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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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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합된 국민 의지와 지혜로 위기 극복해야

제주한라병원 2020. 3. 31. 16:31


단합된 국민 의지와 지혜로 위기 극복해야

 



신제주 거리가 텅 비었다. 예전의 소란은 사라졌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산책길에 만난 친구는 마스크로 얼굴을 두껍게 가렸다. 인사라도 할까하다 그냥 지나쳤다. 아는 체 하기가 두렵다. 주택가 담장 사이로 하얀 목련이 꽃망울을 터트렸지만 아직 봄은 멀리 느껴진다. 코로나19가 만든 요즘의 풍경이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꽁꽁 얼어붙었다. 정말 큰일이다.


이웃 어른들은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 본다고 말한다. 충분히 공감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하늘만 쳐다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른바 난국이라 불렸던 시기마다 온 국민이 단합하고 지혜를 모아 그 위기를 극복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경험은 바로 이 코로나19의 위기상황도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날로 급증하던 확진 환자가 점차 줄어드는 반면 완치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감염 위험도 마다하고 방진복에 마스크를 쓴 채 24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며 땀 흘리는 의료진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온갖 욕설을 들어가며 공적마스크를 판매하는 약사들, 건물 소독과 온갖 폐기물을 처리하는 공직자와 자원봉사자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또, 시민들은 어떤가. 자기가 살 수 있는 공적 마스크를 사지 않겠다고 포스팅하거나 코로나19로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에게 쌈짓돈을 털어 성금이나 성품을 보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감동이다. 


하지만, 그런 감동을 가로막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스마트폰을 열면 포털 뉴스의 상위를 차지하는 바이러스 이야기, TV를 켜면 바이러스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실감한다.”는 어느 의사의 고백처럼 우리 언론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그 의사는 바이러스 질환에 대항하는 데 쓰는 군사용어도 썩 내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비상’이나 ‘재앙’이란 단어 자체도 거슬리지만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어떤 지도자의 표현, 그리고 환자 몇 명이 발생했다고 써도 될 말을 방역이 ‘뚫렸다’ 또는 ‘구멍이 생겼다’는 등의 표현이 맞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표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자극적인 단어로 온 나라를 위기 국면으로 몰아넣어야 했는가는 함께 고민할 과제이다. 


더욱이 코로나19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각은 지양돼야 한다. 중국인들의 입국을 중단시키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마스크 판매를 놓고서도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등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이 시비 거리가 되고 있다. 물론 정부가 잘못한 부분도 없지 않다. 코로나 사태가 곧 종식될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이나 의료인들이 마스크를 선점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 고위공무원의 언행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치인일수록, 정부의 관료들은 한마디 말에도 실수하지 말아야 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가는 정치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언론 또한 진영논리로 국민의 편을 가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4월에 치러질 21대 국회의원 선거도 코로나19 총선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제발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선거가 됐으면 한다. 지난 20대 국회를 냉정히 평가하고 튼실한 국가안보와 든든한 경제, 안정된 사회를 이루면서 한반도 평화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인물과 정당, 정책을 선택할 수 있는 총선이 되길 기대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정부와 질병관리본부의 대처가 훌륭하다고 보는 시각이 대체로 많다. 굳이 외신을 빌리지 않더라도 정부가 그동안 코로나19 대응의 3원칙으로 지켜왔던 투명성과 개방성, 민주적 절차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의 대처방식에 대해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공이라고 보도했고 영국의 BBC도 세계 최고의 검사능력과 98%에 이르는 테스트 신뢰도 등 우리의 선진화된 의료시스템을 소개하며 한국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롤 모델이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이런 외신을 내세우며 자화자찬할 일은 아니다. 다만 국민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우선이다.  


20년 전 미국에서 일어났던 9·11 테러 직후의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90%로 치솟았다. 미국 대통령 지지율 조사를 실시한 갤럽의 역사에서 최고 기록이라 한다. 테러 이후 넉 달 동안 대통령 지지율은 80%대를 유지했다. 3천 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슬픔과 추가 테러의 위협 속에서도 미국인들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그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는 국난의 위기를 온 국민의 단합된 의지로 극복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IMF 사태나 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의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고, 2003년의 ‘사스(SARS)’나 2012년에 발생한 ‘메르스(MERS)’ 유발 바이러스도 이겨냈던 국민들이다. 


얼마 전 서울시 코비드(COVID)19 심리지원단 의사들이 당시의 스트레스 백신을 활용해 내놓은 ‘마음 백신 7가지’가 눈길을 끈다. 자신을 믿고 응원하는 격려 백신, 좋은 일을 해나가는 긍정 백신, 위생수칙을 지키는 실천 백신, 바이러스 특성을 제대로 아는 지식 백신, 감염이 곧 끝난다는 희망 백신, 보건소와 진료소 등을 알아두는 정보 백신, 심신과 사고의 치우침이 없는 균형 백신이다. 우리 모두가 이 일곱 가지 백신을 마음에 접종받고 사회적 거리 유지 등을 실천한다면, 코로나19 사태는 화사하게 열리는 제주의 봄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 기대한다.  



<김건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