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쳐올 불행 내다보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아
역사 속 세상만사 - 카산드라의 예언 -
소금처럼 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봄바람에 눈 내리듯 흩날린다. 하지만 이 봄꽃들의 향연이 꼭 아름답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세월이다. 꽃같은 청춘을 채 피워보지도 못한 수백의 영혼들이 무고하게 진도 앞 차가운 바다 속으로 스러져 갔던 기억이 저리도록 우리 가슴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벌써 1년이 지났다. 이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상당히 많은 위험징후들이 있었다는 증언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접한 바 있다. 경제논리에 매몰된 노후 선박에 대한 무책임한 규제완화, 과도한 화물 적재, 적재화물의 불완전한 결박, 비상상황 대응행동에 대한 관리자 교육 부재, 본분을 망각한 무책임하고 비겁한 선원과 관리자, 사고 후 구조와 수습과정에서 보인 위기관리 역량 부재 등….
다양한 원인들이 진상조사과정에서 밝혀지고 있지만, 관계자와 주변인들의 전언에서 보여지듯 어느 정도의 사고 징후는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었다고 하면 과언일까. 그리고 한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처럼 우리 사회가 그러한 경고에 대충 ‘눈감고 귀닫아’가며 살아오지는 않았을까.
커다란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의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사회적 다짐을 하곤 한다. 그래서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방지할 방안을 마련한다. 하지만 큰 사고가 생기기 전에 감지되는 거대한 불행에 대한 예언 또는 경고에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귀를 열 수는 없었는지…가슴이 답답하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닥쳐올 불행과 어두운 미래를 예언할 능력을 지닌 어떤 여인이 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그의 아내 헤카베 사이에 낳은 딸 카산드라가 바로 그이다. (즉 그녀는 트로이 전쟁의 주요 출연자인 헥토르와 파리스의 여동생인 것이다.) 카산드라의 예언력은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아폴론은 예언술을 전수해주면서 그녀에게 구애한다. 그러나 그녀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아폴론의 사랑은 분노로 변해 간다. 이미 준 선물을 다시 받을 수는 없었으므로 그는 그 선물에 저주를 덧붙였다. 카산드라의 예언과 경고를 아무도 듣지 않으리라는 저주였다.
카산드라가 예견한 커다란 불행은 바로 트로이전쟁과 그것이 가져올 엄청난 파국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런 사실이 뚜렷하게 보이면 보일수록 사람들은 그녀의 예언에 더욱 눈멀게 되었다.
카산드라 첫 예언은 오빠인 파리스 왕자가 트로이에 엄청난 불행을 초래하리라는 것이었다. 파리스가 스파르타로 떠나려 했을 때 카산드라는 이 여행이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서 이를 만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파리스는 메넬라오스의 부인인 헬레나를 납치해오고, 그 결과로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카산드라는 신들린 상태에서 앞으로 닥쳐올 무서운 일들을 거듭 경고했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마치 그녀가 그런 불행을 가져올 장본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를 멀리하고 피했다. 게다가 불행은 그녀 자신도 피해가지 않았다. 트로이의 동맹군으로서 그녀에게 청혼했던 외국의 왕자들이 모두 그리스군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그녀는 저주받은 ‘처녀’가 되고 만다.
전쟁이 지지부진하자 그리스 연합군은 목마를 속임수 계책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카산드라는 이 거대한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오면 안 된다고 트로이인들에게 애원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는다. 제사장 라오콘이 그녀의 경고가 옳다고 편들어주었을 때에야 비로소 잠시 주저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포세이돈이 뱀들을 보내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을 칭칭 감아 죽게함으로써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어차피 카산드라의 말은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그녀의 입은 막을 필요조차 없었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만다. 이 거대한 목마에 숨어있던 그리스군은 그날 밤 몰래 목마에서 빠져나와 트로이를 불태우고 남자들을 살상하고 여자들을 약탈했다. 아테나 여신상을 붙들고 끝가지 버티던 카산드라는 결국 잡혀내려와 아가멤논의 노예이자 첩이 되어 미케네로 끌려간다. 그리고는 공모하여 아가멤논을 살해한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그녀도 죽임을 당한다. 그녀는 자신의 끔찍한 최후를 알고 있었을까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면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다시 오늘로 돌아와 보자.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들은 불안과 위험에 대해 울려오는 경고와 예언을 알고 있었을까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면 혹시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아이들이 꽃눈이 되어 떨어지는 벚꽃처럼 덧없이 사그러지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반성하고 고민하게 되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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