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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학개론>으로 뜬 ‘카페 서연의 집’

제주한라병원 2013. 6. 28. 13:37

우리가 지닌 기억을 온전하게 지키는 방법은?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뜬 ‘카페 서연의 집’-

 

 

 


첫·사·랑.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가 아닐까. 지난해 첫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한 편이 뜨거운 화제를 부른 일이 있다. 바로 <건축학개론>이다. 승민(엄태웅)과 서연(한가인)의 첫사랑 이야기를 잔잔하게 잘 그려낸 영화로 400만명을 돌파, 멜로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영화로 이름을 올렸다.


갑자기 첫사랑 이야기를 꺼내려니 어색한 면이 없지 않다. 이 코너에서는 줄곧 역사 이야기만 꺼냈기 때문일테다. 첫사랑을 꺼내려니 어색한 점이 없지 않지만 <건축학개론>이 제주에 남겨놓은 산물이 있기에 그 이야기를 따라가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아닐까 한다.


영화 세트장은 영화가 끝난 뒤 볼거리를 제공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세트장은 한결같이 반짝 떴다가 사라진다.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세트장이 대표격이 아닌가 한다. 일본인 관광객들을 겨냥해 대규모의 세트장을 만들었으나 이젠 제주에서는 흉물이 돼 버렸다.


그런데 <건축학개론>의 주무대는 이와 다르다. 생명을 지녔다. 그건 명필름문화재단이 ‘기억’을 보존하려는 의지를 잘 풀어냈기 때문으로 본다.

 

 ‘카페 서연의 집’ 연못. 어릴 때 서연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어릴 때 서연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키재기 흔적. 


지난해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의 열풍을 불러왔다. 영화의 OST인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영화 속의 첫사랑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였다. 영화 속 과거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 대학생인 이들이 건물 옥상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CD플레이어를 통해 흐르던 그 노래가 바로 ‘기억의 습작’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기억’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을 본 이들은 영화 속의 기억을 떠올린다. 영화가 뜨면서 영화 속의 ‘서연의 집’ 주가도 올랐다. 서귀포시 위미리 촬영지인 ‘서연의 집’은 제주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하나 둘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세트장이라는 한계였다. 세트장으로 보존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영화 제작사인 명필름문화재단은 세트장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당당한 건축물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 작업은 영화의 총괄 건축자문을 맡은 구승회 건축가가 설계를, 우승미 미술감독이 인테리어를 담당했다. 영화 연출을 맡았던 이용주 감독도 아이디어를 보탰다. 사실 이용주 감독은 건축가 구승회씨와 연세대 건축학과 같은 학번이다.


고민은 영화 그 모습 그대로 할 것인지, 아니면 기억의 중요한 편린만을 담아낼지 여부였다. 다양한 견해들이 오고갔다고 한다. 결국은 몇가지 기억들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간을 창출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다. 그래서 탄생한 게 ‘카페 서연의 집’이다. ‘카페 서연의 집’은 지난해 1월 설계를 시작해 같은해 9월 공사에 들어갔다. 지난 3월 27일 오픈한 ‘카페 서연의 집’은 가볍게 와서 영화 속 기억들을 가져보라고 한다.


<건축학개론>의 대표적인 기억은 어릴 때 서연이 키를 재던 곳과 발자국이 남겨진 연못, 바다를 지켜볼 수 있는 1층의 슬라이딩 도어 등이 있다. 키를 쟀던 곳과 연못의 발자국은 서연이라는 주인공의 기억과 영화를 본 이들의 기억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1층의 슬라이딩 도어는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나는 한 장면으로, 제주도의 풍광을 담으려는 노력이 여기에 있다.


영화의 힘은 크다. 그 힘을 어떻게 발산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짐은 물론이다. ‘카페 서연의 집’은 주말이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명소가 됐다. 영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카페 서연의 집’은 말하고 있다. 만일 ‘카페 서연의 집’이 아니라, 세트장과 똑 닮은 ‘서연의 집’이 만들어졌으면 어땠을까. ‘서연의 집’ 그대로라면 영화 속의 기억들을 붙잡아두는 장점은 있어도, 문화콘텐츠로 만드는 데는 버거웠을 가능성이 높다. ‘서연의 집’은 많은 사람들을 담을 만한 공간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페 서연의 집’으로 재탄생시킨 영화 제작사의 노력은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만든다. 영화 하나를 통해 사람들을 유혹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현장이 바로 ‘카페 서연의 집’ 아니던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이다. <로마의 휴일>은 모든 영상을 로마에서 촬영했다. 오드리 헵번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영화로, 이 영화로 인해 로마는 ‘반드시 가고 싶은 곳’으로 떠올랐다. 스페인 계단에서 오드리 헵번처럼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 로마에 간 이들이면 누구나 하는 행위가 됐다. 그래서 영화의 힘은 대단하다. 그건 바로 문화콘텐츠가 가진 힘이다.


‘카페 서연의 집’은 제주에서도 이런 문화콘텐츠 활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잘 만들어진 건축물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초 사라진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는 너무 아쉽다. 멕시코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이 작품을 가만히 놔뒀으면 어땠을까. 제주특별자치도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철거하지 않고 보존을 했더라면 ‘카페 서연의 집’ 이상의 가치를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라진 기억을 다시 되돌리기는 힘들다. 파괴된 기억은 추억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그래도 영화 <건축학개론>에 대한 기억은 제주에 풍부하다. 그런 기억의 조각들을 붙잡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카페 서연의 집’으로 향해보자. 제주공항에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경우 공항리무진을 타고 월드컵 경기장 정류장에 내린 뒤 서귀포 시내 좌석버스 100번 탑승, 위미1리 정류장에서 하차해 바닷가로 걸어가면 된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이며 연중무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