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속에 또 다른 중국을 만나다
사막의 오아시스 ‘카슈가르’
▲ 자연의 소나타가 일 년 내내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호수, 카라쿨.
중국에서 가장 서북쪽에 위치한 카슈가르(카스)는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로서 교역과 문화교류의 메카였다. 북경을 출발한 카라반(대상인)들은 난주, 둔황을 거쳐 천산 산맥을 따라 중앙아시아 5개국(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과 이란 북부 지역을 통과하여 소아시아의 이스탄불 및 유럽까지 목숨을 걸고 무역을 했다. 오늘날 이 길고 긴 유라시아의 통로를 ‘실크로드’라고 부르는데, 카슈가르는 길고 험난한 실크로드 중간 기착지로서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교류하던 도시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라의 혜초 스님과 당나라의 현장법사도 인도에 다녀올 때 바로 카슈가르를 가로질러 장안(서안)으로 갔다. 그러나 실크로드의 오아시스인 카슈가르는 다양한 인종들이 빚어낸 종교 유산들이 모래 바다 속에 묻힌 채 오랫동안 신비에 싸여 있었다.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 등 여러 종교가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다양한 실크로드의 문화유산들은 20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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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성분을 많이 함유한 산이 온통 붉다 못해 검붉다. |
하얀 모자는 요리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의 무슬림을 상징하는 것이다. |
‘실크로드의 악마들’의 저자 피터 홉커크는 “20세기 초반부터 1930년 중국이 유물 반출을 금지할 때까지 약 30년 동안에 스웨덴,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서양 열강들과 일본의 탐험가들은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따라 그곳의 오아시스 도시에 묻힌 수많은 유물들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빼내갔다”고 밝혔다. 이처럼 세계열강들이 유물을 훔쳐가던 시기에 바로 카슈가르는 온갖 비리와 거짓말, 사기, 모조품 등이 범람하는 도시로 변절됐다. 탐욕으로 가득 찬 장사치와 학자들에 의해 카슈가르는 더 이상 실크로드의 중심도시가 아니라 선현들이 남긴 우수한 예술작품을 훔치기 위해 인간의 탐욕으로 도시가 술렁거렸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카슈가르는 동쪽으로 타림분지, 서쪽으로 파미르고원을 바라보고 있어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자랑하는 도시다. ‘사막의 오아시스’로 불린 이 도시는 중국 실크로드 도시 중에 가장 풍요로운 오아시스 중에 하나였으며, 기후가 건조하면서도 화창해 참외, 수박, 포도, 석류, 무화과 등 과일이 풍성해 ‘과일의 고향’이라고도 불렀다. 이처럼 카슈가르는 기묘한 자연풍광과 다양한 인문적 요소 그리고 무슬림의 종교적 신앙심이 수백 년 동안 도시 곳곳에 스며있어 중국 속에 또 다른 중국의 모습을 연출한다. 실제로 카슈가르는 신강위구르 자치구에서도 가장 비중국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도시이다. 최근 들어 이 지역에서 독립을 준비하는 대규모의 시위와 움직임이 많아 중국에서는 티베트와 함께 가장 다루기 힘든 자치구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카슈가르에 발을 내디디면 이런 험한 정치적 상황과는 달리 포도의 달콤한 향기가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늘의 푸른빛을 가득 품은 카라쿨 호수, 일 년 내내 하얀 눈을 볼 수 있는 해발 7500m의 무스타크 설산,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불모지 타클라마칸 사막, 중국에서 가장 큰 이드카흐 모스크 등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자연과 인류의 문화유산들이 카슈가르의 존재감을 훨씬 크게 해 준다. 이 중에서 해발 3600미터에 자리한 카라쿨 호수는 빙산의 아버지라 불리는 무스타크 봉의 산자락에 자리 잡아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킬 만큼 대자연의 위대함을 한 눈에 보여준다. 눈이 시릴 만큼 푸른 하늘과 영원히 푸른 하늘빛을 담은 호수 그리고 하얀 눈을 덮어 쓴 만년설의 무스타크가 카슈가르의 자연의 미학을 한껏 뽐낸다. 물론 이 도시가 태곳적 신비감을 고스란히 간직한 자연도 있지만, 인간이 모여 도시를 형성한 카슈가르의 문화와 문명이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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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한편에서 간식을 먹으며 시장 나들이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여인들. |
이슬람은 남녀유별이 우리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다. 예배도 남녀가 분리된 장소에서 보는데, 시장 나들이도 남녀의 자리가 분명하게 나뉜다. |
아랍에서 건너온 질 좋은 카펫을 팔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 |
◀ 화려한 타일이 인상적인 황비묘.
