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건축의 미학에 취하다
크로아티아 ‘스플릿’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플릿 역사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아드리아 해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크로아티아로 가면 로마 제정 말기시대의 궁전과 고택들이 늘어선 고대 도시를 만난다. 로마 제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로마 건축의 미학을 맘껏 감상할 수 있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스플릿이 바로 주인공이다. 특히 이곳은 로마 황제 디오클레시아누스가 노년을 편안하게 쉬기 위해 자신의 고향 근처에 그리스 양식과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스플릿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든 일등 공신은 단연,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다.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가졌던 그는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일 년 내내 보드라운 햇살이 내리쬐는 탁월한 기후 조건과 로마에 비해 번잡스럽지 않았던 도시 분위기가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예술성이 뛰어난 건축물들을 만들어 놓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과 종탑 그리고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성벽은 그 대표적 예다.
인류의 소중한 유산인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견뎌온 스플릿의 상징이다. 아드리아 해 연안에 남아 있는 최대 로마 유적지로서 이 궁전은, 매우 호화스런 모습을 자랑한다. 스플릿 주변의 섬들에서 채취한 석회암과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수입한 대리석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295년부터 305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지어진 이 궁전에서,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부터 11년간 지내다 여생을 마쳤다. 따라서 스플릿을 거니노라면 왜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가 이곳에 궁전을 짓고 마지막 여생을 보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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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시간도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스플릿의 구시가지 |
스플릿 성곽 안의 풍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와 중세시대로 여행 온 것 같은 분위기다. |
아직도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에는 일반사람들이 살고, 그 앞은 노천카페들이 들어서 여행자들의 눈과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
이탈리아어로 스팔라토(Spalato)라 불리는 스플릿은 3만 제곱미터에 세워진 궁전이 역사의 시초가 되었다. 지금은 작은 궁전에 불과하지만 4세기에 5천여 명의 사람들이 성곽 안에서 살았을 정도라면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사각형 모양의 궁전에는 동문(Silver Gate), 서문(Iron Gate), 남문(Brass Gate), 북문(Golden Gate)의 출입문 네 개와 망루로 사용되었던 16개의 탑이 있었다. 지금도 네 개의 성문은 그대로 사용되지만, 망루는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 네 개의 출입문은 도시의 숨은 비경들과 각각 연결된다. 재래시장이 열리는 곳은 동문과 이어져 있고, 해안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와 야자수 나무들이 들어선 남문은 과거에 바다로 바로 연결되어 있어, 황제나 귀족들이 시민들과 얼굴을 대하지 않고 이탈리아나 외부로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서문은 스플릿의 번화한 거리와 이어지고, 북문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나가는 도로와 연결된다. 이처럼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문들은 2천 년 가까이 이곳 시민들의 생활에 깊숙이 연관되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고대시대부터 중세시대까지 도시는 궁전을 둘러싼 성벽 안에서만 사람들이 생활했고, 밖으로 확장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멸망하자 스플릿은 아바르인과 슬라브인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아야 했다. 11세기에는 헝가리 제국, 15세기에는 베네치아 공국, 18세기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 등으로부터 천 년 동안 수십 차례의 침략을 받았다. 전쟁과 화재로 인해 궁전은 조금씩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집을 짓거나 도로를 만들기 위해 궁전에서 돌을 가져다 사용했다. 19세기 이후 스플릿이 아드리아 해에서 경제, 정치, 교육, 문화 등의 중심지가 되자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 도시의 팽창을 가져왔다. 현재 스플릿은 인구 20만 명의 대도시로 크로아티아에서 두 번째로 크고, 경제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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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건물은 아니지만 서민적이고 소박한 이곳 사람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스플릿의 구시가지. |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노년을 보냈던 스플릿 구시가지 전경 |
크로아티아 전통복을 입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 |
로마시대의 향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 도시의 여행은 궁전의 동문이라고 불리는 Silver Gate에서부터 시작된다. 두께 2m, 높이 22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궁전은 아직도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동문을 통해 들어가면 제일 먼저 높이 60m의 종탑이 눈에 들어온다. 13~14세기에 추가로 건축된 종탑은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183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발 아래로 아드리아 해와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스플릿의 비경과 아스라한 옛 영화로움이 스민 로마유적을 높은 곳에서 감상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스플릿의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든다. 종탑 밑으로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 쓴 대성당과 장식이 화려한 열주랑, 로마제국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는 삼각형 모양의 펜던트 등이 강성했던 로마제국의 영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 중에서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영묘가 있었던 대성당은 653년 처음으로 대주교가 파견되면서 묘지에서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장소로 바뀌었다. 성당 내부에는 정교하게 새겨진 조각상과 세련된 문양들이 그의 명성을 대신하고 있고, 프레스코 대리석으로 만든 설교단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조각들이 로마제국의 건축 기술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로마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독수리 조각상이 눈에 들어오는데 나무와 대리석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정교하게 깎아 놓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대성당은 아드리아 해에서 가장 귀족적이고 우아한 조각상들로 궁전의 가치와 기품을 한껏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성당과 궁전을 등지고 구시가지의 중심지인 시민광장으로 발길을 옮기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로마시대로 되돌아간 듯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 미로처럼 얽힌 구시가지 골목길은 스플릿 여행의 백미다.
종탑에서 보았던 이미지와는 달리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돌담과 대리석의 바닥 그리고 옹기종기 붙어 있는 건축물 등에서 로마제국의 힘과 수준 높은 문화의식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또한 머리 위로 빨래가 바람에 휘날리고, 수동 저울로 몸무게를 달아주며 돈을 받는 할아버지, 아이스크림을 파는 어린 아이 등 스플릿의 다양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서유럽처럼 화려한 네온사인이 없어서 좋고, 구시가지 중심거리에 차들이 다니지 않아 유럽의 고풍스럽고 귀족적인 분위기가 도시 곳곳에 스며있다.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구시가지는 1시간 정도 헤매야 어느 정도 길을 파악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그 어떤 사람들도 지도를 들고 여행하지 않는다. 다만 건물의 역사를 알기 위해 건축물의 연대와 그 역사가 표기된 건축물 지도만 필요할 뿐이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에 자세한 건축물 지도 없이는 연대를 짐작하기 어렵고, 찾기도 쉽지 않다. 비잔틴 양식, 중세시대의 르네상스 양식, 고딕 양식, 바로크 양식 등 건축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양식의 건축물들이 혼재되어 있어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야외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구시가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시민광장 앞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광장 중심에는 몇 개의 노천카페가 있고, 그 주변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물론 광장이라 부르기에는 다소 작은 규모지만, 아담한 규모가 오히려 이 도시와 잘 어울려 고풍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처럼 스플릿의 로마유적은 여느 유적지처럼 여행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며진 쇼 윈도우의 마네킹과 달리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 때부터 현재까지 수천여 명의 주민이 오롯이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성곽 내부에는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좁은 골목길, 대리석으로 지어진 아주 작은 호텔, 카페, 레스토랑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이 들어서 있고, 아침이면 구시가지 작은 광장에서 아드리아 해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시장이 선다. 이처럼 로마시대 건축물 안에서 우리의 일상이 이뤄지는 모습은 새로운 여행의 재미를 선사한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성 안을 메운 사람들은 다르지만 이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거의 없다. 이것이 바로 스플릿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문명의 이기가 도시를 완벽하게 바꿔놓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지만 아직까지 스플릿은 로마시대의 건축과 현대 문명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 아주 새로운 신구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 대리석을 깔아 놓은 골목길에서 이 도시의 주인인 디오클레티아누스를 왠지 만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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