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리 유적에서 발굴된 ‘굽 달린 접시’
“제사의례는 곧 권력, 탐라국 권력자 모습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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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에서 발굴된 굽 달린 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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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적 개념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고든 차일드의 말을 빌리면 청동기시대의 ‘도시혁명’이 아닐까.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집단적인 농경생활에 그치지 않고, 공간을 구분한 대규모 취락이 등장하는 게 이 때부터이다. 따지고 보면 산업화 이전의 활동은 청동기시대의 ‘도시혁명’을 근간으로 한다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공간마다 쓰임을 달리하는 취락은 제주도 남쪽의 화순리 유적에서도 만날 수 있다. 화순리 유적은 제주도 서남부에 조성된 거점 취락이었다. 확인된 주거지만 138동으로, 공간 구분이 명확했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주거지역과 생산공간,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공간, 쓰레기더미를 쌓아두는 공간, 제의공간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건 계층간 분업화된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당시 마을 구성은 해안과 접근하고, 가까운 곳에 물이 있으며 점토층이 발달한 곳을 선호했다. 화순리 유적은 이런 조건들을 가자고 있었다.
화순리 유적은 특이한 형태의 토기들이 많이 출토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유적은 편년을 따지면 삼양동, 용담동에 이은 유적으로 완전한 제주화(化)의 표본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유적은 제주다운 형태의 마을 구성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서 발굴된 토기들 가운데 굽이 달린 토기에 주목을 해보고 싶다. 굽이 달린 토기는 이름도 다양하다. 고배(高杯)라고 하기도, 굽다리 접시로 부르기도 한다. 김원룡은 「한국 고미술의 이해」(1980년)라는 저서에서 ‘굽그릇’으로, 강경숙은 「한국도자사」(1989년)에서 ‘굽다리 접시’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는 ‘굽 달린 접시’로 쓰겠다.
무문토기시대, 즉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 다양한 토기들이 만들어진다. 그건 기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굽 달린 접시는 어떻게 들여다봐야 할까. 굽 달린 접시는 단순한 기능만이 아닌 당시 사람들의 심미적인 관점이 만들어낸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
굽 달린 접시는 받침인 굽과 몸체를 이어붙인 토기이다. 이런 형태의 토기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다. 서아시아는 신석기시대부터 등장하며, 중국 등 동북아시아에서도 광범위하게 발굴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굽 달린 접시는 어느 곳에서나 나오는 형태이다. 북한 지역과 강원영동 지역에서 발굴된 굽 달린 접시는 주거지역에서만 나오며, 경기중부는 주거지와 의례관련 터에서, 충청서해안은 주거지와 무덤유적에서 나온다. 호남과 영남은 생활·분묘·생산활동 지역 등 다양한 곳에서 출토되고 있다.
화순리 유적에서 선보인 굽 달린 접시도 어느 한 곳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주거지와 생산활동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그렇다면 굽 달린 접시의 쓰임새는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굽 달린 접시나 화순리 유적의 발굴 장소로 보면 생활용으로도, 제기용으로도 쓰였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화순리 유적의 굽 달린 접시는 수입산이 아닌, 순수 제주흙으로 만들어졌다. 주거지에서 나온 화순리 굽 달린 접시는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생산활동에서 발굴된 접시는 밑부분만 남아 있다.
형태면에서 굽 달린 토기는 여느 토기와 확연히 구분된다. 굽 달린 토기의 또다른 특징은 굽다리 부분에 구멍을 뚫는다. 이런 형태는 신라와 가야의 토기에서 많이 보인다. 화순리 유적에서 나온 굽 달린 토기 역시 굽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다. 미술분야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불을 땔 때 뒤틀리거나 터지는 것을 방지하는 불가피한 조치(최남길 ‘고신라토기 고배에 관한 연구’ 논문)이며, 미(美)를 가미하고 무게를 가볍게 하는 목적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왼쪽이 화순리 주거 유적으로, 원내가 '굽 달린 접시'이다. 오른쪽은 '굽 달린 접시'를 확대한 모습
굽 달린 접시는 현재 우리나라 사회의 제사문화 때 쓰이는 제기를 닮았다. 그래서 학자들은 의례용이라는 데 무게를 더 둔다. 강병학씨는 ‘한반도 무문굽다리토기 연구’라는 논문에서 “토기를 단순히 용기로서의 실용면에만 주안점을 두고 만들어 오던 것과는 달리 이 토기는 기형면에서 고차적인 미와 멋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무문굽다리토기는 용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보다 굽다리부분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두고 제작했다. 이런 사실은 그것을 쓰던 사람들의 정신적인 기반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굽 달린 접시의 등장은 권력을 지닌 이의 등장과 맞물린다. 세력을 가진 이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그 마을은 각각의 역할이 주어지는 공간을 구분짓는다. 물론 권력자는 제(祭)를 지냄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마을에 알린다. 권력자는 곧 제사장일 수도 있고, 탐라국을 이룬 최상위계층이기도 하다. 화순리 유적에서 발굴되는 굽 달린 접시 역시 제사를 지니는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부산물의 하나이다. 그게 세월을 지나면서 현재 제사 때 쓰이는 제기로 환생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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