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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매거진/제주의 새

머나먼 번식지로 이동 중 제주에서 에너지 보충

제주한라병원 2020. 3. 31. 16:37


머나먼 번식지로 이동 중 제주에서 에너지 보충

좀도요 Red-necked stint (Calidris ruficollis)




봄을 알리는 화려한 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려 나비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제주의 관광지에서는 봄꽃의 화려함과 향으로 사람들이 방문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관광지를 찾는 이들이 없다. 예전 같으면 오름과 숲, 해안으로 자연을 체험하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을 곳에 사람을 찾기 힘들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가족과 연인들이 함께 거닐었을 해안가 모래사장에도 휭하니 바람만 불고 있다. 


하지만 적막한 그 모래사장 한 구석에는 지난 겨울을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보낸 도요물떼새(도요새와 물떼새를 총칭한다)들이 찾아와 먹이 찾기에 열중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도요물떼새는 70여종이나 된다. 그중에 봄과 가을에 우리 제주를 찾아오는 아주 작고 깜찍하게 생긴 녀석들이 있다.


바로 좀도요다.



좀도요는 15cm정도의 작은 새로 무리지어 생활을 하는데 4월이 되면 여름깃을 하고 번식지로 이동 중에 제주의 해안이나 서해안 갯벌에 잠깐 들르게 된다.


남반구에서 올라오다가 짧게는 2-3일에서 길게는 약 2주일 정도 제주해안이나 서해안의 갯벌에서 먹이를 찾는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부지런히 먹이 활동을 해서 체중을 늘려나가야 한다. 새들은 먼 거리를 비행하는 동안 지방과 근육 속의 에너지를 연료로 하여 이동한다. 번식지나 월동지로의 이동이 끝나면 몸에 가지고 있던 지방이나 근육들이 소진되어 그야말로 뼈와 가죽만이 앙상하게 남은 모습으로 제주의 해안과 갯벌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체중도 절반가량으로 줄어들어 힘이 없을 때 제주의 해안과 서해안의 갯벌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듯 제일 반갑고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많이 먹지 못하면 중간에 낙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주의 해안가는 이들에게 주유소와 같은 곳이다. 먼 길을 가는데 기름이 모자라면 목적지에 갈 수가 없는 것처럼 도요새들은 많이 먹고 체력을 보충하는 것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최대한 몸을 보충하여 번식지인 머나먼 시베리아나 알래스카로 이동한다.


이 조그만 좀도요는 종종걸음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먹이 먹기에 열중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부리가 짧아 모래 틈에서 먹이 찾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곧잘 먹이를 먹는다. 무리지어 다니다보니 잡은 먹이를 옆의 다른 녀석에게 뺏기는 경우도 있지만 부지런히 먹이 찾기에 정신이 없다. 작은 먹이에서부터 운이 좋으면 갯지렁이를 잡아 한입에 삼키는 횡재를 하기도 한다.


간혹 개구쟁이들이 가까이 다가가면 퍼득 날아올라 저만큼 날아가 다시 먹이를 찾는다. 먹이를 찾을 때 사람들만이 아니라 간혹 맹금류가 나타나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 경계를 하기도 한다. 복지부동이다. 납작 엎드려서 얼굴과 눈망울을 돌려 경계하는 모습을 보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남쪽 멀리서 바다를 건너 올라오다가 번식지까지 가지 못한 채 맹금류인 매들에게 잡아먹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맹금류들 덕분에 좀도요를 간혹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촬영할 수 있는 행운을 주기도 한다. 좀도요는 맹금류에 잡아먹힐 까봐 오히려 사람들 가까이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맹금류도 사람이 무서워 가까이 하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다.


도요새는 비밀을 간직한 새이기도 하다.



'너희들은 모르지? ~~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나는지? ~~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오르는지?

그 몸은 비록 작지만 가장 높이 꿈꾸는 새.'



가수 정광태가 부른 '도요새의 비밀'이란 노래 가사의 일부이다.


도요새는 작은 몸을 가지고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다시 남반구로 이동하며 살고 있다. 작은 몸으로 얼마나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가는, 그들이 삶 자체가 비밀인 것이다.



'검푸른 바다와 밑 없는 절벽을 건너,

춤추는 숲을 지나, 성난 비구름을 뚫고서'



그렇게 멀리, 멀리 힘들게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연의 미물인지는 모르지만 그들만의 무엇인가 꿈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