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포에 남겨진 日帝와 한국전쟁의 상흔들
제주건축 따라가기 <5>
서귀포시 대정읍은 ‘전쟁’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곳이다. 하지만 ‘전쟁’이 있기에 반대로 ‘평화’를 이야기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정읍은 예전 대정현이 있는 곳과 그 외의 지역으로 구분을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때 관아가 있던 대정현이 위치한 지역은 보성리와 인성리 일대이다. 그리고 바닷가 쪽을 모슬포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우리나라를 점령한 뒤 자국의 주민들을 대거 조선으로 보낸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기존 시가지를 휘어잡지는 못한다. 그래서 새로운 가로망에 의한 도시를 만들거나, 외곽지역-특히 물물운송이 쉬운 바닷가-에 근거지를 둔다. 모슬포도 그런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일본인 구로이타가 쓴 「미개의 보고, 제주도」라는 책에는 모슬포를 일본인 최초의 이주지라고 쓰고 있다. 대개 그렇듯 신흥중심지는 일본인들이 거주를 하게 된다.
일본인들이 모슬포에 거주를 하면서 이 일대는 일본의 전쟁준비를 하는 기지가 된다. 일본이 연합군에 계속 밀리면서 결사 항전을 준비하며, 그 중심지는 제주도였다. 바로 1945년 ‘제주도 방어작전 決 7호’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은 결전을 위해 1944년 5월 모슬포에 비행장을 완공시키고, 일본군 7만 명을 제주에 집결시킨다. 당시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 전체가 23만 명이었으니, 제주도의 긴박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제주도를 불바다로 만들 준비를 하던 일본은 노인과 어린이, 부녀자들을 육지부로 옮기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때가 1945년 5월이다. 그러나 제주와 목포를 오가던 고와마루라는 배가 미군 공군기의 침공으로 침몰한다. 이후 노인과 어린이, 부녀자들을 육지부로 대피시키려는 계획은 없던 걸로 된다.
대정읍은 전쟁의 아픔이 많은 곳이어서인지 등록문화재만 12개가 된다. 제주도 전체 21개의 절반을 넘길 정도이다. 대정읍은 그만큼 근대 건축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은 전쟁과 관련돼 있다.
대정 일대엔 비행기 격납고는 모두 19개나 된다. 이 곳 격납고는 제로센(일명 아카돔보)라는 비행기를 넣던 곳이다. 제로센은 우리가 잘 아는 ‘가미가제 특공대’의 비행기를 말한다.
제로센은 될 수 있으면 가볍게 만들었다. 무게는 1.6톤이었다. 제로센의 속도가 빠른 건 다른 전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웠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기는 2.8톤이었으니 제로센의 가볍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너무 가볍게 만들면서 사고 위험을 안고 다녀야했고, 본의 아니게 ‘가미가제 특공대’에 투입되는 운명을 맞는다.
▲ 산방산과 비행기격납고
▲ 제1훈련소 정문
대정읍은 일제의 흔적만 있는 곳이 아니다. 해방 후 곧바로 터진 한국전쟁의 아픔도 이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육군 제1훈련소 정문(1951년)과 강병대교회(1952년) 등을 대정읍 일대에서 만날 수 있다.
◀ 강병대교회
육군 제1훈련소는 한국전쟁 후 1956년까지 50만 명의 신병을 배출한 곳이다. 일제 당시 군사체제는 병력을 분산하는 체제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우리나라는 일제 당시의 병력분산형을 따라했는데, 미국의 제안으로 병력을 한데 모으게 됩니다. 그래서 모슬포에 제1훈련소가 만들어졌다.
육군 제1훈련소 정문은 돌과 콘크리트를 섞어 만들었다.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물갈기(일본용어로 ‘도기다시’)로 표면을 장식한 게 눈에 띈다.
강병대교회는 등록문화재 제38호이다. 장도영 장군이 건립했다. 장도영 장군은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 등을 지냈으나 박정희 권력에 패하면서 미국으로 떠난다. 그는 2012년 파킨슨병으로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대정읍엔 연예병사들도 몰려 들었다. 박시춘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삼다도라 제주에는~”으로 시작하는 ‘삼다도소식’을 작곡한 이도 박시춘이다. 박시춘과 ‘삼다도소식’이 모슬포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박시춘이 1952년 군예대(지금으로 말하면 연예병사) 대장을 맡으면서 ‘삼다도소식’을 발표한다. 군예대가 있던 자리는 지금은 길이 나면서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박시춘은 일제강점기 때 ‘황국신민’으로 조선의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가야 한다는 내용의 ‘아들의 혈서’를 작곡한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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