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제주, 알고 싶은 제주 - 탐라순력도 이야기 <33> 문화재 복원
새로 만들고 있는 것 없애고…‘원형 유지’ 헛구호
좀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한다. 문화재 복원을 다루려 한다. <탐라순력도> 얘기를 하는데 무슨 문화재 복원이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을 듯 싶다. 앞서 연대와 봉수 문제 등을 다뤘는데, 현 시점에서 바라보면 기가 막힌 일이 많다. 문화재를 보존한답시고 연대와 봉수를 복원하곤 하는데, 그게 오히려 문화재를 파괴하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탐라순력도>와는 관계는 없지만, 오늘은 어쭙잖은 문화재 복원의 행태를 들여다보련다.
문화재는 보호를 받는다. 물론 법적 장치가 있다. 1962년에 만들어진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를 보존해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민의 문화적 향상이라는 것도 목적에 포함돼 있다.
문제는 기본원칙이 없이 마구잡이로 복원되어 왔다는 점이다. 현재 이 법은 문화재 기본원칙으로 ‘원형유지’를 강조한다. 법 제2조(문화재보호의 기본원칙)에 ‘원형유지’로 분명하게 못 박혀 있다. 그러나 원형유지라는 조항이 들어간 지난 1999년 법을 일부 개정하면서이다. 이 조항이 포함되기 이전의 문화재 복원은 ‘원형유지’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이는 거꾸로 문화재보호라는 법은 있으나 30년 가까이 마구잡이 복원이 가능했다는 걸 말한다.
1999년 문화재보호법에 ‘원형유지’라는 조항이 포함된 건 사회적 분위기 영향이 컸다. 1995년 불국사와 석굴암,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다. 1997년에는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같은해 창덕궁과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에 추가 등록되면서 우리 문화유산의 우수성이 높게 평가됐다. 아울러 ‘문화유산헌장’도 만들어진다. 1997년 만들어진 이 헌장은 문화재보호법에 앞서 문화재 원형유지를 강조했다. 문화유산헌장 전문의 첫 항목이 “문화유산은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되어야 한다”로, 유산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지에 대한 담론을 던졌다.
문화재보호법과 문화유산헌장에 앞서 문화재의 원형유지를 내건 장치도 물론 있었다.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로, 관련 내용이 들어 있다. 문제는 시방서는 법적인 효력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는 1974년 제정됐다가 20년 뒤인 1994년 다시 만들어진다. 1994년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는 원래의 양식을 변형시키지 말도록 하고 있고, 원래의 사용재료를 훼손시키지 않는 것도 원칙으로 정했다. 또한 전통기법으로 수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재료를 대체할 때는 문화재를 그대로 둘 경우 붕괴·소멸로 재료의 사용이 어렵거나 보강없이는 위험을 피할 수 없을 때로 한정하고 있다. 이런 기준은 21세기를 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과연 그럴까. 문화재 복원 현장을 둘러보면 예전 느낌은 전혀 없는 최고의 완벽한 상태의 모습만 볼 수 있다. 1994년에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에 ‘원형’을 강조하고, 1999년 문화재보호법에도 ‘원형유지’를 포함시켰으나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문화재 복원이 문화재를 파괴하는 현실이다. 성곽 복원은 가급적 지양하고, 각종 재해 등으로 인해 훼손되는 부분에 한해서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복원할 경우에는 문헌자료나 기록화 또는 관련 사진 및 성곽의 발굴조사 등을 통해 성곽의 규모 및 축성기법 등이 고증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제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화재 복원, 이 가운데서도 방어유적 복원은 ‘원형유지’는 도외시하며 이뤄지고 있다.
복원된 성곽만 하더라도 여장을 제대로 갖춘 곳은 없다. <탐라순력도>에도 여장이 나와 있으나 이에 대한 복원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보여주기식’ 문화재 복원이 성행하기 때문이다. 행정은 문화재를 복원했다는 의미만 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장을 뺀 나머지 부분이 제대로 됐다고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별방진의 일부 성곽은 허튼층쌓기가 아닌, 바른층쌓기로 시설을 하는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연대나 봉수, 환해장성 복원도 마찬가지이다. 환해장성인 경우 아예 파괴된 곳에 성곽을 쌓아서 복원한 경우도 있다. 사진은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환해장성으로, 복원 이전의 모습이다. 지금은 ㉠부분이 새로 만든 돌로 채워져 있다. 이는 문화재보호법이 내걸고 있는 ‘원형유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미 붕괴되고 없는 환해장성 부분을 새로 만들었기에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와 맞지 않는다. 화북동 환해장성은 2001년부터 2004년 사이에 복원이 진행됐음에도 ‘원형유지’라는 틀을 지키지 않고 마구잡이 복원이 이뤄졌다.
환해장성에서만 이런 문제점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는 문화재 수리는 최소한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문화재에 간직된 모든 증거 자료를 연구에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증거 자료는 역사적, 미술사적, 기술사적 자료가 모두 들어 있다.
조천진성을 보자. 조천진성의 대표적인 문화재로 연북정이 있다. 연북정은 조천진 성안에 있는 건물이다. 그렇지만 연북정은 성밖에 난 계단으로 올라서 진입하도록 돼 있다. <탐라순력도>를 보면 계단은 성 안에 위치해 있다.
연대는 복원된 곳이 많다. 연대 복원은 1970년대부터 진행됐고, 2000년대 들어서 집중적으로 복원이 진행된다. 방어시설인 연대는, 위급할 때는 적과 싸울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 때문에 바깥에서 연대 안으로 난 계단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복원된 연대 대부분은 바깥에서 진입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연대는 불을 피워야 하는 시설이기에, 연통과 같은 시설은 필수였다. 이런 시설이 함께 갖춰서 복원한 경우도 없다. 연대는 주변에 방호벽을 설치했으나, 복원된 연대는 이런 것도 무시하고 있다. 1914년에 확인된 산방연대의 사진에는 방호벽이 뚜렷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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