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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꽃으로 피어난 인도 엘로라, 카일라사 사원

제주한라병원 2024. 1. 31. 15:53

 

종교의 꽃으로 피어난

인도 엘로라, 카일라사 사원

 

 

 

2023년 중국을 넘어 세계 인구 1위에 오른 인도는 28개의 주와 8개의 직할지로 구성된 연방 공화국이다. 인더스 문명, 힌두교, 불교 등 문명과 종교의 발상지로 잘 알려진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무굴 제국의 영혼이 담긴 타지마할과 아그라 성은 인도 건축의 미학을 보여주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은 종교 건축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엘로라의 석굴·사원 인도 마하라슈트라아우랑가바드(Aurangabad)에서 북서쪽으로 20km 정도 달려가면 힌두교가 낳은 인도 최고의 사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눈부시게 찬란한 엘로라(Ellora) 석굴을 만나게 된다. 아잔타 석굴이 불교 중심이라면 엘로라 석굴은 6세기 이후 500여 년 동안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 3개 종교의 성지였다. 34개의 석굴로 이루어진 엘로라는 아잔타 석굴과는 달리 시대별, 종교별로 가지런하게 정렬된 것이 특징이다. 또한 5세기 이후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교가 크게 발전하던 시기에 조성돼 장식과 조각이 더 화려하고, 세련됐다.

 

엘로라에 들어서면 카일라사(Kailasa)’ 사원이 눈에 들어오지만, 대부분 여행자는 이곳을 먼저 방문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카일라사 사원을 먼저 보고 나면 나머지 석굴들이 형편없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건축된 불교 석굴부터 관람하는 것이 관례 아닌 불문율이다. 아잔타 석굴들은 시대 구분 없이 만들어졌지만, 엘로라는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순으로 조성됐고 위치 또한 남에서 북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엘로라 석굴이 만들어진 연대는 아잔타 석굴보다 느린데, 그 이유는 아잔타를 조성했던 장인들이 5세기 초에 갑자기 남서쪽으로 100km 남짓 떨어진 엘로라로 옮겨와 석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1~12번까지는 5세기부터 7세기까지의 불교 사원이고, 13~29번까지는 7세기~8세기경에 만들어진 힌두사원이며, 30번부터 마지막 34번까지는 8세기~13세기에 이루어진 자이나교 사원이다.

 

불교 석굴과 힌두 사원 제일 먼저 조성된 불교 석굴은 아잔타 불교 석굴과 달리 벽화가 거의 없고, 내부의 장식과 구조도 아주 단순하게 꾸며졌다. 시대적으로 인도에서 불교가 급속하게 쇠퇴하고 힌두교의 세력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 석굴의 양식에서는 아잔타 석굴에서 볼 수 없는 2층 구조의 석굴이 등장한다. 어쩌면 불교의 쇠퇴와 함께 힌두교도들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지 모른다.

 

불교 석굴을 보고 나면 힌두사원을 볼 차례이다.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조성된 힌두사원은 입구에서부터 세련된 장식으로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중에서도 인도 건축사의 한 획을 그은 카일라사 사원은 힌두교의 시바(Shiva) 신을 모신 곳으로 라슈트라쿠타왕조 크리슈나 1세 때 엄청나게 큰 바위 한 덩어리를 통째로 깎아서 만든 예술 작품이다.

 

야트막한 언덕을 10분 정도 올라가면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정교한 사원과 어우러진 주변 풍경이 감탄사를 절로 나게 한다. 정말 큰 돌덩이 하나를 깎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100여 년 동안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사원은 힌두교 최고의 신으로 추앙받는 시바 신이 명상 수행을 했다는 티베트의 성스러운 카일라쉬(Kailash)’ 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7천여 명의 장인들의 숭고한 신앙심이 그대로 묻어나는 이곳은 높이 33m, 넓이 47m, 길이 81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사원의 축조는 천장부터 깎아내기 시작하여 바닥까지 내려가는 방식을 사용했다.

