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연시, 한번쯤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보자
세밑이다. 또 한 해가, 2020년이 이제 막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 한다.
세월의 발걸음은 무심하게도 그 언덕을 막 넘어가려 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라는 괴물이 이 세상을 잿빛으로 뒤덮여버린 그런 해였다. 불행히도 코로나19 사태는 종식되지 않은 채 더 오래도록 우리들을 괴롭히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나마 백신이 개발돼 터널 끝이 보이는 것은 한 가닥 희망을 갖게 한다.
연말이 지나면 곧 2021년 새해가 찾아온다. 평년 같으면 너나없이 가는 해를 아쉬워하고, 오는 해에 대한 다짐을 하는 모임을 갖고 덕담도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겠지만 코로나19는 이를 원천봉쇄하고 나섰다. 더구나 코로나19는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면서 없는 사람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는 춥고 배고픈 문제 해결이 급선무인 사람이 많은데 코로나19는 이들을 더욱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로, 또는 사회적인 이유로, 혹은 신체적인 이유로 고통을 받는 계층이 우리 주위에는 의외로 많다. 세밑, 연시에 이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더욱 필요한 때다.
제주도내 각종 통계만 보더라도 어려운 이웃들이 상당수에 이름을 살펴볼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만 하더라도 2만여 가구, 2만9000여 명에 달한다. 여기에다 차상위계층 역시 8700여 가구에 1만5000여 명을 헤아린다. 모자, 부자, 조손, 소년소녀가족 등 한부모 가족 또한 2960명에 이른다. 그런가하면 제주도내 등록 장애인만 현재 3만6400여 명을 넘어선다. 이들 가운데는 14개소의 장애인거주시설에 470여 명, 5개의 단기거주시설에 50여 명, 16개 공동생활체에서 60여 명이 생활한다. 170여 명은 2개소의 정신건강시설에 수용돼 있다.
쓸쓸한 황혼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도 많다. 제주도내 2개의 양로원에 2250여명이, 64개의 요양시설에 3280여 명이 입소해있다. 재가노인복지시설(22)과 재가장기요양시설(119)에도 각각 350여 명과 960여 명이 등록돼있다. 도내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만 3800여 명에 노숙자도 50명 선으로 파악된다. 백혈병소아암 환자도 200명을 넘고 가정위탁아동 또한 210명을 넘긴다.
물론 이들 통계는 중복 계상된 경우도 있지만 우리 주위에 사회적 지원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얼마나 많은가를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연말연시 우리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절실한 이들을 생각한다면 나눔과 기부문화가 활성화되고 실천돼야 할 때다. 최근 들어 나눔의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음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기부문화가 선진국 수준에 이르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지적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부의 이상적인 분배 원칙에 대해 흥미로운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가 지향하는 이상국가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4배 이상 재산을 소유한 부자를 용인하지 않았다. 4배라는 상한선의 근거는 설명되지 않고 있지만 부의 분배 문제는 고대나 현대에 있어서나 꼭 같은 고민거리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날 부의 문제는 사회 갈등을 유발시키는 가장 큰 요인중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도층의 도덕적 의미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나눔의 기부문화 정착은 시대적 흐름이자 소명이 아닐 수 없다. 기부문화의 일상화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성숙된 사회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보다 더 가진 사람들, 남보다 더 배운 사람들이 솔선수범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웃을 돕는 이타주의는 50%가 유전적이며, 30%는 환경적이며, 20%는 우연한 무작위가 원인이라는 보고도 있다. 나눔 문화와 기부 정신의 바탕에는 ‘기부DNA'가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고유 기부 유전자가 기능을 잃지 않고 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주변에서 기꺼이 동참할 수 있도록 환경 변화를 이끌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
나눔과 기부는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하며, 더 나아가 사회 자정역할에도 일조할 것임이 틀림없다. 나눔과 기부는 소비가 아니라 투자이며 생산이다. 때문에 기부자는 우리 사회의 명예로운 주주로 기쁨과 보람이라는 배당을 기꺼이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기부문화는 우리에게도 그 전통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예부터 전해져오는 공동체 노동문화인 품앗이나 두레 등이 대표적이다. 제주도에도 수눌음이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이것이 곧 나눔과 기부문화일 터다. 특히 제주도에는 조선 정조시대 유통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형성하고, 전 재산을 기부해 제주민들을 살려냈던 여성 기업인 김만덕이 있다. 이후에도 제주에는 김만덕의 후손답게 자신보다 이웃들을 위해 선뜻 나눔과 기부문화 활성화에 앞장 선 분들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비단 금전적인 도움만이 나눔과 기부가 아니다. 부자들만의 몫도 아니다. 재화뿐 아니라 노동, 기술, 물품 등의 사회적 자본의 제공도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할 것이다. 가난해서 외롭고, 아파서 외롭고, 찾아주는 이 없어 외로운 우리의 이웃들을 한번쯤 생각하고 손을 내밀자. 그래서 코로나19로 지친 우리의 어려운 이웃들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2021년은 코로나19가 소멸된 해로 기록되길 기대해본다.
<윤정웅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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