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빛을 가득 품은 시베리아의 푸른 눈
파란 하늘빛을 가득 품은 시베리아의 푸른 눈
러시아 바이칼 호수
마치 바다처럼 보이는 바이칼 호수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순수의 호수이다.
“N형 지금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사랑의 열병을 앓으며 당신에게 편지를 보냈던 최 석의 자취를 찾기 위해 덜컹거리는 시베리아 환선열차에 몸을 실었소. 정확히 말해 소설 ‘유정’의 주인공 최 석을 만나기보다는 춘원 이광수의 흔적을 좇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바이칼 호반으로 가고 있는 것이요.”
잠시 나라를 잃어버렸던 시대에 춘원은 한민족의 역사적 뿌리에 깊숙이 개입한 시베리아를 여행하면서 그는 ‘有情’이라는 소설을 섰다. 춘원은 용서받지 못할 친일적인 행동 때문에 늘 어두운 그림자를 가득 간직한 채 우리 민족의 근원을 찾기 위해 몽골리언 원류가 된 바이칼 호수로 갔다. 그가 서성거리며 방황했던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그가 달렸던 철길을 똑같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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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로 지어진 집 대신 알혼 섬의 집들은 전부가 나무판자로 지어졌다. |
해질녘 황혼으로 물든 바이칼의 모습은 너무나 황홀하다. |
푸른 빛의 바이칼 호수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는 러시아 사람들. |
‘시베리아의 검은 진주’ ‘시베리아의 성스러운 바다’ ‘자연의 신성한 선물’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바이칼 호수는 199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될 만큼 바다보다 더 맑고, 하늘보다 더 파란 풍광을 자랑한다. 부랴트인의 말로 바이칼의 의미는 ‘풍부한 호수’를 뜻한다. 중국의 연대기에는 바이칼을 ‘텐기스’ ‘텐기스-달라이’라고 불렀으며, 몽골 사람들은 ‘큰물’을 뜻하는 ‘바이가알-달라이’로 불렀다. 호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바이칼은 우리 남한보다 길이가 더 길고, 지표상에 있는 담수의 약 5분의 1을 수용할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호수 안에는 30여 개 바위섬이 있고 그중 가장 큰 ‘알혼 섬’은 한민족의 시원이 된 곳으로 우리와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다.
◀ 시베리아의 바다로 불리는 바이칼 호수 주변을 달리는 시베리아 환선열차.
바이칼 호수 길이는 약 636㎞, 너비는 약 80㎞에 달한다. 호수의 가장 넓은 면은 서쪽으로는 온구리온, 동쪽으로는 우스트 바루구진에 면해 있다. 세계 어느 호수와 비교해 보아도 바이칼 호 규모를 따라올 만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탕가니카 호수는 바이칼 호수의 반밖에 되지 않고, 라고다 호수는 23배나 작다. 바이칼 호로 흘러들어가는 지류는 336개 강과 개천이 있지만 다시 흘러나오는 지류는 오직 ‘안가라 강’뿐이다. 호수의 깊이, 풍부한 수량, 그리고 지리학적 위치라는 세 가지 요소 덕분에 바이칼 호에서는 어느 정도 자체 정화작용이 일어난다. 호수의 물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현지의 관광가이드들은 물이 너무 맑고 차가워 심장이 약한 손님들이 문제를 일으킨 적이 꽤 있었다고 전했다. 배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면 50m 아래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겁을 먹는 손님들이 있다는 것. 바이칼 호수의 물보다 더 맑은 물을 자랑하는 호수는 지구상에는 없다. 특히 부랴트인들은 바이칼 호수 물을 ‘생명수’라 여겼다. 이들은 호수 물에 영적인 능력과 치료 효험이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바이칼 호수 안에는 수 십 개의 섬이 있고, 그 중에서 한민족의 시원이 되었다는 알혼 섬은 우리에게도 알려진 신비의 섬이다. 알혼 섬은 유라시아 대륙을 주름잡았던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이 스며 있는 곳이다. 칭기즈칸은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태어났고, 죽을 때도 그의 유언에 따라 바이칼 호수 근처에 묻힌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무덤이 발견되지 않아 정확하게 이곳이 진짜 그의 무덤이 있는 곳인지는 알 수 없다.
부랴트인들의 조상이 살았던 알혼 섬에는 우리와 비슷한 전설이 하나 있다. “아주 옛날 한 사냥꾼이 알혼 섬을 헤매다가 어느 날 바이칼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발견한다. 이들은 하늘에서 세 마리의 백조로 호수에 내려와 여자로 환생했는데 이때 사냥꾼이 옷을 감춰 두 명의 여자와 결혼하게 된다. 결국 이들은 11명의 자식을 두었고 그들이 부랴트인의 11개 종족을 이뤘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아내들은 남편에게 옷을 달라고 애원하자 끝내 사냥꾼은 옷을 건네준다. 옷을 받은 아내들은 결국 백조가 돼 하늘로 다시 올라갔다.” 우리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와 아주 흡사한 이야기다. 이런 전설을 들으면 알혼 섬이 우리 민족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음이 분명하다. 알혼은 호수 안에 있는 가장 큰 섬답게 1500여 명의 사람들이 ‘후지르’라는 마을에 모여 산다. 후지르 마을에서는 시멘트나 돌로 지어진 건물은 거의 볼 수 없고 대부분 나무를 이용해 집이나 건물을 지어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의 사람들은 호수에서 ‘오믈’이라는 생선을 잡고, 소를 목축해 생업을 이어간다. 부랴트인 생김새는 한국인들과 너무나 유사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들은 북방 몽골 인종으로서 우랄 알타이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며 생활양식이 거의 몽골식이다. 부랴트인 마을을 방문하게 되면 그들의 민속춤과 노래는 우리 귀에도 익숙하다. 특히 그들의 씨름은 우리와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 부랴트인들이 한민족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알혼 섬의 불한바위는 바이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자 신비감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마을 안에는 볼거리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여름이면 바이칼 호수에서 수영과 일광욕으로 나른한 오후를 보낼 수 있다. 또한 밤이면 러시아식 사우나를 한 뒤 시원하게 호수로 뛰어들어 야간수영의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볼거리는 바이칼 호수의 석양이다. 해질 무렵 호수 앞에 서면 붉은 노을이 파란 호수를 붉게 물들이면서 서서히 사람의 마음도 황홀하게 만든다. 이때 저 멀리서 붉은 하늘을 향해 갈매기라도 날아가 준다면 멋진 엽서 한 장을 연상케 한다. 뜨거운 열정을 다 뱉은 태양은 호수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섬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바이칼만이 주는 낭만의 저녁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정도의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