 

카일라사 사원 안영배 교수가 쓴 <인도 건축 기행>에서 카일라사 사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현대 건축에서 자주 활용되는 여러 가지 공간 구성 수법들을 카일라사 사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건물의 기복과 요철, 풍부한 질감이 느껴지는 주요 건물의 벽 부조, 독특한 건물들을 이어 주는 다리, 상부가 덮여 있는 발코니, 개방된 테라스, 탑과 같은 독립된 기둥 등 ···.” 이처럼 현대 건축 기법이 엘로라에서 수천 년 전에 이미 사용되었다는 점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거대한 사원을 받치고 있는 코끼리 조각상이나 햇빛을 받아 노랗게 빛나는 미투나 상, 그리고 음양의 신비감이 느껴지는 회랑 등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힌두교도가 아니더라도 행복하다. 그늘진 발코니에 앉아 아무런 생각 없이 사원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겨도 좋고, 사진을 찍으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도 좋고, 파란 하늘과 구름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봐도 좋고, 모처럼 여행이 주는 느림의 미학을 마음껏 즐겨도 좋다.

 

14, 15번 석굴 그리고 자이나교 사원 인도 건축사에 있어 한 획을 그은 카일라사 사원의 아름다움을 눈과 마음속에 담고 나면 불교 사원에서 힌두교 사원으로 바뀐 14번과 15번 석굴이 새롭게 다가선다. 14번 석굴 안에는 시바 신이 자신의 아내 파르바티와 장기를 두는 모습, 시바가 악의 신 마히사(Mahisa)’를 물리치고 승리의 춤을 추는 모습, 카일라쉬 산을 흔드는 라바나의 모습 등 힌두교와 관련된 조각상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15번 석굴에서는 반은 사자 반은 인간의 몸을 형성한 비슈누의 조각상이 있는데, 정의를 위하여 악과 싸우는 나라심하(Narashimha-비슈누의 화신, 사자 인간)로 묘사되어 있다. 불교 사원을 철저하게 무시지 않고, 힌두교 사원으로 환골탈태 시킨 힌두교도들의 솜씨에 새삼 놀라게 된다.

 

정교하게 새겨진 힌두사원들의 조각상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400m 정도 가면 엘로라 석굴의 또 다른 사원들이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30번 석굴부터 시작되는 이곳은 자이나교의 사원이다. 이곳의 사원들은 나름대로 잘 만들어졌지만, 힌두교 사원에 비하면 초라하고, 소박하게 느껴진다.

 

각기 다른 종교의 꽃엘로라 석굴은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의 다양한 종교의 사상이 스며있고, 각기 다른 신앙은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연출했다. 거의 똑같은 재료를 사용했지만 신앙심과 신앙 대상에 따라 서로 다른 종교의 꽃으로 형상화가 되었다. 종교의 열정 속에서 피어난 장인들의 신앙심이나 수행자로서의 끝없는 인내심 그리고 신에 대한 귀의가 바로 아름다운 엘로라 석굴을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일 것이다.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들이 구현한 사원과 그 사원 속에 스며있는 신앙심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발길에 부딪히는 작은 돌멩이에서도 세월의 깊이가 묻어나고, 기둥과 벽면에 새겨진 조각상에서는 인간의 깊은 신앙심이 오늘도 어제처럼 새어난다.

 

카일라사 사원은 단일 단일체 발굴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불교 사원 중 가장 아름다운 비스와카르마 10번 석굴
불교 사원을 한두교 사원으로 바꾼 14버 석굴의 조각상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장면을 묘사한 많은 조각 디자인
엘로라 석굴로 현장 학습을 나온 현지의 아이들
엘로라에서 가장 멋진 16번 카일라사 사원
21번 힌두교 사원에서 만난 시바 신을 형상화한 조각상
인도를 대표하는 새, 공작의 우아한 산책
인도 최고의 세계문화유산 엘로라 석굴의 '카일라사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