹 날개 품속으로 머리를 숨겨 물위에서 쉬기도 한다. 주변에 침입자가 나타나면 머리를 바짝 세워 경계하는데 어미새들이 먼저 새끼새들에게 경계 메시지를 보내어 피신하도록 한다.

 


고니류들은 10kg의 몸무게를 가지고 있어 몸이 많이 무거운 편이다. 몸이 무거운 만큼 한번에 하늘위로 날아오르기가 힘들다. 이들이 날아오를 때는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듯이 물 위를 달리면서 추진력을 얻어 날아오른다. 한번 날아오르려면 몸무게만큼이나 에너지 소모도 많기 때문에 고니들이 있을 때는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고니들은 천적이 가까이 오거나 위험을 감지하면 먼저 날아오르기보다, 어미새들이 어린새들의 앞뒤로 경호하며 반대편으로 천천히 도망을 간다. 더욱더 위험을 느끼면 그때 어미새의 신호로 일제히 날아오르게 된다.


큰고니는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오는 철새이며 대부분 가족단위로 날아온다. 많은 새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제주를 찾아오는데 고니도 예외는 아니다. 육지부의 철새도래지인 경남의 주남저수지에는 1500여 마리가 월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는 철새도래지의 환경이 좋지 않아 이동 시기에 잠깐 쉬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주에 도래하는 고니류는 1-2개체가 지나가거나 잠시 머물렀다가 이동을 한다. 이들이 오래 머물지 못하는 이유는 먹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성산읍 오조리와 구좌읍 하도리가 먹이를 얻을 수 있는 곳인데 이나마 수초의 뿌리를 먹고 나면 먹이가 없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것이다.


제주를 찾았던 큰고니가 먹이가 부족하여 폐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주에서는 제주야생동물연구센터에서 제주를 찾은 새들에게 먹이를 공급한 적이 있지만 요즘은 그마저 어렵게 되었다. AI바이러스의 검출로 새를 관찰하거나 먹이를 공급하는 행위를 금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AI가 기승을 부릴 때는 다른 때보다도 더 먹이를 공급하여 새들이 한곳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들은 먹이를 찾고 안전한 곳에서 휴식을 한다. 먹이가 없으면 한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찾아 주변으로 흩어지게 된다. 만약에 AI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새가 먹이를 찾아 주변 양계장으로 이동한다면 그 양계장은 어떻게 되겠는가. 철새들이 한곳에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천연기념물 '큰고니'는 아시아권에선 주로 러시아 일대에서 번식을 하고 겨울엔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지낸다. 우리나라를 찾는 큰고니의 이동 경로가 올해 봄부터 가을에 걸쳐 처음으로 알려졌다. 올 1월, 창원 주남저수지에 살던 큰고니에게 위치추적장치를 달아 보내자  3월에 주남저수지를 떠나 북한과 중국 단둥을 지나서 내몽골자치구 일대를 거쳐 6월에 러시아의 한 습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여름을 지내고 9월에 이동을 시작하여 주남저수지로 돌아왔다. GPS 기록을 확인해보니 평균 시속 51km, 왕복 거리는 8200km에 이르는 먼 거리를 다녀온 것이다.

 

멀리서 다시 찾아오는 새들에게 조금 편히 쉬다가 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