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이야기 ⅩⅩⅩⅥ, 이집트 판 신데렐라 ②
슬리퍼를 낚아챈 독수리는 파라오에게 날아가…
아리따운 로도피스가 목욕을 하는 동안 시녀들은 그녀의 옷과 보석 허리띠 그리고 그녀가 특히 아끼는 빨간 ‘슬리퍼’를 들고 옆에 서 있었다. 사방은 너무나 평화롭고 조용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독수리 한 마리가 푸른 하늘에서 그녀를 향해 순식간에 내려왔다. 시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로도피스의 옷과 샌들을 떨어뜨린 채 달아났다. 욕조에 있던 로도피스 역시 어쩔 줄 몰라하며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못했다.
평화롭던 정원을 덮친 독수리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로도피스가 가장 아끼는 빨간 슬리퍼 한 짝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낚아채더니 다시 하늘 높이 치솟았다. 독수리는 하늘 높은 곳에서 한두 바퀴 원을 그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나일 계곡이 있는 남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가장 아끼는 슬리퍼 한 짝을 잃어버린 그녀는 양아버지 카라코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 다시는 그 슬리퍼를 신지 못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편, 슬리퍼를 낚아채간 독수리는 곧장 나일강을 따라 멤피스로 날아가더니 파라오의 궁전에 다다랐다. 같은 시간, 파라오 아마시스는 궁전의 법정에 앉아 재판을 주관하면서 사람들의 불평과 불만을 듣고 있었다. 독수리는 파라오의 무릎 위에 로도피스의 빨간 슬리퍼를 떨어뜨렸다.
거대한 독수리의 출현에 놀란 파라오 아마시스는 자신의 무릎 위에 떨어진 아담한 빨간 슬리퍼를 의아하게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섬세하고 아름다운 수가 놓여 있었다. 파라오는 샌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말했다. “여봐라, 이렇게 아름다운 슬리퍼를 신는 여인이라면 분명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일 것이다. 이 슬리퍼를 가지고 온 독수리는 호루스의 화신임에 틀림없다.”
파라오 아마시스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전국에 알리라. 델타의 도시들은 물론이고 상이집트의 도시부터 왕국의 국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도시들에 알리라. 이 붉은 슬리퍼는 필시 신성한 신 호루스가 독수리로 변하여 나에게 보내 준 것일지니 이 신발이 꼭 맞는 여인을 나의 아내로 삼을 것이다!” 파라오의 명을 받은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파라오시여, 생명과 건강과 능력이 함께 하소서. 분부대로 지금 당장 이행하겠나이다.”
파라오의 명을 받은 사신들이 멤피스를 출발해 헬리오폴리스와 타니스, 카노푸스를 거쳐 나우크라티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파라오의 사신들은 부유한 상인 카라코스가 노예시장에서 사들인 아름다운 그리스 소녀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카라코스가 그녀를 신들이 자신에게 보호를 맡긴 공주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보살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신들이 나일 강가에 있는 로도피스의 저택으로 가보니 마침 그녀가 정원에 앉아 있었다. 빨간 슬리퍼를 보여주자 로도피스는 뛸듯이 기뻐했다. 사신들은 그녀에게 말했다. “이 신발을 신어보시오, 아가씨” 슬리퍼를 신어 보자 원래 제 것이었으니 당연히 맞춘 것처럼 슬리퍼는 그녀의 발에 딱 맞을 수밖에. 게다가 그녀가 시녀를 불러 그녀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나머지 한 짝의 슬리퍼를 가져오게 했다.
파라오가 찾아 모셔오라고 명령한 여인이 바로 그녀라는 것을 확인한 사신들은 로도피스에게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저희들은 선한 신 파라오 아마시스께서 신발의 주인을 찾아 멤피스의 궁전으로 모셔오라는 명령을 하셔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아가씨께서는 모든 예우를 다해 영접될 것이며, 그분의 왕궁에서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파라오께서는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가 이 신발을 가져와 당신을 찾게 한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사신의 말을 들은 로도피스와 카라코스는 파라오의 명령에 영광스럽게 따랐다. 로도피스는 카라코스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작별인사를 나누고는 새로운 인생을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후 멤피스에 도착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를 파라오는 왕비로 삼았다. 파라오와 로도피스 왕비는 그 후로 행복하게 살다가 페르시아의 캄비세스가 이집트를 침략하기 한 해전에 여생을 마쳤다.
전 세계 곳곳에 이와 같은 신데렐라 유리구두 스타일의 이야기가 긴 세월동안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왔지만, 이집트에서는 지형과 기후가 반영된 ‘슬리퍼’로 그 모습이 약간 달라져있을 뿐 이야기의 뼈대는 흡사하다. 현대에도 여인들이 소장하고 싶어하는 소위 명품의 범주에 가방이나, 옷도 있지만 구두가 절대 빠지지 않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가 보다. 오~ 여인들의 영원한 환타지, ‘신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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