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찾는 겨울 철새들의 또 다른 안식처
구좌읍 오조리
밤새 비가 왔구나! 했더니 멀리 한라산에는 하얗게 눈이 덮였다. 한라산까지 가지 않아도 중산간의 숲에서도 눈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의 매력인 눈밭을 걷는 즐거움은 생각만 해도 설렌다. 하지만 이렇게 코끝이 시려오면 궁금해지는 곳이 있다. 소리 소문 없이 찾아드는 철새들로 조용한 마을이 분주해지는 오조리 마을은 겨울이 시작하면 꼭 가보게 된다.
겨울이 깊어지고 철새들의 개체가 많아지면 철새 도래지에는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사람들의 접근이 제한된다. 그러기 전에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을 만나러 가 본다.
◇ 황근
제주도의 철새도래지하면 다들 구좌읍 하도리을 많이 얘기하지만 하도리는 많은 철새와 귀한 ‘저어새’가 찾아오는 중요한 곳이다. 하지만 자꾸만 개발의 물결이 그 곳을 변화하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래도 철새의 군무가 보고 싶다면 하도리는 꼭 찾아 봐야 될 것이다. 하도리를 출발해서 종달리 해안을 걸으며 간조 때(바닷물이 빠질 때) 갯벌에서 먹이를 찾아 해안가를 수놓는 새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철새에서 우리나라가 살기 좋아 텃새가 된 ‘흰뺨검둥오리’는 자주 만나게 된다. 습지에서도 논, 밭에서도 자주만나는 ‘흰뺨검둥오리’는 철새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는 듯하다. 낯익은 아이들의 먹이잡이 사이에 긴 부리를 이리저리 저의며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롱 다리의 하얀 새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천연기념물 ‘저어새’다. 10월 저어새가 날아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게 되니 너무 반갑다. 저어새는 손에 꼽힐 만큼의 개체수가 조용히 날아와서 겨울을 보내고 날아간다. 몇 년 전 애월의 바닷가에서 ‘저어새’가 겨울이 지났는데도 혼자 쓸쓸히 바위에 앉아 있는 걸 보게 되었는데 동행한 조류박사님께서 이렇게 혼자 날아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건 짝을 잃었거나 병이 들어서라고 한다. 군무를 이루는 다른 철새들과는 달리 20마리를 넘지 않는 저어새가 건강하게 겨울을 잘 견디고 날아가서 다음에 또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가까이에서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멀리서 바라보며 발길을 오조리로 향했다.
◇ 양어장 낚시배
해안도로 옆으로 쌩쌩 지나는 차들을 보면서 철새들은 가까이 차 소리가 나면 날아가지 않지만 엔진을 끄면 날아간다는 전문가의 말씀이 생각났다. 차 엔진이 켜져 있으면 사람들이 차안에 있으니깐 덜 위험을 느낀다는 말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동물들이 적응해가는 것이 안쓰럽고 미안하다. 오조리 해녀의 집을 지나 큰 도로를 지나면 나지막한 오름을 끼고 산책길이 나온다. 단숨에 올라갈 수 있을 뜻한 이 오름은 ‘식산봉’이다. 제주도의 오름 중에 ‘봉(烽)’자가 들어간 것은 다 옛날 ‘봉수대’가 있었던 곳인데 오조리 ‘식산봉’은 봉수대는 없었지만 ‘봉’자가 들어간 이유는 왜구의 침략 때 오름 위에 쌀가마니를 쌓아 놓아 멀리 바다에서 바라보는 적군에게 풍족한 군량미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적군을 물러가게 했다고 하니 봉화 불로 적군의 위험을 알린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해서 ‘식산봉’으로 불였다고 한다. 작지만 위풍당당한 식산봉을 돌아 들어가면 아늑한 포구가 나온다. 오조리 포구다.
◇가마우지
마을과 오름 사이 방파제를 만들어 자그마한 마을 포구는 성산 갑문이 생기면서 그 기능이 상실되어 지금은 마을에서 운영하는 자연 양어장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건물이 있는 양어장이 아니라 그 곳에서 자연 서식하는 물고기들을 기간을 정해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용료를 받고 고기잡이를 허용한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연안습지이기도 하다. 물 가장자리로 가면서 수위가 깊지 않아 물새들이 살아가기 용이하며 철새들이 날아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물위에 작은 형체가 물 안에 들어가서는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보는 이가 물에 빠진 듯 숨이 차오를 때 쯤 물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논병아리’는 작은 체구에 잠수를 가장 오래 한다고 한다. 고급스러운 황색 깃털이 머리 부분을 장식한 ‘홍머리오리’도 어김없이 날아와 있다. 검은 몸에 부리까지 하얀 얼굴을 가진 ‘물닭’은 뮤지컬의 주인공처럼 우아하다. 마을에서 물 수위를 조절해서 철새들이 좋아하는 물 파래의 번식을 도와 싱싱한 물 파래를 새들이 먹을 수 있게 해주신다는 이장님 말씀처럼 ‘물닭’이 아주 맛있게 파래를 먹고 있다. 잔잔한 물결을 따라 사랑놀이를 하는 ‘넓적부리오리’가 평화롭게 보인다. 자기 영역에 찾아온 손님을 경계하는 걸까? ‘가마우지’들이 곳곳에 무리를 지어 주위를 살핀다. 언제나 우아한 자태로 혼자이기를 고집하는 ‘외가리’도 오늘은 철새들과 이웃이 다. 하늘 높이 날면서 기회만 노리는 맹금류인 ‘물수리’가 물고기를 잡아 바다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식사중이다. 일반인들이 보기 힘든 장면을 보여준 ‘물수리’가 고맙다.
국가 보호종인 ‘황근 나무’의 자생지이기도 하며 건강한 생태를 이어 갈 수 있는 동·식물들의 안식처인 오조리 마을이 지금은 마을 분들의 합심으로 보존되어 가고 있어 너무나 다행이지만 조금씩 주변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위험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래오래 철새들이 오조리 마을을 찾았으면 좋겠다. ‘황근’잎이 유난히 곱게 물들었다.
<필자의 사정으로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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