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은 재료가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는 것
<숨은제주> 제주 건축 따라가기(1)
얼마 전 한라산학교 제주건축기행반을 마무리했다. 12월 14일엔 한라산학교 제12기 졸업식을 가지기도 했다. ‘한라산학교’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한다. “한라산에 있어요?” 아니면 “등반을 하나요?”. 그런 질문들이다. 아니다. 한라산학교는 한라산이라는 이름만 따왔지, 한라산과는 관계는 없다. 그렇다고 전혀 관계가 없는 건 아니다. 한라산은 제주의 어머니이기에 제주도에 있는 사람과는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일테다. 서두가 길었지만 한라산학교는 자율적인 문화학교를 표방하고 있다. 문화를 배우려는 다중들이 만든 학교로, 무척 자율적이다. 커리큘럼도 일방통행식이 아니라 선생과 수강생이 함께 만들어간다.
필자가 맡은 건 한라산학교의 제주건축기행반이다. ‘건축’이라는 거창한 걸 진행하고 있으나 거창한 건축을 다루는, 거창한 건축가는 아니다. 수강생들은 필자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여전히 어색하다. 선생님이라기보다는 필자 역시 수강생의 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수강생들로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이번 제주건축기행반은 제주의 근·현대건축을 다뤘다. 제주한라병원보 지면을 빌어 그동안 해왔던 제주 근·현대건축에 대한 몇가지 얘기를 해보려 한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학문을 하려면 항상 던지는 질문이 있다. ‘○○란 무엇인가?’이다. 역사를 배우는 사람이나, 철학을 배우는 사람, 아니면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을 배우는 사람들도 그걸 학문이라는 틀로 접근을 할 때 늘 나오는 게 ‘○○란 무엇인가?’이다. 왜 그럴까. 그에 대한 질문이 바로 해당 학문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라서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리는 이들은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시대환경에 따라 그 학문에 대한 답을 내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 학문을 하는 이들은 그 첫 관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해당 학문에서 발을 뗄 때까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자문자답을 한다.
제주건축기행반은 ‘건축’을 배웠다. 배웠다기보다는 훑었다는 표현이 제격이지만. 건축을 배우기 위해서는 ‘건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사실 제주건축기행반은 초보이기에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질문도, 그에 대한 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만 이번 주제는 ‘제주의 근·현대건축’에 주안점을 뒀기에 ‘근대건축은 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근·현대의 구분은 불명확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온 삶, 지금 살고 있는 삶과 겹쳐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건축에서는 근대와 현대를 칼로 물 베듯이 재단하지는 않는다. 영어에서 말하는 모던(modern)이 근대이면서 현대이다. 해석 여하에 따라 ‘모던’은 근대가 되기도 하고, 현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로 넘어가 보자. 근대는 언제부터일까? 참 난감한 질문이다. 건축이 아닌, 역사에서의 근대는 매우 민감하다. 현재 역사의 시대구분이 서양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옮겨 놓은 상태에서 이뤄졌기에, 근대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미개한 문명으로 치부되곤 한다. 서양형태의 봉건제도가 있고, 개항이 동북아시아 여느 국가보다 빠른 일본은 역사적으로 근대의 기점을 올려 잡는다.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학계도 근대의 시점을 올려두곤 한다. 역사에서는 근대를 영·정조시대로 설정하기도 한다. 그렇게 설정하는 이유는 영·정조 당시 ‘자본주의 맹아’가 싹을 틔웠다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엔 극우가 판을 치면서 식민사관이 다시 떠오른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근대화됐다는 개념이 식민사관의 요지이다. 극우의 관점은 일제강점기 때에 와서야 우리가 근대가 됐다고 말들을 한다.
역사는 그렇다 치고, 그럼 건축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다. 근대건축이란? 근대건축은 쉽게 말하면 전통과 다른 개념이다. 서양에서는 고딕이나 로마네스크·바로크 등 전통적인 건축양식이 있다. 이들 건축양식과 다른 개념의 건축이 도입된 걸 바로 근대라고 한다.
전통건축과 다른 것
여기에 덧붙여 서양의 근대건축을 대표하는 르 꼬르뷔지에가 말하는 근대건축을 잠시 언급해 볼까 한다. 참고로 르 꼬르뷔지에는 제주대 본관을 설계한 김중업 선생의 스승이다.
르 꼬르뷔지에는 근대건축을 이렇게 말한다. 땅에 떠 있는 지면,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 연속된 창, 옥상정원 등의 요소가 들어간 건축이 근대건축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의 이런 원칙을 담은 건축물로 프랑스 파리의 ‘빌라 사보아’(1929년)가 있다.
르 꼬르뷔지에가 말한 근대건축은 재료의 변화가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이론이다. 기존에 돌을 다루던 건축에서 콘크리트와 철근의 등장이 바로 ‘빌라 사보아’와 같은 건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르 꼬르뷔지에의 근대건축 이론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면 어떻게 될까. 사실상 그런 건축물은 우리나라엔 1960년대가 돼야 어느 정도 정착이 된다고 봐야 한다. 르 꼬르뷔지에가 말한 걸 도입하면 우리의 근대건축은 시작점 자체가 뒤질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흔히 우리가 말하는 근대건축은 앞서 얘기한 전통과의 다름에서 찾고 싶다. 우리의 전통건축은 나무와 흙이 주재료이다. 그게 바뀐 건 19세기 후반 개항을 통해서다. 일본인, 혹은 서양의 선교사들이 주축이 돼 우리의 전통건축과는 다른 건축양식을 도입한다. 여기엔 벽돌이라는 재료가 많이 쓰인다. 벽돌은 경주의 분황사에서도 보이지만 흔한 것은 아니었고, 개항 이후 일반화된 건축재료이다.
여기에다 우리나라의 근대건축은 한옥과 차별화되는 건축물의 도입으로 말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의 근대건축이란 르 꼬르뷔지에가 얘기한 원론적인 설명이 아닌, 우리의 전통과 달라진 건축물을 말할 때 쓰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 학자들은 다른 의견들을 말한다. 어떤 학자는 1950년대, 1960년대까지를 근대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여기엔 시대적 변화보다는 건축물의 형태학적인 면을 우선하기에 그렇다.)
제주 역시 근대건축은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등장한 일본인들의 진출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들어옴으로써 찾아온 변화는 새로운 양식의 건축물을 만들도록 했다. 그게 제주인 모두의 변화와는 맞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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