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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건축가 김중업, 그는 제주에 있나 없나

제주한라병원 2014. 5. 28. 14:35

세계적 건축가 김중업, 그는 제주에 있나 없나
제주건축 따라가기 <6> 김중업과 제주


◀ 소라의성

아쉽다. 거장 김중업의 작품이 제주에 없다는 점이 아쉽다. 1994년 그의 작품인 제주대 본관이 제주라는 이 땅위에서 사라졌다. 1964년에 지어진 제주대 본관은 ‘21세기의 건축물’이라고 찬양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부서질 우려가 있다. 바닷모래를 써서 살릴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철거를 하고 만다. 제주대 본관은 21세기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었지만, 정작 우리 제주도는 21세기가 오기 전인 20세기에 그 건축물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했다. 그게 지금 그대로 있다면 그 건축물을 일부러라도 보러 오는 이들이 있을텐데 말이다.


김중업 그는 자신이 쓴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라는 책을 통해 제주대 본관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21세기의 건축이라 일컬어질만큼 해외에서 더 알려져 있다. 나에게도 소중한 작품이어서 오늘에 이르러 쇠퇴해가는 모습을 볼 때 무척이나 가슴 아프다. 길이 남겨 두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건축가들은 건축물을 설계하면서 ‘기능이냐, 조형이냐’를 두고 고민을 하곤 한다. 양면성을 지닌 그걸 잘 조화시켜 건축에 표현하고, 나름의 답을 얻는 이들만이 건축가라는 호칭을 받는다고 한다. 그걸 이뤄낸 사람 가운데 한 분이 바로 김중업이다.


제주대 본관은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은 남지만 그의 작품이 또 있다고 한다. 서귀포에서 그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서귀중앙여중 본관(1971년)과 소라의 성(1969년)이다. 그러나 진짜 그의 작품인지는 의문이다.


서귀중앙여중 본관은 예전 제주대 수산학부로 쓰이던 건물이다. 서귀중앙여중은 대학 건물이어서인지 좌우대칭과는 전혀 다르다. 외관도 그렇다. 서쪽 입면은 1970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 만들기에는 쉽지 않은 고행(?)을 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서쪽 창의 프레임은 툭 돌출시켰으며, 서쪽에서 오는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각을 만든 점이 눈에 띈다.

 

 

▲ 서귀중앙여중 본관


서귀중앙여중은 한마디로 모던한 느낌을 전해 받을 수 있는 건축물이다. 그런데 부드러운 곡선을 많이 사용하고, 한국적인 건축양식을 도입하려 했던 김중업의 생각은 들어있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작품인지 긴가민가하다.


그에 비해 소라의 성은 김중업의 스타일이라는 느낌을 많이 준다. 유려한 곡선에 한국적 기둥이 그대로 표출돼 있다.


그러고 보면 김중업의 작품들 가운데는 우리 고전 건축에서 쓰이는 기둥을 많이 표현하는 걸 볼 수 있다. 고건축의 네 귀퉁이를 받치는 활주(活柱)가 그의 건축에 종종 엿보이며, 기둥의 짜임새를 표현하는 주심포 등도 그의 건축표현 가운데 하나를 차지한다.


소라의 성은 딱히 활주라고 하기엔 들어맞지 않지만, 분명 그가 쓰고 있는 기둥의 틀을 표현하는 건 분명하다. 사라져버린 제주대 본관에도 한국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기둥이 존재한다. 소라의 성도 그걸 닮은 기둥이 존재한다. 그 기둥 양식은 김중업의 작품이면서 서울에 있는 서산부인과의원(1965년)과도 닮아 있다.


그렇다면 소라의 성은 김중업의 작품이 맞을까? 답은 “글쎄요”이다. 외형의 풍김은 그런 듯하지만 김중업의 작품이라는 단서는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의 작품이 아니다’는 얘기들이 떠돈다.


제주도내에서 활동하는 한 건축가는 “젊을 때 제주도내 목수가 설계하고 지었다고 들었다”고 하며, “두 차례의 실측 때 김중업의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고도 한다. 그는 아울러 “미국에 있는 김중업의 아들이 ‘아버지의 작품이 아니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전한다. 두 차례의 실측은 소라의 성이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되면서 하게 됐다. 현재 소라의 성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무실로 쓰고 있다.


소라의 성이 김중업의 작품이라면 그가 쓴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라는 책에 나올 법 한데 그렇지 않다. 그 책 어디에도 소라의 성에 대한 설명은 한 글자도 없다.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제주대 본관은 김중업 작품이다. 진짜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다. 대신 김중업 작품인지 아닌지 모르는 작품은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으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그렇다고 소라의 성을 부수자는 말은 아니다. 아름다운 건축물이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좋다. 김중업의 작품이든, 소라의 성이든, 아니면 제주 목수의 작품이든 가치 있는 건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