인구 30만 명의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의 도시, 카슈가르에서 가장 눈여겨 볼 곳은 단연 무슬림들의 영혼의 안식처이자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드카흐 모스크이다. 이곳은 신강 위구르 지역의 이슬람의 중심지로서 위구르 족들에게 평온함과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성스러운 성지이다. 이드카흐의 뜻은 ‘기념일에 예배드리는 장소’를 의미한다. 외관이 노란색으로 칠해진 모스크는 1442년에 처음 건축된 후 증축과 개보수를 통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모스크 안으로 여성들은 들어갈 수 없지만 외국 여행자들에 한해서 내부관람이 허용된다. 하지만 팔과 다리가 나오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되고, 머리를 가릴 수 있는 천을 둘러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모스크 내부에서는 모두 신발을 벗어야 한다. 낯선 이방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할 땐 절대 절하는 방향에서 촬영하면 안 되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 뒤나 옆에서만 가능하다. 다소 까다로운 절차가 있지만 이슬람을 여행하는데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된다. 카라쿨 호수와 이드카흐 모스크 이외에 또 하나의 관심거리는 화려한 타일로 장식한 황비묘이다. 청나라 건륭황제의 후궁이었던 황비묘는 위구르족이었다. 높이 40미터에 이르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첨탑과 화려한 타일의 문양들이 여기가 마치 아랍에 온 것처럼 독특한 미학을 여행자들에게 선사한다. 절색 가인으로 명성을 날렸던 황비묘는 그의 가족들이 함께 안장된 곳이라, 카스의 주민이면 한 번 쯤 이곳을 찾아 그의 향수를 느끼고 싶어 한다.
모스크와 황비묘가 차분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는 곳이라면 카슈가르에서 제일 큰 관심거리는 단연, 재래시장일 것이다. 과거 실크로드 중간 기착지의 명성답게 도시로 들어서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큰 재래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도시의 인구에 비해 재래시장의 규모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수천 년 동안 대대로 이어진 재래시장의 풍경은 고스란히 카슈가르의 역사와 이곳 사람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소위 “없는 거 빼놓고 다 있다”라는 말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재래시장에서 거래된다. 중국 본토에서 들어온 값싼 공산품부터, 중국 각지에서 들어온 다양한 동물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들어온 형형색색의 향신료와 중동 지방에서 들어온 카펫과 장신구 등 지구별에서 사람들이 서로 거래할 수 있는 모든 품목을 옛날이나 지금이나 카슈가르 재래시장에서 거래된다. 양꼬치 하나 입에 물고 재래시장 주변을 빈둥거려도 좋고, 낯선 거리의 음식점에 앉아 홍차 한 잔으로 삶의 여유를 돌아봐도 좋다. 그냥 시장 주변의 편한 장소에 앉아 있으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시계처럼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짐을 반복하며 재래시장의 재미를 한층 고조시킨다. 사람들의 생김새는 분명 중국인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데 간판은 한문이고, 큰 호텔이나 상점들은 한족들이 다 차지했다. 그러나 재래시장이나 골목길에 들어서면 남자들은 무슬림을 상징하는 모자를 쓰고, 여자들은 아랍의 ‘히잡’이나 ‘브루카’는 아니지만 스카프로 머리와 얼굴을 가렸다. 얼굴 생김새는 동․서양의 중간도시다운 유전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슬람의 도시답게 하루에 다섯 번의 기도와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아잔의 코란 소리는 여기가 아랍의 한 도시를 방불케 한다. 소수의 한족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슬람을 믿기 때문에 아잔의 코란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모스크로 몰려든다. 일보다는 신앙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무슬림답게 카슈가르의 거리는 이슬람의 문화가 이들 생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과거에 다양한 종교들이 넘쳐났던 도시지만 현재는 이슬람의 종교만이 도시를 감싼다. 카슈가르를 여행하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아랍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처럼 묘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귓가에는 중국어와 위구르어가 라디오 음악처럼 들리는 카슈가르는 분명, 중국 속에서 만나는 또 다른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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