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아드리아 해의 보석, 세계의 지상낙원으로 불려

제주한라병원 2013. 6. 28. 13:50

아드리아 해의 보석, 세계의 지상낙원으로 불려
두브로브니크(Dubrovnik)

 

 

 

 

시인 릴케는 두브로브니크를 ‘아드리아 해海의 보석’이라고 불렀다. 그가 어떤 이유로 달마티아 지방의 두브로브니크를 사랑했을까? 100여 년 전 릴케는 사랑하는 여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 함께 아드리아 해에 숨어 있는 두브로브니크를 찾아와 사랑을 나누며, 이곳의 매력에 빠졌다. 바람과 구름처럼 발길 닿는 데로 흘러 다녔던 이들은 철옹성으로 둘러싸인 두브로브니크를 처음 보는 순간 매료되어 몇 달간 이곳에 머물며 시를 썼다고 한다. 또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세계에서 지상 낙원을 찾는다면 두브로브니크에 가서 중세의 거리를 걸어보라”고 말하며 이 도시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두브로브니크는 그동안 우리에게 ‘발칸 반도의 화약고’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이곳은 1991년에 발발한 내전 때 세르비아인들에게 3년간 폭격을 받아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고, 30만 명의 시민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그 당시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를 보호하기 위해 UN 이사회가 열릴 정도로 세계는 이 도시가 파괴되는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천혜의 해변 도시 두브로브니크는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계단식으로 집과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바다와 바로 접해 있는 도시는 반도 끝에 두꺼운 성벽을 둘러쌓아 도시를 형성했다.

 

 

중세의 고풍스러움과 우아함이 묻어나는 플라차 거리.
 

플라차 거리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의 멋진 연주는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플라차 거리에서 따스한 햇살 아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행자들. 


두브로브니크는 슬라브어로 ‘참나무 숲’을 뜻하는 두브라바(Dubrava)에서 도시의 이름이 유래했다. 중세시대 이전에는 도시의 이름이 ‘절벽’을 뜻하는 ‘라구사(Ragusa)’로 불렸는데, 가파른 돌산을 따라 도시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과거 로마인들은 두브로브니크를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가 도시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 시기는 7세기부터다. 당시 이곳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함께 아드리아 해안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무역도시로 명성을 날렸다. 9세기부터는 발칸과 이탈리아의 무역중심지로 막강한 부를 축적했고, 11∼13세기에는 금·은의 수출항으로 번성했으며, 15∼16세기에는 무역의 전성기를 이루어 아드리아 해안의 보석으로 성장했다.


두브로브니크는 철옹성 같은 성벽에 의해 완벽하게 둘러싸여 있다. 높이 15m, 두께 6m. 그리고 총 둘레가 2km에 달하는 성벽은 세 면이 바다와 면하고, 나머지 한 면만이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 철옹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단 3개뿐이다. 그 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견고하게 지어진 성벽이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 현재 이 성곽 안에는 4,000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자동차는 한 대도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중심 대로에는 여러 종류의 상가가 들어서 있고 그 뒤로 일반 집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 구조가 꼭 이탈리아 폼페이 같다.


이곳의 건물들은 대부분 대리석과 돌로 지어져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건축물들이 돌로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초기 이주자들은 풍부한 목재 자원을 석재와 적절히 섞어 건물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1520년부터 1667년에 걸친 수차례의 지진으로 많은 건축물이 파손된 이후, 두브로브니크는 지진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고 또 외부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여 모든 건물을 석재로 짓게끔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16세기 이후에 재건축된 것으로 대략 4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성곽 서쪽의 필레 게이트를 통해 성 안으로 들어가면 이 도시에서 가장 넓고 긴 플라차 거리와 연결된다. 도시의 중심부 역할을 하는 이 거리를 따라 로마 스타일의 건축물들이 마치 야외 박물관처럼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이 건축물들은 대체로 400여 년의 역사를 가져 중세의 멋스러움과 귀족적인 우아함이 고스란히 묻어있어 여행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를 여행하다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15세기 중반 나폴리 출신의 건축가가 지은 렉터 궁전, 고대 필사본과 장서를 가장 많이 보유한 프란체스코 수도원, 이탈리아 건축학자 버팔리니의 설계로 1713년 완공된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등 고대에서부터 중세까지의 다양한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좁은 골목길과 마을을 둘러싼 성곽을 따라 걷는 순간이다.


