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23> 신제주 개발
작은 마을에서 제주시의 ‘핵심 지역’으로 급부상
제주시는 지역별로 다양한 이야기가 넘친다. 제주시 화북동도 그렇다. 그렇다고 화북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기도 그렇다. 이번은 화북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가본다. 흔히 ‘신제주’로 불리는 지역이다.
제주시는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예전 북제주군을 포함해서 그렇다. 4개 시군 체제였을 당시엔 제주시를 가운데 놓고 동쪽과 서쪽으로 북제주군이 나눠 있었다. 그렇게 된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신제주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제주도는 해방 이후에 ‘도(道)’의 지위를 받게 된다. 1946년 전라남도에서 분리, 제주도로 승격된다. 승격과 함께 한라산 북쪽은 ‘북제주군’, 남쪽은 ‘남제주군’ 등 2개의 군 체제가 됐다. 그러다가 1955년 북제주군청이 있던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되면서 북제주군은 동서로 나눠진다. 그렇게 나눠 있던 북제주군은 2006년 변화를 맞는다. ‘제주특별자치도’로 바뀌면서 제주시와 북제주군이 하나가 됐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로 변신을 하면서 제주시는 덩달아 북제주군 지역을 포함, 동서로 긴 형태를 갖추게 됐다.
지금 이야기할 제주시는 2006년 이전의 제주시이다. 좀 더 좁히면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제주시의 중심은 지금은 ‘원도심’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거의 모든 관공서와 금융기관이 집결돼 있던 곳이 바로 원도심이다.
도시는 변한다. 그 변모는 ‘핵’의 이동으로 나타난다.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핵은 ‘신제주’로 바뀌게 된다. 신제주는 연동과 노형 일대를 말한다. 예전엔 아주 작은 마을이었지만, 이젠 제주시에서 가장 큰 마을이 연동과 노형동이다. 지역구 도의원도 연동 2명, 노형동 2명이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연동은 신제주 개발 이전엔 하나의 동(洞)이 아니라, 오라동에 속한 마을이었다. ‘동’으로 분리가 된 건 신제주 개발 때문이었다. 연동과 노형동을 비교하면 개발 이전엔 노형동이 훨씬 더 컸던 마을이다. 노형은 여러 마을이 있었고, 제주4·3 피해를 많이 본 중산간 마을이기도 했다.
신제주 개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신제주 개발 구상은 1974년에 나왔다. 당시엔 ‘신제주’라는 이름을 달지 않았다. ‘뉴타운 건설계획’이라는 이름이었다. 당시 이승택 제주지사는 8월 8일 간부회의 자리에서 “뉴타운을 구상하고 있다. 대상 후보지는 제주시 외곽지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제주시 외곽’은 어디였을까. 철저하게 보안에 부쳐졌다고 하는데, 누가 알랴. 이승택 지사가 1974년 8월에 ‘뉴타운’을 밝혔지만, 구상 시점은 더 올라간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해 2월 제주도를 연두순시하다가 뉴타운을 제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걸 제안한 이야기를 해보자.
박 대통령은 1100도로를 거쳐 서귀포로 가다가 갑자기 차를 세우라고 했다. 그 위치가 지금의 신제주 입구가 된다. 차를 세운 박 대통령은 이승택 지사에게 위치를 물었고, 이승택 지사는 “연동입니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여기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면 어때?”라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뉴타운은 연동이 중심이었는데, 노형까지 확대된다. 1974년 드러난 뉴타운 건설계획은 1977년 도시계획지구로 결정되고, 1980년대에 마무리된다. 노형지구는 20세기 후반에 도시계획지구로 지정됐고,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됐다.
신제주 개발은 제주시를 완전히 바꾸는 사업이 됐다. 제주목관아 일대에 자리잡고 있던 관공서는 신제주로 이동을 하게 되고, 방송사인 KBS와 MBC도 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다. 이승택 후임으로 지사직을 맡은 장일훈 도지사는 뉴타운에 대한 생각이 크지 않았다. 1977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이 신정휴가를 제주에서 보내고 있을 때, 장일훈 지사가 “뉴타운은 백지화 된 걸로 안다”는 발언을 하고 만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시대로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쨌든 대통령의 지시로 뉴타운은 재추진된다. 박 대통령의 재지시가 떨어진지 며칠 되지 않아, 도청 청사 이전 이야기도 나온다.
1974년엔 극비에 추진됐지만, 1977년 재추진 될 때는 정보가 어느정도 흘러나간 모양이다. 제주도정은 부동산 투기를 우려해 연동뿐 아니라 아라동과 삼양동도 후보 지역이라고 흘렸다. 알 사람은 알았을테지만. 제2공항 후보지로 성산지역을 발표했을 때를 떠올리면 된다. 제2공항 후보지는 2016년 11월 9일에 발표되는데, 그해 3분기(7~9월) 시도별 땅값 주요 상승지역에 ‘성산읍’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 신제주 개발 이전의 연동 모습. 바닷가 쪽으로 도두봉(빨간 원)이 보인다.
<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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