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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도심이 좋다구요? 돌담 사잇길을 찾아 걸어보세요

제주한라병원 2013. 8. 28. 09:28

올레

삭막한 도심이 좋다구요? 돌담 사잇길을 찾아 걸어보세요

 

 

집으로 진입하는 올레

박제화 된 풍경이 된 것들이 많다. 올레도 그런 박제화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엔 걷기의 대명사인 ‘제주올레’가 뜨면서 올레도 덩달아 부각되고 있지만 그건 본래 의미의 올레와는 거리가 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만든 건 그건 그냥 길일 뿐이다. 제주에서 말하는 올레와 관광개념의 ‘제주올레’는 다르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사라지고 있는 올레를 점검하는 것도 의미있으리라 본다.


예전 풍경을 흑백화면으로 되돌려본다. 거기엔 미끄럼틀도, 시소도 없었다. 단지 애들의 웃음소리만 가득했을 뿐이다. 늘 위엄을 갖춘 팽나무와 돌담에 기대 말타기를 즐기는 사내들의 외침, 간혹 리어카와 자전거도 등장하곤 했다. 표준어로 고샅으로 불리는 올레의 흔하디흔한 모습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는 한갓 기억속의 풍경일 뿐이다. 기억 속에 묻힌 보따리를 훌훌 풀어내지 않는다면 그 풍경들은 이젠 제주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하는 옛것이 돼버렸다. 마치 흑백사진의 그것처럼 말이다. 왜 그렇게 됐냐고 말을 할 필요는 없겠다. 모두 잘 먹고 잘 살자고 외친 이유 하나였다. 단지 그 옛날이 그리워질 뿐이다.


도시개발은 어쨌거나 기존의 문화를 살리기보다는 파괴하는 방향으로 틀어졌다. 또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게 사실이 아닌가. 아우성치며 도시개발을 해달라고 요구한 건 우리였다. 길이 생기면 무조건 좋아라 했다. 그것도 구불구불한 길이 아니라 곧장 뻗은 길을 원했다.


격자형의 도시개발은 필연적으로 기존마을의 파괴를 불렀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도시개발을 원한 우리였고, ‘삼춘’으로 통하는 마을공동체의 파괴가 뒤따랐다. 한참 돌아보고서야 옛 추억이 어린 공동체가 그리워졌으나 되돌릴 수는 없었다. 마을공동체의 근원이던 올레는 개발로 끊어지고 사라지고 난 뒤였다.

올레는 건축공간의 백미이다. 구불구불한 것이 위엄은 없으며, 돌담보다는 높지만 사람들 사이의 벽을 만들어내지 않는 멋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올레는 공유공간이기도, 사유공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고샅이라는 골목길이나 올레나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다른 지방에서 말하는 골목길은 이웃이 함께하는 도로의 개념을 지니지만 올레는 그같은 공유개념에다 자신의 집마당에 진입하는 사유공간을 진입도로로 삼을 때도 포함된다.


제주의 마을공간은 한질(큰길)에서 갈려나온다. 한질에서 뻗은 동네를 이어주는 거릿길, 거릿길에서 올레와 올레를 이어주는 먼올레가 나오며, 공유공간과 사유공간이 모두 포함된 올레로 나눠진다.


올레는 제주 자연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점에서 특징이 묻어난다. 바람이 드센 제주이기에 올레라는 공간 건축이 가능했다. 구불구불하기에 강한 바람의 힘을 분산하고, 마당의 먼지날림과 널어놓은 곡식의 흐트러짐도 막을 수 있었다.


게다가 애초에 곧지 못한 올레는 역설적이게도 대문 없는 제주도에서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효과가 있었다. 대문 없는 집을 갖추고도 프라이버시를 지킨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올레의 능청맞은 구부러짐은 집 안을 직접 볼 수 없게끔 시선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계속되는 도시개발로 예전 풍경을 간직한 올레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벽은 공간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장치다. 공간과 공간의 연결고리는 문이 해낸다. 이같은 일반론은 제주의 실정은 아니다. 담이 공간을 확실하게 구분할 때는 눈높이에 비례할 때다. 그러나 올레에서만은 그렇지가 않다. 올레의 울담은 안을 바라보고자 하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쌓은 울담은 네모반듯하게 가공처리하지 않고 돌과 돌의 친화력을 의지삼아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레에서는 벽이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올레다운 올레를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옛 마을의 풍경을 지닌 곳이 아닌 이상 올레의 멋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옛 마을의 모습을 간직한 곳에서는 올레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격자형태의 삭막한 도심지보다는 구불구불하면서 돌담을 간직한 풍경만으로도 평온함을 가져다준다.


건축은 공간을 다루는 예술이라 한다지만 도시개발은 아직 멀었다. 오히려 옛 사람들이 건축 공간을 이해하고 즐길 줄 알았다. 삭막하기만 한 회색빛의 도시와 답답한 벽돌담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모른다. 한번쯤 올레를 찾아 떠나보길 권한다. 돌담 사잇길을 걷는 멋의 여유가 “이것이구나” 함을 느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