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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로 고립되자 난민수용서비스 시행

제주한라병원 2012. 2. 3. 13:45

2011년/12월

- 어느 섬나라 이야기 Ⅲ

경제 위기로 고립되자 난민수용서비스 시행


 

9.11 이후 세계 테러자금 세탁의 온상지로 지목되며 나우루에는 세계 각국의 비난이 빗발쳤고, 은행이 몰락하면서 국가 재정은 순식간에 악화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도와주겠다고 나섰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해온 난민들로 골치를 앓고 있었는데, 나우루가 이 난민들 약 1천명을 수용해주면 3천만 오스트레일리아 달러(AUD)를 지원해준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난민수용소 서비스를 제안한 것이다. 다급해진 나우루 정부는 이를 수락했고, 나우루 사람들은 겁에 떨면서도 몇 개의 시설에 나누어 난민들을 수용했다.


한번 재미를 본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기한이 지난 뒤에도 난민들을 데려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번에는 이라크 난민까지 받아들이면 추가원조를 하겠다고 나우루 정부에 제안했다. 2001년도 나우루 총인구는 약1만2천명이었는데, 그 중 나우루 사람은 절반 정도를 차지했고 난민이 가장 많았을 때는 그 수가 거의 2천명에 달했다. 인구의 약 20%를 난민이 차지하는 기형적인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우루를 한때 ‘아무도 일하지 않아도 모두가 부자인 나라’로 만들어 주었던 천혜의 자원, 인광석은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난민 수용 외에 딱히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던 사이 관광비자의 발급은 중단되었고, 유일한 입국 교통편이던 나우루 항공도 운항을 멈췄다. 이제 나우루는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말 그대로 ‘섬’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2003년 1월에는 서로 다른 두 대통령 명의의 성명서가 발표되기도 하는 등 정치적으로도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정부가 제대로 관리를 못해주자 성난 난민들은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가게 해 달라’거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인다. 난민의 인권을 옹호하는 국제사회의 비난여론도 높아갔다. 한편 나우루인광석공사의 노동자들은 그들대로 오랫동안 체불된 임금 때문에 투쟁에 나섰다.  


책임감을 느낀 오스트레일리아는 나우루 정부에 차라리 독립을 포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물론 나우루 정부는 ‘민족의 정체성’을 내세워 거부했다. 그렇다고 마땅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난민들 중 일부를 오스트레일리아로 되돌려 보냈다. 


2004년이 되자 국제연합은 난민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할 의료팀을 파견했다. 또 나우루 정부가 단식 투쟁으로 맞선 난민들을 체포하자 ‘인권 보호’를 내세워 변호사도 파견했다. 나우루에 단 두 개밖에 없는 호텔은 모두 난민구조팀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난민들은 차츰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갔고, 나우루에는 약 3백명 정도가 남았다. 이번에는 그들이 나우루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원래 나우루 헌법에 따르면 난민을 구속할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데도 난민수용소가 설치된 것이다. 헌법을 위반한 사실이 분명했기 때문에 재판이 진행될수록 상황은 불리해져갔다.


그렇다고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의 원조를 받아야만 하는 입장에서 바로 난민들을 석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원조를 통해 재정을 유지해야 하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에서도 난민수용소는 나우루 국민들의 생활에 꼭 필요했다. 난민수용소 운영을 위해 오스트레일리아 군대가 중유를 운송해 왔고, 덕분에 전기를 발전해서 이용할 수 있었다. 또한 상점들은 난민구조팀을 손님으로 삼아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곤란해진 나우루는 재판에 참석할 변호인단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았다. 변호사가 나우루에 입국하지 못하도록 해서 재판이 열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불법 행위는 용납되지 않았다.


드디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나우루에 수용되어 있는 난민들을 정식 난민으로 인정하고, 모두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NGO 활동가들이 수용되어 있던 그들의 석방을 준비하기 위해 나우루로 출발했다. 이렇게 독특한 나라의 독특한 국가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던 나우루의 난민수용 대행서비스는 막을 내렸다.
 (다음 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