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에 반하고, 네모가 만드는 빛에 반한다
<레고레타의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최근 제주 도내 문화계 최고의 이슈가 있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철거 논쟁이다. 토지주와 행정은 가설건축물이기에 철거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반면, 반대측은 세계적인 건축가인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작품이기에 보존할 경우 더욱 가치를 지닌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 글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기회로 삼겠다.
리카르도 레고레타, 그는 누구인가?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는 멕시코 출신 건축가로 제3세계 제일의 건축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빛, 물, 색, 벽, 기하학적 형태 등의 키워드로 멕시코 전통 건축이라는 지역성을 세계화로 끌어낸 인물이다.
레고레타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을 10여년간 지냈으며, 2010년 ‘카사 델 아구아’로 아메리칸 프로퍼티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평생 60여작품만을 남겼으며, 중동을 제외한 아시아권에서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제주도에만 그의 작품이 있다.
땅과 자연에 대한 경외, 깊은 묵상, 전통에 대한 긍지와 자유로운 정신이 그의 건축을 일군 자양분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의 특징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건축엔 색감이 자리한다. 강렬하고 생생한 자홍, 눈에 띄게 밝은 노랑, 진한 파랑과 음울한 빨강이 자리를 틀고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다. 그의 색은 빛을 흡수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다. 건축물에 빛이 드리워지고 거기에 나타나는 그림자, 그 때 레고레타가 선물한 하나하나의 색이 빛과 어우러진다.
그는 원색을 편애한다. 아울러 네모와 직선을 편애한다. 직선과 직선이 만나 네모를 이루고, 그 네모는 다시 육면체를 이룬다. 그렇게 만들어진 육면체는 색과 어우러져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선사한다.
그의 작품엔 내내 직선과 사각형이 반복된다. 작은 사각형의 행렬이 모일 때 더 큰 사각형의 패턴을 이룬다. 사각형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걸 그는 과감히 보여준 건축가이다.
레고레타가 생각하는 ‘더 갤러리’에 대한 평가
과연 레고레타는 철거 논란을 빚고 있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어떻게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그는 모델하우스로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러나 레고레타가 남긴 흔적 어디를 봐도 그는 ‘더 갤러리’를 향해 모델하우스라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왜?
그가 2009년 <건축문화> 8월호에 쓴 기고를 보면 그의 ‘더 갤러리’에 대한 평가를 읽게 된다. 이 기고는 그 해 3월 준공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준공된 지 5개월만에 등장한 글이기에 그가 바라본 ‘더 갤러리’에 대한 사고를 알 수 있다. 당시 <건축문화>는 표지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실었다.
그는 기고문에서 “갤러리는 유연성을 지닌 공간이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의 부드러운 곡선, 그리고 호텔과 갤러리가 가진 선의 형상은 서로를 매우 잘 보완해준다”면서 주변 환경에 어울리는 건축물을 만들려고 애를 썼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그는 또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환경을 존중하면서도 그 나름의 유일한 곳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기후와 자연환경은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갤러리는 내부와 외부가 어우러지게 디자인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내부의 모든 공간들이 열려 외부와 이어지고, 나쁜 날씨에는 그 문들이 닫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외부의 산과 바다의 경치를 충분히 감상하도록 디자인했다”고 강조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건축문화란
대한민국 최고의 현대 건축가로 김중업(1922~1988)을 꼽는다. 그는 1965년 작품인 제주대 본관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제주대 본관은 21세기의 건축이라 일컬어질만큼 해외에서 더욱 알려진 작품이었다. 그러나 지어진지 30년만에 세상에서 사라진다. 이유는 바닷모래를 써서 부식돼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었다.
김중업은 생전에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라는 저서를 통해 “(제주대 본관은) 나에게도 소중한 작품이어서 오늘에 이르러 쇠퇴해가는 모습을 볼 때 무척이나 가슴 아프다. 길이 남겨두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고 표현했지만 그의 사후 제주대 본관은 철거되는 아픔을 겪는다.
건축물은 완성되는 순간 작가를 떠난다. 한 개인이 창조한 결과가 작가의 것이 아닌 사회 속으로 객관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제주대 본관이 그랬고, 철거 위기에 놓인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그렇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철거 반대 논쟁이 제주에서 불붙는 이유는 거장의 작품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제주대 본관 철거’라는 전철을 다시는 밟지 말자는 문화적 소양이 확산되고, 커졌다는데 있다. 제주인들의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이 제주대 본관 철거 때보다 더욱 높아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한편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지키려는 노력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thegallerycasadelagua?ref=hl)과 다음 아고라 청원(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objCate1=1&articleId=127865&pageIndex=1) 사이트 등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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