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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시신 찾기 위해 동생은 상인으로 변장해…

제주한라병원 2019. 5. 28. 16:03

이집트 이야기 ⅩⅩⅦ : 완벽한 금고 對 완벽한 도둑 ②


형의 시신 찾기 위해 동생은 상인으로 변장해…



보물창고에 설치된 덫에 걸린 형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동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덫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 가족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목을 가지고 달아나라고 청하는 형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동생은 그 뜻에 따르게 된다. 덫에 걸린 형이 발각되어 모든 가족들이 죽거나 고생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만 희생하는 것이 낫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동생은 형의 지시대로 형의 목과 형이 입고 있던 옷도 전부 벗겨서 창고에서 빠져나왔다. 아무 흔적도 없도록 벽문 입구를 막은 동생은 집으로 돌아와 예를 갖추어 형의 머리를 매장했다.


다음날 아침.

람세스 3세는 호위병과 함께 보물창고에 들어가 머리가 사라진 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내의 몸이 덫에 걸려있는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창고의 문을 점검해보았지만 여전히 사람이 손댄 흔적은 없었다. 파라오는 다른 입구가 있는지 샅샅이 찾아보게 했지만 비밀 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파라오 람세스 3세는 목이 없는 시체를 궁성의 외벽에 매달아 놓으라고 명했다. 그리고 병사들을 주위에 배치해 누구든지 그 시체를 가져가려고 하거나 조의를 표하면 즉각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파라오가 예상한 대로 죽은 도둑의 어머니는 울면서 막내아들을 졸랐다. “너희 형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면 그의 영혼은 두아트의 세계에서 오시리스의 심판을 거쳐 평안을 찾을 수 없게 된단다. 그러니 막내야, 네가 형의 시체를 찾아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직접 파라오에게 가서 너희들의 아버지가 호렘헵이라는 것을 밝히고 용서를 빌어야겠다. 용서받지 못한다 해도 나와 너는 형과 아버지의 무덤에 함께 매장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잠시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관을 살펴보자. 사람이 죽고 나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각은 이러했다. 사람이 죽으면 오시리스가 왕으로 있는 두아트로 가게 되고, 거기서 오시리스의 심판을 받아 천국 또는 지옥행을 판결받는다. 오시리스의 심판은 커다란 홀에서 이루어지는데, 거기엔 죽은 이, 토트 신, 아누비스 신, 그리고 괴물 아메미트도 있다. 죽은 자가 자신은 생전에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호소하는 ‘부정의 고백’을 하고 나면, 홀 중앙에 있는 천칭 모양의 ‘진리의 저울’로 죽은 이의 심장 무게를 잰다. 즉 저울의 한쪽 접시에는 진리의 상징인 여신 마아트의 날개 깃털이 놓이고, 아누비스 신이 죽은 자의 심장을 반대편 접시 위에 올려놓아 수평을 이루면 천국인 ‘세게트 이아르’로 갈 자격을 얻게 된다. 그러나 저울이 심장 쪽으로 기울면 옆에 있던 괴물 아메미트가 곧바로 죽은 자의 심장을 먹어버리고 죽은 자는 사후세계인 두아트에서 또 다시 죽음을 맞아 영혼마저 소멸되어 버린다. 결백을 증명받은 자는 호루스의 안내에 따라 오시리스 앞에 서서 천국으로 갈 권리를 받게 된다. 


그러니 어머니는 큰 아들의 영혼이 두아트의 오시리스 앞에 설 수 있게라도 하려면 반드시 아들의 시신을 매장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막내아들은 어머니를 만류했다. “어머니, 형의 머리는 이미 아버지가 묻힌 곳에 매장했잖아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어머니도 생각해보세요. 나와 어머니까지 형을 따라 죽는다면 형의 희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막내는 하는 수 없이 형의 시체를 찾아오겠노라고 약속했다. “어머니! 파라오에게 찾아가는 것은 제발 그만 두세요. 며칠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요.”


막내아들은 곧 늙은 상인으로 변장한 후, 두 마리 노새의 등에 포도주를 싣고 궁성 담을 따라 걸어갔다.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 보이자 그는 구멍을 뚫은 포도주 주머니를 자연스럽게 땅에 떨어뜨렸다. 땅에 떨어진 포도주 주머니에서는 질 좋은 붉은 포도주가 콸콸 쏟아져 내렸다.


그는 수선스럽게 떠들었다. “아이구! 아까운 내 포도주가 다 흘러내리네! 이런... 나 좀 도와주세요!” 병사들은 그 광경을 보고 달려왔다. 병사들이 주섬주섬 포도주 주머니를 주워 올리며 정리를 하고 보니 이미 포도주 주머니는 절반 정도 비어있었다. 상인으로 변장한 막내는 병사들에게 고마워하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으리들. 나라를 위해 수고하시는데 제가 감사의 표시로 질 좋은 포도주 한 자루를 드리겠습니다. 함께 마십시다. 오늘 장사는 어차피 종쳐 버렸으니 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한국장학재단 부산센터장 안대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