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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복잡해지면서 심리 지원 절실…보람도 느껴

제주한라병원 2014. 9. 30. 10:44

사회 복잡해지면서 심리 지원 절실…보람도 느껴
임상심리연구소

 

누구나 자신의 일이 어렵고 힘들겠지만, 사실 제주도에서 임상심리사로써 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주도에는 현재 정신보건 자격증을 소지한 임상심리사와 자격증 취득을 위해 일하는 수련생을 모두 합쳐 11명밖에 없으며, 그 중 6명이 본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다른 지역의 종합병원보다 더 많고 다양한 환자분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웃지 못 할 에피소드들이 많이 일어난다.


얼마 전의 일이었는데, 노인인지검사를 하던 중 밖이 소란스러워 나가보니 한 어르신이 자신은 검사를 받은 적이 없으니 검사비를 낼 수 없다며 소리치시며 항의를 하고 있었다. 그 분은 바로 며칠 전에 나와 웃으며 검사를 받으셨던 분으로 이미 인지기능의 저하가 진행되고 있던 분이었다. 한참을 사과하고 설명을 드리고 나서야 그 분은 가셨고, 검사가 중단되었던 분과 보호자에게 다시 수차례 사과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검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우는 욕을 하시며 중간에 나가버리시는 치매환자분도, 둘 밖에 없는데 허공을 보며 이야기하고 화내는 조현병 환자도, 검사실을 뛰어다니며 책상에 오르려 떼쓰는 ADHD 아동도 아니라 바로 일체 말을 하지 않았던 경우였다. 작년에 가정폭력을 경험한 여중생을 검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 학생은 동기도 의욕도 전혀 없었고 대답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문답이 기본이 되는 검사라 검사 진행 자체가 어려웠고, “말을 하고 싶지 않아?” 라는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어찌어찌해서 결국 검사를 완료하기는 했지만 평소보다 몇 배의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이 외에도 아무 말도 안했는데 자기 엄마를 욕한다고 나를 몰아세우던 망상환자, 바닥에 드러누워 하기 싫다고 울어 버리는 아동, 보청기를 가져오지 않아 목이 쉬도록 소리 쳐야했던 어르신까지 참 많은 환자분들을 만났다. 우리가 검사를 하고 쓰는 보고서는 법적인 효력이 있기 때문에 제주지법 판사나 연금공단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와서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물어보는 경우도 간혹 있어, 수개월 전 혹은 1년도 더 전에 검사한 환자에 대한 기억을 열심히 떠올려 긴장 속에서 대답해야 하는 일도 있다.

제주도의 임상심리학적 여건 상 재난심리지원센터, 소방정신건강지원센터, 학교폭력예방사업 등 연구소가 주도하거나 참여하는 사업이 많다 보니 계약이나 사업 진행과 같은 익숙하지 않은 행정 일이 많아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할 때가 있다. 또 9월이 되어 도내 소방공무원분들의 심리 검사가 시작되고, 10월 말 쯤에는 전국 재난심리지원 관계자 워크숍이 제주에서 열린다. 해야 할 일이 벌써부터 많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친절히 가르쳐 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검사한 환자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찾아가거나 전화 드리면 마다하지 않고 설명해 주시는 과장님들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계신다. 그리고 손녀뻘인 내 손을 잡고 수고했다 해주시는 어르신들과 자녀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어 고맙다고 해주시는 부모님들이 훨씬 많이 계시기 때문에, 나는 병원에서 근무하며 매일의 보람을 느낀다. <권은미․임상심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