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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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 Resort The WE/왜WE를찾는가?

미라클 모닝, 그래서 위라클 모닝

제주한라병원 2021. 2. 18. 15:20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조병화「겨울」

 

오늘도 걷는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이곳을 꽤 오랫동안 걸었다. 제주의 오랜 시간이 고스란히 머물고 있는 숲에 지금 부는 바람도, 쏟아지는 햇살도 굳건하게 놓여진 검은 돌담 위에, 또 다른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숲은 따뜻한 품이다. 겨울의 숲은 유난히 포근하다. 내가 자박자박 걷는 소리, 바람결에 지난해를 보낸, 낡은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끄러운 세상과 거리를 잠시 두어서일까? 아니면 두터운 눈이 쌓여일까? 겨울숲의 구석구석이 시원스레 훤히 보인다.

돌아보니 발길 발길마다 내가 지나온 흔적이 쌓였다.

 

도래숲, 철학자

WE호텔의 생명이 시작되는 이 숲, 온전한 제주의 숲을 담은 도래숲은 철학자다. 무심히 걷다보면 소소한 생각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울타리를 이어 둔 동백나무에 한 두 송이 붉은 빛이 점점 늘고 있다. 겨울이 깊어간다는 증거이다. 온 초록이 곧 붉게 물들겠지.

나뭇잎 틈새로 하늘이 보인다. 좁아진 길 위로 하늘이 터진다. 구름은 북풍을 따라 한라산을 넘어오고, 노오란 햇빛 한 줌이 잠시 구름 틈새로 스며든다. 한 줄로 이어진 눈길 위로 노루며, 직박구리며, 박새들, 까치와 큰부리까마귀들이 총총총 바쁜 걸음을 움직인 흔적을 남아있다. 찬기 가득한 겨울땅을 시려운 듯 동동거리는 녀석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조금 안쓰럽다.

여름을 뜨겁게 보내며 붉게 물든 천남성과 백량금의 열매들이 하얀 도화지 위 붉은 물감을 떨구고 있다. 소나무도, 참꽃나무도, 으름덩굴도, 청미래덩굴도, 가막살나무도 이 숲에 산다.

길게 솟은 삼나무숲에서 잠시 멈춰본다. 멈추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누군가 말했다. 나를 멈추면 나를 지나쳐가는 것들에 시선이 멈춘다. 큰부리까마귀가 날면서 떨구는 눈덩이들이 유난히 반짝인다.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눈의 빛깔이 희다 못해 푸르다. 맑은 물들이 모여, 구름을 이루고, 얼었던 구름이 한라산 자락에 고슬고슬한 눈으로 떨어진다.

철학자와 닮았다.

사색하고, 조용한 몸짓이 도래숲은 철학자를 닮았다. 어쩌면 이 겨울동안 도래숲은 깊은 생각이 잠겨있으리라. 봄이라는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잠시 움츠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철학자는 깊은 숨을 쉬며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해암숲, 치유자

길에도 풍경이 있다면 해암숲이 제격이다. 걷는 내내 몸과 마음을 숲이 달래준다.

곧게 자란 소나무들 아래로 낮은 철쭉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다. 봄길을 걸으면 꽃길이 된다. 여름길을 걸으면 솔길 그림자가 시원하다. 가을에는 구실잣밤나무들의 열매가 톡톡, 머리 위로 쏟아지며 겨울은 뽀도독 눈길이다. 해앞숲에는 계절 바뀔 때마다 매료되는 것들이 있다. 길과 길 사이, 작은 새들의 날개짓들로 잎사귀들이 분주하다. 인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새들은 더욱 제 몸을 감추려는 듯 관목 사이로 깊숙하게 숨어든다. 그 때마다 그 소리가 유난스럽기만 하다. 지도를 따라 종이에 새겨진 길을 따라 가다보면 겨울 감성이 짙게 물든 녹색의 숲을 만나게 된다. 차던 바람도 상쾌해지는 곳, 이곳이 바로 편백나무숲이다. 삼나무와 비슷해 보이지만 찬찬히 훑어보면 다르다. 열매도, 잎사귀도 모두 다르다. 역시 멈추고 보니 보이는 것일까?

해암숲은 치유자를 닮았다. 이 숲은 숲에 머무는 모두를 조금씩 달래주며 많은 위로를 준다. 바람은 나를 온 마음으로 만져주고, 나무는 내 어깨를 기댈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나는 길에서 길로, 바람과 나무의 위로를 듬뿍 받는다.

 

이렇게 걷기에 참 좋은 아침이다. 눈이 와도, 바짓깃이 조금은 축축해져 무거워졌어도 참 좋은 길이며 숲이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때이지만 누군가는 그토록 바라는 시간이자 간절하기도 한 때이다. 그래서 아침은 누구에게나 매일 찾아오는, 그런 익숙한 아침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적과도 같은 이 아침의 시간, 그래서 미라클 모닝. 더욱이 위호텔에서 맞이하는 이 아침은 그래서 위라클모닝.

위라클모닝에 걸맞는 움직임을 해야겠다. 큰 들숨 한 번, 큰 날숨 두 번, 가슴도 쭉, 어깨도 쭉 펴본다. 밤새 구부정했던 몸을 펴본다. 피로했던 몸이 새 숨으로 가득 찬다. 하늘에서 하얀 눈이 마침 선물처럼 내린 날, 무릎까지 폭폭 빠지는 눈 밭 위에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신이 났다.

숲이 품고 있는 위호텔에 함박눈이 펑펑 오는 날, 잠시 머무는 사람들도, 숲의 모든 삶을 지닌 모두가 즐거워진다. 기쁜 삶이다. 행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