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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다시 평화와 통일을 꿈꾸다

제주한라병원 2020. 9. 10. 14:35

코로나시대, 다시 평화와 통일을 꿈꾸다

 

 

 

해마다 7월이 오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반세기 가까이 지났어도 기억은 생생하고 새롭다.1972년 7월 14일, 이른 아침부터 중대방송이 예고된 가운데 오전 10시가 되자 흑백 TV화면엔 자그마하면서도 다부진 사나이 얼굴이 등장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실은 제가 지난 5월 박정희 대통령의 뜻으로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남과 북이 상호 극비 방문해 의견을 조율한 결과 자주 평화 민족통일의 3대원칙 외에 ①긴장상태 완화, 상대방 중상비방 중지 ②무장도발 금지, 불의의 군사적 충돌사고 방지 ③다방면적 제반 교류 실시 ④적십자회담 성사 적극 협조 ⑤서울-평양 간 상설 직통전화 개설 ⑥이후락 부장과 김영주 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운영 ⑦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 등 7개 항에 합의했습니다. 북한도 이 시각 평양에서 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보부장의 이 발표로 전국은 온통 흥분과 감동에 휩싸였다. 그때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서귀포시가지의 어느 조그마한 전파상에서 이 뉴스를 들었다. 요즘처럼 집집마다 TV가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다. 길 가던 시민들이 함께 얼싸안고 기뻐했다.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은 느낌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통일은 오는 가’, ‘산천도, 초목도 울었다’ 등의 제목을 단 신문을 읽고, 또 읽으면서 통일된 대한민국을 꿈꿨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은 ‘멸공’과 ‘적화’ 통일을 주장하며 극단적으로 대치해왔다. 전쟁의 참상을 잘 아는 국민들로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또 다른 전쟁에 긴장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북 간에 대화를 하고 평화통일의 원칙에 합의한 7.4공동성명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컷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7.4 공동성명은 진정어린 통일의 방법이 아닌 권력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이후 박정희정권은 유신체제로, 김일성정권은 유일체제로 달리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그해 12월 남한은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노리는 유신헌법을 탄생시켰고 북한은 주석제의 영구성을 담은 사회주의 헌법으로 개정했다. 결국 역사적인 이 공동성명은 양쪽의 독재권력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는 비난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세기 전의 기억을 다시 떠 올리면서 그 공동성명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평가하자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 그 염원의 씨앗을 우리 국민들 스스로 가슴속에서 싹틔워야 할 때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지난달 북한이 개성에 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남북관계는 다시 심상치가 않다. 분단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이었던 지난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우려도 많다. 일부에서는 도무지 속셈을 알 수도, 믿을 수 없는 북한정권과의 평화협상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산천도 울고 초목도 울었다’고 할 만큼 가슴 뜨겁고 뭉클했던 우리 국민들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을 옛 일로 되돌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역사가 진보하는 것이라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협상도 이대로 멈출 수 없다. 


 실은 나도 평양에 다녀왔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제주도민 1차 방북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도착한 것은 2002년 5월이었다.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전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아름답고 정리된 느낌의 평양시, 시가지를 가로 지르며 청잣빛으로 출렁이던 대동강 물결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봄빛 창연한 모란봉과 을밀대,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꼈던  묘향산과 삼지연의 풍광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옥류관의 냉면 맛도 어느 덧 그리움으로 변했다. 더욱이 어느 소설가의 표현대로 그 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통일이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어린이에서부터 제주감귤이 너무 맛있었다는 평양시민, 얼른 통일돼서 한라산에서 박주라도 나누자던 안내원도 만났다. 그 후로도 나는 방북기자단 일원으로 금강산에 두 번 다녀왔는데 제주감귤은 북한 사람들과 대화를 여는 화두이기도 했고, 불신의 벽을 허무는 비밀 같은 단어이기도 했다. 


사실 제주도민들은 6.15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전인 1999년부터 북한에 감귤을 보냈다. 마늘 임가공사업과 제주흑돼지 평양농장 지원, 어린이용 의약품지원 사업 등으로 실질적인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했다.4차에 걸쳐 평양에 다녀온 제주도민은 900여명에 이른다. 평화의 섬 제주도민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드높인 사업이자 사건이었다. 


 코로나 19로 가뜩이나 어렵고 힘든 시기이다. 그럼에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꿈을 다시 꾸는 이유는 제주도민들이 기본적으로 남북협력 경험이 있고, 열정 또한 대단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이해관계라든가, 북한의 비핵화 등의 난제가 쌓여 있는 게 사실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지지부진하다. 요원한 과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주도민이 중심이 돼 다시 평화와 통일의 불씨를 되살린다면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새 길을 개척하는 원동력이 되리라 확신한다. 최근 통일부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이인영의원은 "다시 평화로 가는 오작교를 다 만들 수는 없어도, 노둣돌 하나는 착실하게 놓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 노둣돌을 놓은 일, 장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할 일이다.

 

 

 

<김건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