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추위속 생명 이어가는 식물에게 강인함 배워
궷물오름의 겨울 |
겨울 같지 않게 포근한 날씨에도 한라산 부악(한라산 정상)에 하얗게 덮여있는 눈은 괜스레 마음을 설레게 한다. 때로는 추워서 또는 녹고 나면 지저분해져서 싫다고 하겠지만 드넓은 들판에 하얗게 덮여 있는 눈밭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한라산의 눈을 밟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 할 때는 제주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눈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곳 있다. 그중에서 힘들이지 않고 오름 정상에 올라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과 초록의 상록수 나뭇잎에 하얀 솜을 얻어 놓은 듯 자연이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에 콧노래가 절로 나게 하는 애월읍 장전리 소재의 ‘궷물오름’의 겨울은 늘 감동을 준다.
지난 봄 산 벗 나무의 꽃눈이 내렸던 작은 동산에 하얀 눈이 쌓여 있다. 여름의 고운 빛깔은 잃었지만 겨우내 떨어지지 않고 누렇게 변해 버린 산수국 헛꽃은 예술 작품이 되어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눈이 부신다. 하얀 눈을 배경으로 ‘노박덩굴’ 열매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능선 넘어 드넓은 목초 밭은 언제나 노루와 꿩들의 놀이터였는데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지금은 나도 모르게 눈밭으로 달려가 어린애처럼 즐거운 마음을 숨길 수 없게 한다. 줄기가 갈라지고 폐인 고목에 남아 있는 눈이 자연 조형물이며 무덤과 산 담은 포근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나무줄기 위에 눈사람을 만들어 올려놓으니 옛 추억에 그리운 친구 얼굴이 스친다. 햇살이 드는 가장자리에 성질 급한 보랏빛 제비꽃에 말길을 멈추고 잠시 차가운 바람을 막아서보지만 식물의 본능인 번식을 위한 자기 역할에 충실한 작은 생명체에 강인함을 배우게 된다. 숙주인 나무가 잎이 다 떨어진 지금에야 고운 열매를 선보이는 ‘줄사철’도 눈길을 머물게 한다. 보이는 것이 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새하얀 눈이 가진 마력인 듯하다.
1월이 되면 한라산을 비롯해서 많은 산에서 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산신에게 한 해 동안 무사 안녕을 위한 시산제를 지내는데 일반 등산모임과 달리 평균 70대를 넘는 어르신 몇 분이 낮은 오름이지만 미끄러운 눈길을 올라 산 정상에서 정성껏 준비한 제물로 자연에 숭배하고 감사하며 ‘시산제’를 지내시는 모습은 자연을 무분별하게 해손하고 파괴하는 이시대가 반성하고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새하얀 눈이 감동을 주고 크고 화려함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작은 생명의 속삭임이 주는 행복한 선물이 겨울 숲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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