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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유혹, 양귀비 (2부)

제주한라병원 2011. 6. 1. 14:53

2008년/8월

 

현종은 양귀비의 친인척을 관직에 대거 등용해 정치를 맡겼다. 원래 고아출신인 양귀비는 양씨 가문에 양녀로 들어갔기에 핏줄을 같이 하는 친척은 없었다. 하지만 현종은 양귀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양씨 일족에게도 특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의 죽은 부친은 대위제국공에 추서되었고, 숙부는 광록경에 임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큰오빠는 홍로경, 작은오빠는 시어사, 남동생은 사공에 임명되었으며, 큰언니 옥패는 한국부인, 셋째언니 옥쟁은 괵국부인, 여덟째언니 옥차는 진국부인에 봉해졌다. 양귀비의 6촌 오라비 양소는 품행이 좋지 못한 건달출신 소인배였지만 민첩하고 요령있는 행동으로 점차 현종의 신임을 얻어 국충(國忠)이라는 이름까지 받았다. 훗날 재상 이림보와 대립하고 이림보가 실각한 후에는 안록산과 대립하기도 했던 것이 바로 양국충이다. 그는 당 현종 치세 말기를 부정부패로 얼룩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또 현종은 양귀비만을 위한 온천인 ‘화청지’를 마련해주고 그곳에서 양귀비와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그는 양귀비를 자신의 말을 이해하는 꽃, 즉 ‘해어화(解語花)’라 부르며 양귀비의 아름다움 앞에는 꽃조차도 부끄러워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양귀비가 비참한 최후를 맞기 불과 5년 전인 751년 칠월칠석날에 있었던 일화가 전해져 온다. 이를 보면 양귀비가 현종을 어떻게 능수능란하게 유혹하고 쥐락펴락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현종이 화청궁에 거동하여 장생전에서 양귀비와 함께 노닐고 있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 하늘에는 은하수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는데 어인 까닭인지 칠석의 하늘을 쳐다보던 양귀비가 갑자기 흐느껴 우는 것이 아닌가. 현종은 왜 우느냐고 달래며 물었으나 양귀비는 그저 울기만 계속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이윽고 양귀비는 눈물을 닦으면서 띄엄띄엄 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하늘에 반짝이는 견우성과 직녀성,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입니까. 저 부부의 지극한 사랑, 영원한 애정이 부럽습니다. 저 부부와 같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에도 자주 기록되어 있지만 나이가 들면 가을 부채처럼 버림을 받는 여자의 허무함,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서글퍼 견딜 수가 없사옵니다...”

 

현종의 마음을 얻어 남궁에 들어간지 어언 10년이 지나던 즈음, 나이 들어가는 자신에게 식상해할 지도 모를 현종의 마음을 다시금 다잡는 양귀비의 놀라운 유혹재능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양귀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현종의 가슴이 어찌 지릿지릿 애절해지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현종은 양귀비의 손을 붙잡고 그들의 영원한 애정을 하늘의 반짝이는 별에게 맹세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될 지이다.”

‘비익조’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새로, 암수가 한 몸이 되어 난다는 데서 사이가 좋은 부부를 상징하고, ‘연리지’ 또한 중국 전설에 나오는 나무로, 뿌리는 둘이지만 가지는 합쳐져 하나가 된다는 데서 역시 부부의 깊은 애정을 상징한다. 현종과 양귀비는 이 '비익조'와 '연리지'처럼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을 맹세한 것이다.

 

한편 현종과 양귀비 인연의 파국을 초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 인물인 안록산은 변방의 절도사였다. 747년 정월 현종은 안록산을 환영하는 연회를 여는데 이 자리에서 안록산과 양귀비는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이때 양귀비의 눈에 든 안록산은 그녀의 수양아들이 되고, 이후 그녀의 절대적인 지지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위치에까지 올라간다.

 

755년 마침내 안록산은 간신이자 양귀비의 친척오빠인 양국충(양소)을 타도한다는 명분으로 소위 ‘안록산의 난’을 일으킨다. 이때 양귀비, 양국충 등과 함께 피난을 떠난 현종이 섬서성 마외파에 이르렀을 때, 가마를 운반하던 병사들이 ‘나라를 망친 양귀비와 그 일족을 죽이라’고 폭동을 일으키자 현종은 어쩔 수 없이 양국충의 살해를 용인한다. 양국충을 비롯한 일족이 무참히 살해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양귀비는 마외역관 앞 배나무에 스스로 목을 맨다. 756년 6월 14일,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미모와 권력으로 천하를 주무르던 천하절색 양귀비(楊貴妃)가 37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안록산의 난이 현종의 아들인 숙종에 의해 평정된 후 현종은 태상황이 되고 숙종이 황제가 되었다. 현종은 장안으로 돌아온 후에도 죽은 양귀비를 잊지 못해 그녀의 초상화를 앞에 두고 그녀를 지키지 못한 회한과 그리움 속에서 남은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비뚤어진 욕망 속에서 시아버지와 며느리로 시작된 인연이 파란만장한 연인의 관계로 어긋나기까지의 애정행각, 그 파격에 걸맞는 순탄치 못한 결말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양귀비가 보여준 그 치명적인 유혹과 매력, 그리고 거기에 인생의 모든 것을 던져버린 황제의 애절한 사랑은 시대를 뛰어넘어 숱한 문인들의 붓끝에서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