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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세상만사-보험 이야기Ⅰ

제주한라병원 2012. 5. 2. 14:29

2012/3

인류가 찾아낸 합리적인 위험관리형 경제제도
- 보험 이야기Ⅰ -

 

 

먼 옛날 사람들은 자연재해, 질병,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돌이나 나무와 같은 것들의 힘을 믿거나, 어떤 영적존재에 의존함으로써 정신적 위안을 찾았다. 소위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 혹은 토테미즘 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하지만 인류가 발전할수록 위험에 대처하는 인간의 능력은 주술적인 방법에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러한 변화의 결과 중 하나가 보험이라는 독특한 제도일 것이다.


현재와 유사한 보험 제도의 시초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견되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즉, 상대방에게 당한 만큼 갚아주는 동해보복의 원칙(同害報復의 原則)으로 더욱 잘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약 4천년 전 바빌로니아의 상인들은 해상활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보호 받기를 원했다. 이러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텀리(bottomry)’라는 선박저당계약이 생겨나게 된다. ‘보텀리’는 선박이나 거기 실린 화물의 소유자가 항해에 앞서 그 선박이나 화물을 저당잡혀 자금을 빌려 쓴 후 항해가 무사히 끝나면 원금과 고율의 이자를 지급하고, 만약 해난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면 채무의 일부나 전부를 면제 받던 대차거래다. 바로 오늘날 보험의 효시라 할 수 있겠다.  


이후 서양문화의 전성기인 르네상스시대가 되면서 인류의 문화적 풍요와 새로운 문물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해졌고 이는 해상무역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르네상스 초기인 14세기, 해상무역이 활발하게 일어날수록 사람들은 해적이나 자연재해의 두려움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의 베니스, 제노아, 피사 등의 상업도시에서 프란시스코 디마르코 다티니(Francesco di Marco Datini)등의 상인이 해상보험을 인수한 것을 필두로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보험 사업은 급속히 성장하게 된다. 당시 해상무역을 주도한 선주들은 자신이 처한 위험을 타인에게 넘기길 원했으며, 또한 재력가들은 이들의 위험을 인수하는 대가로 이윤을 추구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대개 위험을 인수하는 역할을 보험사가 하고 있지만, 예전엔 커피를 마시는 커피하우스에서 일반 개인에 의해 보험거래가 일어났다고 한다. 현대의 커피숍은 연인과 친구들의 만남의 장소로 바뀌었지만, 17세기경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사회활동과 상업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1688년 로이드 보험사의 설립자인 에드워드 로이드는 런던에 ‘로이드 커피하우스’를 열고, 이 곳을 드나드는 해운업자와 상인들에게 최신 해상뉴스와 선박 매매정보를 제공했다. 이후 선주와 보험계약자들이 모여들어 커피하우스 안쪽 자리 한켠에서 상인들을 대상으로 보험영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모여 법인을 만든 게 로이드 보험사다. 로이드 커피하우스는 가장 활발한 보험거래가 이루어진 곳이었으며, 지금은 한해 보험료 수입만 약 38조원을  벌어들이는 세계적인 보험회사 <로이드>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1666년 9월 2일 런던의 조그만 빵 가게에서 불이 발생하여 자그마치 1만 3천채의 집을 잿더미로 만든 끔찍한 ‘런던 대화재’가 발생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해상에서 발행할 수 있는 위험뿐만 아니라 육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도 관심을 돌리게 되었고, 이는 화재보험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보험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겨난다. 기존의 보험은 해상보험과 화재보험이 전부였지만, 산업혁명으로 인한 철도제철기술의 혁신으로 기계보험, 상해보험, 책임보험 등 다양한 종류의 특종보험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에 접어들면서 대형선박, 자동차, 항공기 등 새로운 교통수단이 등장하며, 우리가 생활 속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자동차 보험도 생겨나게 되었고 항공보험도 등장했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는 생명보험과 유사한 형태로 볼 수 있는 신라시대의 창(倉), 고려시대의 보(寶), 조선시대의 계(契)라는 일종의 상호부조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근대적인 생명보험은 1876년 일본과의 강화조약 체결후 일본인에 의해 도입되어 이후 1921년에는 한상룡 등의 실업가들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생명보험회사인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가 설립되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처럼 보험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태고적부터 사람들은 갖가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그 결과 인류가 찾아낸 합리적인 리스크 관리형 경제제도가 보험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위험을 타자에게 이전하거나 또는 공유함으로써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이러한 위험회피 심리가 만들어낸 경제제도의 부산물이 바로 보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