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점령군은 떠났으나 그 상흔은 제주 곳곳에 그대로

제주한라병원 2013. 7. 29. 13:20

점령군은 떠났으나 그 상흔은 제주 곳곳에 그대로
-모슬포 군사 전적지-


적산(敵産). 우리에게 적이었던 일제가 남기고 간 재산이 다름 아닌 적산이다. 그것들은 점령군처럼 여전히 오늘도 이 땅에 서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는 적산이었던 이유 하나 때문에 지금도 일제 당시 군사시설이 가득하다. 일제가 떠난 자리의 일부는 미군이 점령해버렸으며, 나머지는 국방부 소유가 돼 있다. 흔히 ‘모슬포 군사전적지’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것이다.


제주도 전 지역이 일제 당시 군사전적지였으나 이곳 모슬포만큼 집단화되고, 대규모로 운집한 곳은 드물다.


지난 1926년 알뜨르비행장 건설이 시작되면서 모슬포의 아픔은 시작된다. 10년간 계속된 1차 공사는 중국대륙 침략을 위한 일본 해군 항공대 전진기지로 제주를 만드는데 있었다. 1945년 패망이 목전까지 이르자 일제는 최악의 발악을 제주에서 준비한다. 본토를 사수하기 위한 ‘옥쇄’ 지역으로 제주가 선택됐다. 일제는 제주도를 ‘결전 7호 작전’ 지역으로 선포, 일본 정예부대 7만여명을 제주에 주둔시킨다. 알뜨르비행장 확장공사에 매일같이 5000명에 달하는 제주민들이 강제 동원되는 생지옥의 경험을 하게 된다.


해방 후 이곳은 다시 미군이 점령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제1훈련소가 자리를 잡았다. 일제가 남긴 적산은 주민들의 손에 반환되지 않고 각종 군사시설로 재탄생된다. 급기야 정부는 지난 1988년 이 곳을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제주도를 미군기지로 내주려는 결정을 하고 만다. 이후 송악산 군사기지설치결사반대 도민대책위원회가 결성돼 6개월의 긴 투쟁을 한 끝에 포기하겠다는 답변을 끌어냈다.


그렇게 도민들의 힘으로 군사시설 보호구역은 철회됐지만 이곳은 여전히 적산이다. 이제는 군사기념물로서, 일제의 아픔을 되새기는 상징으로 보호받아야 할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알뜨르에 가득한 비행기 격납고.<사진제공=김대생 제민일보 기자>

 

모슬포는 최적의 군사요충지

모슬포 이 일대는 최적의 군사요충지다. 제주도에 주둔했던 일본군이 작성한 ‘제주도병력기초배치요도’에는 모슬포지역이 적이 침입할 예상 접근로로 그려져 있을 정도로 전략상의 요충지였다. 그 때문에 모슬포 곳곳에 군사문화가 산재해 있다.


추사적거지를 지나 서쪽으로 4㎞를 달리면 오른쪽에 모슬봉 레이다기지가 보인다. 왼쪽으로는 한국전쟁 당시 제1훈련소로 쓰였던 자리가 나온다.


송악산이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나서면 알뜨르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국유지를 빌어 밭일을 하는 농부들이 있다. 인상 깊은 점은 20여곳에 달하는 비행기 격납고다. 격납고는 단산·모슬봉·산방산 등을 배경으로 잔뜩 웅크리고 있다. 격납고에서 가미가제라 불리는 자폭용 비행기가 들락날락 했다는 생각을 하니 몸서리쳐진다.

 

진지동굴 가득한 곳

일제는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생각으로 제주도 곳곳에 진지동굴을 만든다. 주로 오름 일대에 만들어진 진지동굴은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도 113개에 이른다. 섯알오름 서쪽에는 제주 최대 탄약고 터가 있다. 일제 항복 뒤 미군이 폭파해버린 탄약고 터는 4․3 당시 양민이 학살된 곳이어서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든다.


송악산으로 절벽 아래쪽에도 진지동굴이 있다. 산이수동 포구 서쪽으로 송악산 절벽이 눈에 들어온다. 그 밑에 진지동굴이 차지하고 있다. 동굴을 눈으로 세어보니 모두 15개다. 이 가운데 2개는 해식동굴로 이 동굴마저 군사용으로 활용된 듯하다.


일제는 미군 함대의 상륙을 저지할 목적으로 송악산 절벽 아래 인공동굴에 어뢰정을 숨겨두었다. 동굴 앞 바닷가에는 어뢰정 접안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지금은 파도에 깨져 흔적만이 어뢰정 접안시설이었음을 말해준다.

 

 

산방산을 배경으로 잔뜩 웅크린 비행기 격납고.<사진제공=김대생 제민일보 기자>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제주다운 건축물

미군이 점령하고 뒤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군사훈련 장소가 여기 세워진다. 그 이름은 제1훈련소다. 지금은 정문만 남아있지만 모슬포 시가지 입구에 있는 ‘강병대(强兵臺)교회’가 당시를 설명해준다. 1952년 장병들의 종교생활을 위해 훈련소 부대 밖에 세운 이 교회는 제주 특유의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주변에 널리 현무암이야말로 가장 제주다운 건축물을 표현하는 재료다.


매우 투박한 형태의 교회당 건물로 건축사적인 의미보다 군사기념물의 의미가 매우 크다. 지난 2002년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