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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화신, 제우스의 새 연인 레토에게 저주

제주한라병원 2013. 6. 28. 13:26

-헤라의 질투와 분노 Ⅱ -
질투의 화신, 제우스의 새 연인 레토에게 저주

 

지난 호에서는 헤라의 헤라클레스의 대한 분노를 살펴보았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현모양처의 전형인지, 질투의 화신인지 종잡기 어려운 헤라와 제우스의 연인들에 얽힌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 보자.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를 예쁘게 여겨 치근대던 제우스는, 아내 헤라가 내려다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그녀를 재빨리 암소로 변신시켰다. 헤라는 암소 안에 아마도 요정이 숨어 있을거라 짐작하고, 남편 곁으로 가 암소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는 선물로 달라고 했다. 자기 애인을 선물로 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거절하면 의심받을까봐 제우스는 이를 허락한다. 의심을 풀 수 없던 헤라는 이 암소를 아르고스에게 보내어 엄중히 감시하게 했다. (아르고스는 이마에 눈이 백 개 달린 괴인으로, 잠을 잘 때도 한 번에 두 개씩 밖에는 눈을 감지 않았으므로 한시도 쉬지 않고 이 소를 감시했다.)


낮에는 풀을 뜯고 저녁이 되면 끈에 묶여 슬픈 나날을 보내던 이오가 안타까웠던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불러 아르고스를 해결하라고 명령했다. 헤르메스는 날개달린 신을 신고 머리에는 비행모를 쓴 다음, 손에는 최면 지팡이를 들고서 지상으로 내려갔다. 날개를 숨기고 지팡이를 들고 양떼를 몰며 이리저리 피리를 불고 다니는 모습은 양치기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헤르메스의 피리소리에 반한 아르고스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해가 지자 헤르메스는 아르고스를 잠재우기 위해 피리를 불었으나, 아르고스의 눈은 교대로 감겼기 때문에 다 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헤르메스는 자기가 불고 있는 갈대 피리의 유래를 들려주었다.


“옛날에, 숲에 사는 사티로스와 요정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시링크스라는 요정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사냥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시링크스를 발견한 판은 시링크스를 쫓아갔다. 도망치던 시링크스의 도움 요청을 받은 물의 요정들은, 판이 시링크스를 껴안는 순간에 갈대로 바꾸어 주었다. 안타까움에 탄식하는 판의 소리가 갈대 줄기 안에 울려 아주 슬픈 소리로 변했고, 그 소리의 아름다움에 취한 판은 몇 개의 갈대 줄기를 꺾어 길이가 다르게 다듬어 불어보고는, 사랑하는 요정의 이름을 따서 시링크스라고 불렀다.”


헤르메스가 이러한 얘기를 들려주는 동안 아르고스의 눈이 모두 감겨졌다. 헤르메스는 아르고스의 목을 자르고 바위산 아래로 던져 버렸다. 헤라는 불운한 아르고스의 눈을 취하여 공작의 꼬리에 달아 주었다. 분이 풀리지 않은 헤라는 등에 한 마리를 보내어 이오를 괴롭혔다. 이오는 등에를 피해 세계 곳곳으로 떠돌아 다녔다. 그제서야 제우스는, 이오에게 마음을 주지 않겠노라고 헤라에게 약속하고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역시 헤라의 질투심에 불을 지른 칼리스토는 곰으로 변하게 된다. 무시무시한 곰이 된 칼리스토는 자신이 곰이라는 것도 잊고 짐승들을 만날 때마다 도망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나온 자신의 아들 아르카스를 만난 칼리스토가 반가움에 아들을 안으려고 하지만, 깜짝 놀란 청년은 창을 들어 곰을 찌르려고 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제우스는 둘을 멈추게 하고 하늘로 끌어와 <큰곰>, <작은곰> 별자리로 하늘에다 붙박았다. 이에 분개한 헤라는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와 테티스 부부에게 큰곰, 작은곰 자리가 바다에 드는 것을 금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요청은 받아들여져 큰곰, 작은곰 자리는 하늘을 돌 뿐, 다른 별자리와는 달리 밤이 되어도 바다 속으로 가라앉지 못하게 되었다.


헤라의 질투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다. 레토는 제우스의 새로운 연애상대가 되어 자식들을 잉태하게 된다(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들이 바로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신 ‘아르테미스’다). 그때 헤라는 질투와 분노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부르르 떨면서 레토에게 저주를 내렸다. “이 세상에 해가 비치는 장소에서는 레토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신은 물론 인간들도 레토의 출산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 만약 레토를 도왔다가는 헤라에게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해가 들지 않는 장소라면, 어두운 땅 밑 정도가 될 것이다.


레토는 임산부의 모습으로 그리스 전역을 떠돌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헤라의 보복이 두려워 몸이 무거운 레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레토는 안식의 땅을 찾아 그리스 전역을 헤맸지만 출산에 임박해서도 몸을 눕힐만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피곤이 극에 달해 걷는 것조차도 힘들던 레토가 도착한 곳은 리키아. 어디선가 사람들의 흥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겹게 기어서 그곳까지 가니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었다. 그리고 샘 주위에서 농부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레토는 그들에게 갈증이 나니 물을 좀 달라고 했지만, 농부들은 들어주지 않았다.


“거기 초라한 몰골의 여인이여, 그 물은 마실 수가 없다오!”


“왜 그렇지요?”


“그대만 마실 수 없다오. 이 샘은 우리들의 것이라서 다른 곳에서 온 자가 입을 대면 샘이 오염된다오. 그대의 마을로 돌아가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구려.”


“맞습니다. 저는 다른 곳에서 왔습니다. 하지만 목이 마르니 제발 물을 주십시오. 갈증이 나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농부들은 샘으로 뛰어들어 물을 혼탁하게 만들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레토는 갈증을 잊어버릴 만큼 큰 분노를 느꼈지만, 곧 농부들의 비굴함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가여운 농부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샘물에서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원망하려면 헤라의 질투를 원망하십시오.”


샘 속에 뛰어든 농부들의 몸이 점점 작아지더니 입이 옆으로 찢어졌다. 모두 개구리로 변해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