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매 Crested Honey Buzzard ; Pernis ptilorhynchus
우리에게 가장 달콤한 것을 가져다주는 곤충은 아마도 꿀벌일 것 같다. 꿀벌들이 열심히 꿀을 모으고 집을 짓고, 애벌레들이 건강히 자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어느 곤충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벌의 종류도 여럿이 있다. 그중 장수말벌은 다른 벌들에게는 그야말로 저승사자라고 한다. 꿀벌을 죽이고, 애벌레는 씹어 먹고, 열심히 지어놓은 집까지 부숴놓은 말벌을 보면 두려운 마음마저 들기도 한다.
사실 장수말벌은 곤충 중에 천적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곤충 중에서의 천적이라고 해봐야 사마귀가 있기는 하지만 작은 새까지 잡아먹는 사마귀도 장수말벌에게는 쉽게 이길 수 없다고 한다. 장수말벌의 아성은 아마도 벌초를 다니면서 몸소 경험하신 독자 분들도 있으실 거라 생각된다.
곤충계의 무법자 장수말벌. 하지만 여기 곤충계의 무법자에게 준법정신을 가르쳐주는 '벌매'가 있다.
숲 가장자리나 초지에서 볼 수 있는 수리과 조류로, 봄과 가을에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나그네새다. 이 벌매의 식성은 조금 특별하다. 주로 말벌집에서 애벌레를 잡아먹거나 꿀벌집에서 꿀을 훔쳐 먹는다고 해 ‘벌매’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보통 꿀벌은 적이 침입하면 꽁지침을 적에게 쏘고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말벌의 경우 침을 넣었다 빼었다 칼처럼 사용할 수 있어서 적이 침입하면 계속 침으로 적에게 대응한다. 하지만 벌매는 벌침에 쏘여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아주 빼곡하게 깃털이 몸을 덮고 있으며, 설령 벌침이 깃털을 뚫고 찌른다 하더라도 벌침독에 대한 면역력 또한 갖고 있어 가히 무적이라 할 수 있다. 벌매는 말벌뿐만이 아니라 꿀벌도 먹이로 삼는다.
벌매는 꼭 벌만 잡아먹는 게 아니라 작은 설치류나 개구리 등을 사냥하기도 한다. 이때 새끼들에게 먹이고 남은 사냥감의 살점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아 고기 냄새를 좋아하는 말벌이 올 때까지 잠복근무를 하다 말벌이 찾아오면 다시 말벌의 뒤를 밟아 벌의 본거지를 찾아내 먹어치운다.
꿀벌의 꿀은 우리에게 달콤함을 주지만 벌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벌을 통쾌히 먹어치우는 벌매는 다른 맹금류와는 조금 다르다. 대표적인 맹금류인 매는 다른 새를 사냥하여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쥐고, 날카로운 부리로 사정없이 깃털을 뽑아내고 살점을 뜯어먹는 모습을 보면 섬짓함마저 있다.
그러나 벌매는 맹금류답지 않은 순한 외모 덕분에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정말 맹금류가 맞는지 의심할 정도다.
지금 이 벌매들이 이동을 하고 있다. 벌매는 열대, 아열대의 습윤한 산림지역이나 건조한 초지 등에서 생활한다. 산란기는 5월 하순에서 6월 하순까지로 한 번에 1~3개의 알을 낳고 암수가 함께 알을 품으며 약 30~33일이 지나면 부화를 한다. 지난 여름 번식을 마친 벌매들이 겨울을 보낼 곳으로 이동하고 있어 새별오름이나 금악오름, 천아오름, 개오름(견월악), 마라도 상공을 지나고 있다. 번식기에도 가끔 동백동산 곶자왈을 비롯한 중산간의 초지대나 숲에서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제주에서도 번식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직까지 확인 되지는 않았다.
벌매는 단독행동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동 시기에는 대규모로 무리를 지어 하늘을 선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리지어 나선형 비행을 하며 상승기류를 찾아서 최대한 체력을 아끼면서 월동지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벌매를 보기가 무척 어려워지고 있다. 산불이나 벌채로 인해 산림이 훼손되면서 이들의 서식지가 점점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매는 높은 나무의 꼭대기쯤에 둥지를 트는 습성이 있어 나무가 사라질수록 번식하기가 힘들어지게 된다. 살충제나 농약 사용으로 벌매의 먹이가 감소하는 것도 벌매 개체수 감소에 한 몫을 하고 있다. 개체수의 급격한 감소로 결국 2012년 5월에 환경부에 의해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었다. 한국적색목록에도 멸종위기범주로 평가되어 있으며 앞으로 맹금류 중에서도 착하게(?) 생긴, 순한 외모를 가진, 특별한 벌매를 계속 보려면 관심을 가지고 서식지를 보존해주는 상생의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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