직각으로 이뤄진 건물 사이사이로 난 골목길은 낭만적이면서도 너무나 아름답다. 이른 아침에는 골목길 한 곳에서 작은 재래시장이 열리고, 낮이 되면 어린 아이들이 축구를 즐긴다. 그리고 밤이 되면 로맨틱한 분위기의 노천카페들이 밝히는 불빛으로 도시는 새로운 세상이 된다. 한낮에 아무리 강한 햇살이 이 도시를 달구어도 골목길의 그늘진 곳에서는 언제나 현지 사람들의 웃음이 피어나고, 여행자들에게는 시원한 음료 한 잔과 여행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이곳의 골목길에는 사람의 인정이 돌 틈에 배어있고, 거리에 깔린 박석마다 삶의 희로애락이 스며있다. 목적 없이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다 보면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와 피자 가게도 만나고, 고대와 중세시대 때 만들어진 석상이나 문양 등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다 인심 좋은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기념촬영도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버나드 쇼의 ‘세계에서 지상 낙원을 찾는다면 두브로브니크에 가서 중세의 거리를 걸어보라’는 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이처럼 골목길이 낭만과 가끔 우리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높은 성곽 위를 걷는 길은 도시의 진면목을 감상하는 계기가 된다.


이 도시에서 여행의 백미로 즐길 수 있는 것은 도보로 성곽 위를 걷는 것이다. 성벽은 수천 년이 넘은 도시를 아이를 감싸 안은 어머니처럼 도시 전체를 보호하는 최대의 방어벽으로 그리고 중세시대 찬란한 아드리아 문화를 꽃 피울 수 있게 한 원동력으로 버티고 있다. 바다와 육지를 경계로 설계된 15m에 이르는 성벽은 이곳 사람들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어머니의 태반과도 같은 것이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성곽. 그 아래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그야말로 낭만 그 자체다.

성곽에 오르면 발아래로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붉은 빛을 받아 더욱 빨갛게 빛나고, 성벽 너머에는 하늘보다 더 파란 바다가 넘실넘실 춤추며 얕은 바람에 살랑거린다. 사각형 모양의 성곽 모서리 부분에는 높다란 망루가 있는데 이곳에 서면 도시의 생김새나 구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어른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성곽 길을 따라 가면 세월에 무뎌진 낡은 벽돌집, 이끼 낀 대포, 바람에 춤추는 빨래, 창문 밖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 좁은 골목길을 질주하는 강아지, 작은 분수에서 물장난을 치는 아이들, 그늘진 성당 밑에서 낮잠을 자는 할아버지 등을 볼 수 있다. 망루 밑에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작은 가게가 있고, 커피를 파는 노천카페와 바다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벤치들이 있다. 돌담이나 벤치에 앉아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다보면 감탄사가 절로 난다.


대략 1~2시간의 성곽 탐험이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이 도시가 가진 매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구시가지의 중심에 이르게 된다. 특히 땅거미가 도시를 서서히 삼키기 시작할 무렵 도시의 중심이 되는 플라차 거리에 들어서면 오렌지 빛의 백열등이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수십 개의 노천카페와 성당 앞은 더위를 식히는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가득 찬다. 한 여름이 뜨겁게 무르익어가는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는 세계 전역에서 모여 든 예술가들의 축제가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여름에만 펼쳐지는 두브로브니크의 예술 문화 축제는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축제가 열리는 5주 동안 구시가지의 크고 작은 광장과 공원은 오페라, 콘서트, 연극, 전시회,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의 공연장으로 바뀐다. 수백 년 묵은 건물 안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첼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마음은 행복감으로 넘친다. 자정이 훌쩍 넘긴 시간에도 사람들은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길바닥, 대성당의 계단, 카페 등에 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두브로브니크의 밤을 즐긴다. 까만 하늘의 별들과 밤을 지새우는 이들에게 이 도시는 지상 낙원이 된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가 이들이 떠나간 자리를 대신하고, 릴케의 아름다운 시 한 수가 여행자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전쟁의 상흔 때문에 이 도시가 다소 어둡고 폐쇄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두브로브니크에서 1분만 머물러도 금세 사라진다. 그리고 언제나 변하지 않는 아드리아 해처럼 도시는 영원히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로 우리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여행 팁>
△가는 길=현재 크로아티아로 향하는 직항노선은 없다. 대개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아드리아 해로 들어간다. 대한항공은 여름철 전세기를 직항으로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1시간 30분 정도 소요. 프랑크푸르트에서 크로아티아 항공을 이용해 두브로브니크까지는 2시간 소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는 야간 버스를 이용한다. 소요시간 12시간.

△페스티벌 = 5~6월에는 두브로브니크 영화 페스티벌, 7~8월에는 50년 전통의 두브로브니크 써머 페스티벌, 8월 하순에는 두브로브니크 자유 영화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두브로브니크의 지붕들은 온통 오렌지 빛이다. 이 도시는 1991년 세르비아의 폭격으로 일부분이 파괴되었다가 시민들의 힘으로 재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