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이명아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자신의 몸처럼 돌본다

연재종료코너/숲이야기

작은것의 소중함도 놓치지 않고 살아야

제주한라병원 2017. 5. 29. 11:51

작은 것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고 살아야

어음리 바리메오름 남쪽




짙은 여름이 오기 전에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연초록의 5월은 너무도 싱그럽다.

숲길을 걷고만 있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꼭 숲이 아니라도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향긋한 꽃향기가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그럼 용암대지가 만들어 놓은 드넓은 벵듸의 5월은 어떨까?

어음리 벵듸 중에서 막힘없이 드넓은 곳이 바리메 오름 남쪽에 있다.

스님의 공양 그릇인 "바리"를 닮은 바리메오름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다보면 광활한 목초지인 '열흘'이 시아를 시원하게 한다. 애월리 공동목장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예전에는 수소만 방목했다고 한다. 어원은 '열리흘'에서 '열리'는 열린 또는 열리다의 뜻으로 막힘없이 트인 곳을 말한다. ''은 인공으로 땅을 파서 빗물을 고이게 해 그 빗물에 의해 흙이 쌓여 '개흙땅'이 되고 그 곳에 물이 고여 개펄과 같이 된 곳이다. 넓은 땅이지만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지 않아 목초를 심고 소를 방목했던 것 같다. 지금은 공동목장의 기능도 상실하고 그냥 목초만 끝없이 자라고 있다.

전날 내린 비에 젖은 초록의 물결이 빛을 받아 눈이 부시다.

다른 벵듸하고는 다르게 바닥이 빌레와 같은 암석이 아니라 '개펄'로 되어 있어 큰 습지는 찾아 볼 수 없지만 노루가 뛰어 놀다가 탈진하지 않을 곳에 작은 습지가 있다. 지금처럼 목초가 웃자라면 보이지 않지만 겨울에 가물어 바닥을 보여도 습지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도 송이고랭이, 골풀과 같은 수생식물이 빼곡하게 자라던 곳인데 목초를 베어 낼 때 같이 제거해버려서 수초를 의지해서 살고 있던 수소 곤충들도 자취를 감추어 지금은 처음 우리가 발견했을 때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어서 갈 때 마다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작은 생물이라도 찾아보려고 습지를 몇 바퀴 돌아보다는데 곱게 물에 담긴 오름과 하늘 반영이 아쉬운 마음에 위로가 된다. 습지는 중요하다. 그 곳에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으며 야생 동물들의 식수원이자 홍수에 물의 범람을 막아 주 듯 습지의 존재가 자연에는 꼭 필요하다는 걸 하루 빨리 인식했으면 좋겠다. 많은 습지가 보호된다면 습지를 품고 있는 벵듸의 무분별한 개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끝을 가늠하기 힘들만큼 드넓은 들판에 작아서 찾기도 힘든 습지이지만 무엇인가는 그 곳을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사실... 우리는 슬픈 일이지만 늘 작은 것을 놓치고 뒤 늦게 후회하는 과오를 범하고 살아가고 있다. 들판을 빠져나오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꽃이 폈는지 안 폈는지도 모를 애기 손톱만한 노란 꽃이 돌아가며 피는(산방상 원추화서) '뽀리뱅이'가 한들거린다. 누구의 간식이 될지 모를 '줄 딸기'도 분홍색 꽃을 활짝 피웠다. 허허벌판에 외롭게 홀로 외치 듯 쓸쓸한 '천남성'이 마음에 담긴다. 볼일 듯 말듯 빛을 받아 '쇠별꽃'이 반짝인다.

사람들도 제각각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듯 곤충들도 살아가는 방법이 다 다르다.

특히 그냥 지나치기 쉬우면서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는 곤충 중에 '거품벌레'가 있다. 거품벌레는 애벌레 때 몸에서 거품을 만들어 자기 몸을 다 덮어 보호막을 치는데 꼭 식물마디에 자리 잡는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누가 침을 벹은 듯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마디하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안에 벌레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매미과의 곤충이라 성충이 되면 1cm정도의 작은 몸이지만 매미처럼 생겼다. 지금 그 거품벌레가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자기 몸을 키우는 시기라 쉽게 볼 수 있다. 노란 실거리나무 꽃이 화려하게 피었어도 오늘은 발아래 앙증맞게 세상을 비추는 작은 야생화한테 눈 맞춤을 하며 말을 걸어야 할 것 같아 발아래만 보고 걷는다. '큰개불알풀꽃, 벌노랑이, 토끼풀, 개자리 등등' 내 몸을 낮추고 욕심을 버린다면 이렇게 검질(잡풀)이라고 부르는 작은 아이들이 꽃이 되어서 다가온다. 자연은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지만 가장 중요한 나를 낮출 수 있는 겸허함을 깨닫게 해준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길.

△ 줄딸기

△ 반영

△ 창질경이

△ 천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