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왕국…탐라신화가 주는 메시지
송정일 JIBS상임부회장
여신들의 나라 제주!
제주는 신화의 왕국이다. 제주의 창조신화 스토리는 성경의 천지창조와 매우 흡사하다. 천지개벽의 우주창조로 시작된 탐라신화는 어둠에서 빛으로 시작된다. 천지개벽 이후 거대한 여신 설문대의 손길로 다시 창조되고 생명의 여신 삼승의 정성으로 새 생명을 얻어 농경의 여신 자청비의 사랑과 바람의 여신 영등의 기운으로 삶의 터전을 가꾸어 갔다. 탐라신화의 주인공은 여신들이다. 신화는 사람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의 삶 속으로 가지를 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모여 집단화되자 마을들이 형성되고 국가가 생겨나게 되는데 바로 탐라왕국이다. 제주의 마을마다에는 그 마을을 관장하는 신이 사는 집인 당이 있다. 그리고 당마다 그 신의 내력이 담긴 당신화가 전해진다. 제주사람들은 신을 만나기 위해 수시로 당에 간다. 마을당은 공동체의 일을 논의하고 해결하는 회합의 장소이자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비념의 성전이다. 제주에는 4백 개 가까운 마을당이 남아있다. 그런데 제주에는 여신들이 많다. 인류사의 기원이 담긴 초기신화의 원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 초기신화의 원형이 남아있게 된 것은 척박한 환경과 거친 역사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꿋꿋하게 삶을 이끌어온 제주여성들의 능동적인 기질과 무관하지 않다. 제주신화의 주인공인 여신들은 제주여성들의 정신적 지주이고 지표이며 거울이었다. 더불어 여신들은 제주여성들에 의해 연연히 섬겨지며 서로 닮은 강하고 질긴 생명력의 신화를 이어온 것이다. 제주는 곧 여신들의 섬, 여신들의 나라인 것이다.
제주여성과 신화의 상관성
제주섬의 눈은 하늘에서 내리지 않는다. 옆구리에서 터져 나와 좌충우돌 부딪치다가 제풀에 겨워 여기저기 흩날린다. 숨 돌릴 틈 없이 불어재끼는 겨울바람, 북서계절풍 때문이다. 제주의 겨울바람은 밭과 바다 속 밭을 오가며 일에 파묻혀 살아야 했던 제주여인들의 한스런 삶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자탄가를 부를 만큼 제주여인들의 삶은 겨울바람처럼 거칠고 매서운 것이었다. 제주여인들은 그렇게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듯 힘들게 살면서도 억척과 끈기로 삶을 개척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고달픈 현실을 넘어 어딘가에 시름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낙원 이어도를 만들어냈듯 제주여인들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세계 서천꽃밭을 그려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삶은 살아 볼 만한 것이었고 아무리 불가사의해도 대자연의 기운에는 이치가 있었다. 그것을 경험하고 깨달은 제주사람들은 수많은 여신들을 탄생시켰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왔다. 결국 제주의 신화, 특히 여신들의 이야기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이어온 제주 섬의 오랜 역사이자 제주여인들의 상상력이 그려낸 거대한 산물이다. 일반적으로 창조신화는 모계중심사회에서 남성중심사회로 권력이 이동되는 과정을 거친다. 여성평등을 넘어 여성중심사회가 도래하고 있는 지금, 여성중심의 제주신화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신화의 진수다.
신화에 담긴 생명, 평화의 메시지
제주의 여성 신화는 인류의 평화와 생명존중 사상을 담고 있다. 설문대할망이 500명이나 되는 아들들을 먹일 죽을 끓이다 발을 헛디뎌서 솥에 빠져 죽었는데 아들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맛있게 죽을 먹고 만다. 이 이야기 속에는 설문대할망이 아들들에게 자연스럽게 권력을 이양하는 희생적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렇듯 제주의 신화에는 대립적 위치에 서있는 인물들이 타협과 희생 또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요소가 많아 담겨져 있다. 이는 고량부 삼성 신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삼신인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보다는 타협을 택했다. 각자가 차지하고자 하는 영토를 향해 화살을 날려 그 영역을 정하는 슬기로운 공존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벽랑국의 세공주를 맞아 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도 나이순서대로 여인들을 맞아들임으로서 순리와 합리를 선택했다. 권력 앞에서는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도 암투와 모사,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 동서고금의 신화나 역사다. 특히 삼승이 관장하는 생불꽃이 피어있는 서천꽃밭은 생명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인간은 어떻게 창조되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서천꽃밭은 생명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감에서 창조됐을 상상의 공간이다. 서천꽃밭에는 아기를 점지하고 잉태시킬 수 있는 생불꽃, 생명을 죽게 하는 악심꽃, 죽은 생명을 살려낼 수 있는 도환생꽃 등 생명을 관장하는 꽃들이 피어난다. 그런가하면 웃음꽃, 싸움꽃 등 인간의 희로애락을 조절하는 꽃들도 핀다. 서천꽃밭 등 탐라신화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생명,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제주의 고유성을 간직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지역적 상상력이 미래발전의 동력으로 뜨고 있는 4차산업혁명시대, 서천꽃밭을 비롯한 여신중심의 탐라신화는 그 불멸의 예술성으로 제주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할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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