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체계 필수 요소로써의 역할 맡아
제주권역외상센터
지난 봄 제주시에서 업무차 서귀포시로 넘어가던 30대의 J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빗길에 과속으로 달리다가 미끄러지면서 승용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J씨는 119를 통해 가까운 서귀포 소재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 도착 당시 J씨의 혈압은 유지됐으나 맥박수가 급증하는 증세를 보였다.
해당 병원의 응급전문의는 이학적 검사상 복부내 출혈로 배안에 혈액이 고이는 혈복강이 의심된다고 진단하고 신속하게 권역외상센터 이송을 결정했다. 권역외상센터에도 환자의 상태 등에 관한 정보를 미리 알려줘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119와 의료진의 신속한 판단에도 불구하고 사고 발생 후 1시간이라는 골든아워는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전 연락을 받은 권역외상센터에서는 외상팀이 상주하고 있으나 환자상태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모든 외상 전담의와 마취과, 혈관 전문의 등에게 전원환자의 정보가 통보됐다.
환자가 권역외상센터로 도착했다. 환자상태는 얕은 기면 의식이었으며 혈압-맥박은 110/46 mmHg-90회/min으로 이완기 혈압이 낮았다. 외상팀은 즉각 대량 수혈 준비를 하면서 컴퓨터단층 촬영을 시행한 결과 환자의 비장과 좌측 신장의 고도 손상이 확인됐다. 그리고 환자의 혈압-맥박이 계속 낮아지고 있어 곧바로 수술하기로 하고 준비된 수술실로 이동했다.
다행히 긴급 수술 후 환자의 혈압-맥박은 안정을 찾아갔고, 수술 후 3일쯤 지나자 환자의 상태가 많이 호전돼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그러나 복부 수술 후 걷는 것이 환자의 회복에 중요한 치료중의 하나였으나 환자는 동반된 요추 돌기 골절과 다발성 갈비뼈 골절로 침상 안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수술 후 일주일쯤 지날 무렵 유착성 장폐쇄증이 합병증으로 발생했다. 긴급 조치를 하고 경과를 관찰하였으나 호전될 기미가 없어 재수술을 했다. 이후 환자 상태는 꾸준히 호전돼 입원 40여일만에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중증외상은 교통사고, 추락사고 등 일반 응급실에서의 처치 범위를 넘어서는 다발성 골절, 출혈이 발생하는 외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적절한 시간 내에 제대로 처치를 받지 않으면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손상이다. 예부터 맹수에 의한 손상, 실족사고, 무기를 이용한 싸움 등 인류는 중증외상에 항상 시달려 왔다. 당시 마땅한 치료방법이 없었기에 대부분의 중증외상환자들은 사망에 이르렀다.
20세기에 이르러 마취, 수술, 수혈, 항생제 등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런 중증외상환자들의 생존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산업혁명 이후 자동차, 중장비, 고층건물 등이 증가하며 고위력 (high energy) 사고가 증가함에 따라 중증외상환자들의 발생률도 높아졌다.
특히 산업은 발전하였으나 안전의식 및 응급의료체계가 미숙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이러한 중증외상환자들의 사망률은 높을 수밖에 없다. 뇌, 심장, 폐 같은 주요장기가 다치면 사고 즉시 사망에도 이를 수 있으며 치료를 받는다 하더라도 영구적인 후유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 외 장기라도 손상이 크거나 치료가 지연되면 과다 출혈, 영구적 장기 손상으로 사망 또는 심각한 장애를 입게 된다. 특히 흉, 복강 내 출혈은 외부출혈이 안보이기에 심각하다고 인지되지 않아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중증외상 환자의 치료는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같은 외과의사들 뿐만 아니라 마취과, 내과, 영상의학과 등 많은 분야의 전문의들과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이런 복잡한 손상을 총괄할 수 있는 외상외과 의사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외상센터는 이러한 의료진들이 있는 종합병원에 있어야 하며 특화된 인력과 시설이 필요하다.
권역외상센터는 응급의료센터의 특수개념으로 중증의 외상 환자들이 병원 도착 즉시 응급수술과 치료할 수 있는 외상전용 수술실, 중환자실, 병실 및 외상전용 의료장비, 그리고 외상세부전문의, 외상간호사, 코디네이터 등 외상전문 인력을 갖춘 센터를 말한다. 권역외상센터는 외상환자의 진료뿐만 아니라 외상의료에 관한 연구 및 외상의료 표준의 개발, 의료인 외상교육훈련, 대형 재해 발생 시 대응 등 지역의료체계의 필수 요소로써의 역할이 있다.
제주도는 바다에 의해 육지에서 떨어져 있어 중증외상환자 발생 시 이송이 어려운 특징을 가진 지역이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10만 명당 사고손상 사망자율은 전국은 55.2명인 반면, 제주도는 60.3명이다. 총사망자 대비 손상사망자비는 전국이 10.1%인 반면 제주도는 10.7%이다.
이렇게 지형적 특성, 높은 사망률 때문에 제주도에서도 자체적인 권역외상센터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제주한라병원은 2015년부터 임상과로 외상외과를 개소하였으며 2016년 보건복지부로부터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되었다.
이후 제주한라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증외상 환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320여명의 중증외상 환자들이 제주한라병원에서 치료받았다. 제주한라병원 권역외상센터는 현재 외상전담전문의 8명을 비롯한 관련 전문의들이 중증외상환자 치료를 위해 365일 24시간 대기하거나 진료하고 있다.
<제주권역외상센터 권오상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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