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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 여성이 강하다

제주한라병원 2015. 3. 31. 17:48

한국스포츠, 여성이 강하다

 

유소연(25•하나금융그룹)이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여자골프 돌풍의 위력이 더욱 거세졌습니다. 유소연의 우승으로 올 시즌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와 LET는 모두 한국인 또는 한국계 선수가 우승을 장식했으며 일본 여자 골프대회에서도 한국 여자 골프가 휩쓸고 있습니다.


유소연은 3월 15일 중국 하이난성 하이커우 미션힐스골프장에서 열린 LET 2015시즌 4번째 대회인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앞서 LET 1∼3차전은 모두 한국계 선수가 정상에 올랐습니다. LET 시즌 개막전인 RACV 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는 호주 교포 오수현이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서 LET와 LPGA 투어가 공동 주관한 호주여자오픈과 LET 뉴질랜드오픈에서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가 연속 정상을 차지했습니.


올해 LPGA 투어 개막전인 코츠 챔피언십은 최나연(28•SK텔레콤)이 우승했습니다. 이어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는 신인 김세영(22•미래에셋)이 LPGA 투어 데뷔 첫 승을 신고했습니다. 태국에서 열린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는 양희영(26)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는 박인비(27•KB금융그룹)가 정상에 올라 올해 열린 6개 대회에서 모조리 한국계가 우승을 따낸 것입니다.


한국 여자가 LPGA에 처음 진출한 것은 고 구옥희씨가 1985년 처음이었고 대회 우승은 구옥희가 1988년 스탠다드 레지스터 대회에서 따낸 게 최초였습니다. 그리고 박세리가 1998년 5월에 우승을 차지하며 그 해 총 4승을 거두고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여자 골프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한국 여성 스포츠가 국제적으로 가장 먼저 크게 주목받은 것은 지난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세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였습니다. 한국여자농구는 1960년 당시 대표팀 평균 키가 168cm로 서구 여자팀보다 작았지만 1963년 페루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를 시작으로 1967년 체코 선수권에서는 결승에서 190cm가 넘는 소련에게 졌으나 은메달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여자대표팀은 박신자, 김추자, 신항대, 김영자, 주희봉, 임순화, 이혜옥 등으로 구성됐는데 가장 컸던 박신자의 키는 176cm이었습니다. 한국은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박신자의 기량이 뛰어나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습니다. 박신자는 1999년, 세계 여자 농구 100년을 빛낸 25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미국에서 설립한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됐습니다. 그 시절 가장 인기있었던 종목이 여자농구로 대회가 열리는 장충체육관은 항상 만원사례였습니다. 

  
한국스포츠에서 구기 종목 세계 대회 출전 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팀은 바로 여자 탁구 대표팀입니다. 이에리사, 정현숙을 앞세운 여자 탁구팀은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 탁구 선수권에서 중국을 3-1로 꺾고 단체전 우승을 차지하며 남녀 통틀어 첫 세계 대회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여자 양궁이 세계 최강이 되는데 그 주춧돌을 놓고, 가장 먼저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양궁 선수는 김진호입니다. 손가락이 부러진 상황에서 대표 선발전에 나가 1위를 했을 정도의 강한 정신력을 지닌 김진호는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과 1979년 베를린 세계 양궁 선수권 대회에서 전무후무한 5관왕에 등극했습니다. 1983년 LA 세계 양궁 선수권에서 또다시 5관왕에 올랐습니다. 이듬해 열릴 LA 올림픽에서는 컨디션 난조로 부진하면서 동메달을 차지했는데 금메달을 차지한 서향순이 신궁의 계보를 이어갔습니다. 여자 양궁 금메달은 1984년 서향순을 시작으로 1988년 김수녕, 1992년 조윤정, 1996년 김경욱, 2000년 윤미진, 2004년 박성현, 2012년 기보배가 그 주인공입니다. 한국 여자 양궁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은 45개에 달합니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여자 구기 스포츠의 선전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구기 종목 최초 메달' 기록을 모두 여자 선수들이 세운 것입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여자 배구 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구기 종목에서 메달(동메달)을 따낸데 이어 1984년 로스엔젤레스(LA) 올림픽에서는 한국 여자 농구 팀이 세계적인 강호들을 잇달아 물리치고 미국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 팀이 소련을 따돌리고 사상 첫 구기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1984년 LA 올림픽 때도 은메달을 따낸 여자 핸드볼은 1988, 1992년 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고 4회 연속 메달 행진을 이어오며 구기 종목 가운데 최고 효자 종목으로 떠올랐습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도 빼놓을 수 없는 여자스포츠 영웅입니다. 한국 피겨는 1960년대부터 올림픽 등에 출전했지만 매번 10위 이상에 그치고 피겨장은 국내에서 한군데 밖에 없어 피겨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종목으로 치부해 왔습니다. 하지만 김연아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처럼 나타났습니다.  2009년 LA와 2013년 런던 세계선수권에 이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최고 점수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따내 '세계 최고의 피겨 스케이터'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여자 빙상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이상화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아시아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동계 올림픽 이 종목에서 우승했고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도 우승,2연속 금메달을 획득하고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여자에게는 불모지였던 빙상계에 혜성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밖에도 동계올림픽에서 2회 연속 2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운 쇼트트랙 스타 전이경, 작은 키에도 아랑곳않고 세계적인 강호들을 따돌리며 세계선수권 우승, 베이징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펜싱 남현희 등도 인상 깊은 여자 개인 종목 선수들입니다.


그리고 축구에서도 여자 선수들의 활약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14년 7월, 독일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여자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데 이어 9월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U-17 여자월드컵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출전 사상 처음으로 남녀 통틀어 첫 우승을 거머쥐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특히 지소연 선수는 8골로 득점 2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초등학교 18개 팀, 중학교 17개 팀, 고등학교 16개 팀, 대학 6개 팀, 실업 7개 팀, U-12 1개 팀 등 모두 65개 팀 등록선수 1404명이 전부인 한국 여자 축구의 현실을 감안하면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의 여성 스포츠는 1886년 학교 문을 연 이화학당(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체조를 가르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신체활동 자체를 천시했고, 특히 여성들의 신체활동 참여는 커다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여학생들에게 체조를 가르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학부모들이 거세게 항의해 체조 수업이 중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화학당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며느릿감에서 제외될 정도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환경과 편견 속에서도 여성 스포츠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한국 스포츠의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목표를 이뤄내겠다는 집념과 강한 정신력, 섬세한 집중력 등 여성들만의 특유의 승부 근성, 여기에 보다 체계화된 훈련과 연습을 통해 여성 스포츠는 남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 성과를 내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