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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가 아끼던 헤라클레스를 향한 저주는 계속되고…

제주한라병원 2013. 5. 29. 13:33

역사 속 세상만사 - 헤라의 질투와 분노 Ⅰ -
제우스가 아끼던 헤라클레스를 향한 저주는 계속되고…

 

지난 호에서는 카사노바도 울고 갈 제우스의 바람기와 그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여 수많은 스캔들을 만들어냈던 신화를 살펴보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부인인 헤라의 질투와 분노 역시 남편의 바람기 못지않게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다. 제우스의 스캔들과 그 속에서 묻어나는 헤라의 분노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헤라는 라틴어로는 주노 혹은 유노(juno)이며, 영어로는 June 즉 6월이다. 6월의 여신이니 참으로 풍요롭기 그지없는 이름인데, 그녀는 자신이 풍요롭다고 상정한 결혼을 위해 자신의 풍성한 에너지를 다 써야할 운명이다. 헤라는 매일매일 처녀로 태어난다는 뜻으로, 새로 순결해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헤라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로, 제우스의 누나이자 동생이자 아내이다.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신이 아버지 우라노스를 죽인 것처럼 자기자식들에 의해 죽음을 맞을까봐 두려워 아내 레아가 자식을 낳자마자 먹어 치운다. 어머니 레아는 자식들을 낳자마자 먹어치워 버리는 남편의 눈을 속여 막내아들 제우스를 빼돌려 키운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성장한 제우스는 예언대로 아버지 크로노스를 죽이고 아버지 뱃속에서 자신의 형제들을 구출해내는데 그 형제들 가운데 헤라도 있었던 것이다.


헤라는 아리따운 처녀로 자라나게 된다. 그런데 다른 여자보다는 자기 의지가 강하고 보수적이었던 탓에 헤라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다른 여자들한테 갈 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가야 함을 깨달은 제우스는 황소, 백조, 독수리, 구름, 황금비로 변신했던 전력에서 벗어나 이번엔 처량한 뻐꾸기로 변신한다. 헤라의 모성애를 자극하기 위해 비바람까지 흩날리게 해 영락없이 한 마리 애처로운 뻐꾸기가 되어 헤라의 창가로 날아든 것이다. 비에 흠뻑 젖은 뻐꾸기를 헤라가 가슴에 품자 제우스는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며 그녀를 겁탈하려 한다. 그러나 헤라는 결혼을 약속하지 않으면 절대 몸을 허락할 수 없다며 끝까지 저항한다. 제우스는 조강지처로서는 그녀가 내심 맘에 들었던지 그녀와의 결혼을 약속하고 만다. 이것이 헤라가 바람둥이 제우스의 아내가 된 스토리다.


결혼 뒤에도 제우스의 애정 행각은 멈추지 않았고, 헤라의 해바라기 인생이 시작된다. 제우스는 헤라가 신성시하는 결혼을 번번이 모욕하고 어지럽힌다. 특히 바람피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다른 여인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끔찍하게 편애함으로써 헤라를 더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제우스와 애첩들 사이에서는 그리스 신화 최고의 신들을 태어난다. 아폴론, 헤르메스, 디오니소스, 아테나, 아르테미스 등 이름만 들어도 멋진 소위 ‘엄친아’들이다. 이에 비해 헤라가 낳은 자식은 아레스, 에일레이티이아, 헤베, 에리스, 헤파이스토스 등 애첩들이 낳은 자식들에 비하면 격이 많이 떨어진다. 헤라가 애지중지하는 아들 아레스만 해도 전쟁의 신이기는 하지만, 정작 지혜로운 전쟁은 아테나가 관장하고, 아레스는 불필요하고 무모한 전쟁의 신이 됐다. 게다가 아테나를 혼자서 낳은 제우스에 복수하느라고 헤라가 혼자 아이를 낳은 것이 올림포스 최대의 추남 헤파이스토스이니 참 안타까운 노릇이다. 결국 헤라가 낳은 자식들은 제우스가 애첩들로부터 낳은 자식에 비해 인물이나 행색, 지혜에서 한참 부족했다.


헤라로서는 어떻게든 자기 가정을 지켜내는 게 급선무였다. 그리고 제우스가 바람 피우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 자기 자식들에게 배다른 형제들을 안겨주지는 말아야겠다는 데에 생각이 이른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 스토리가 바로 영웅 헤라클레스에 관한 것이다.


제우스는 정숙하기로 소문난 유부녀인 알크메네를 그녀의 남편 암피트리온의 모습으로 변신, 유혹하여 동침에 성공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암피트리온도 그날 밤 알크메네와 동침한다. 그렇게 탄생한 쌍둥이 자식이 헤라클레스(제우스의 아들)와 이피클레스(암피트리온의 아들)다. 제우스는 이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의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태어날 아들에게 돌아갈 헤라의 분노를 좀 누그러뜨리려고 마련한 제우스의 꼼수였을까?


헤라클레스는 태어나면서부터 힘이 장사였다. 제우스는 그런 헤라클레스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고자 잠든 헤라의 젖을 물리게 된다. 어미인 인간의 젖보다는 헤라의 젖을 물리면 신과 같은 위력을 지닐 것이라 본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젖을 빠는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헤라는 놀라서 깨어났고, 젖에서 입을 떼었지만 남은 젖이 뿜어져 나왔다. 이것이 바로 ‘젖의 길(via Lactea)’ 즉 우유를 뿌려놓은 것 같은 은하수(銀河水)의 탄생이다. 그리고 지상에 떨어진 젖 방울들은 백합이 되었다. 백합은 결혼하는 신부의 부케로 쓰이는데 결혼과 일부일처제를 관장하는 여신 헤라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로 헤라의 분노가 누그러들지는 않았다. 헤라는 제우스가 바람 피워 나은 아들 헤라클레스를 죽이려고 모략을 꾸민다. 헤라는 헤라클레스가 태어난 지 9일 째 되던 날, 요람에 독사 두 마리를 풀어놓았다. 그러나 젖먹이 헤라클레스는 괴력을 발휘해 독사를 목 졸라 죽이고 위기를 벗어난다.


하지만 헤라의 저주는 멈추지 않았다. 청년이 된 헤라클레스는 테바이의 왕 크레온의 딸과 결혼해 세 자녀를 얻게 되지만 헤라의 계략에 빠져 실성한 아내와 자식들을 제 손으로 죽이게 된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죄를 씻을 신탁을 받기 위해 델포이로 향했고, 12개의 과업을 부여받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한번 다루어 볼 예정이다.


아무튼 헤라의 분노와 복수는 이처럼 살벌하고 잔인했다. 여성의 분노가 오뉴월 서릿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화인 셈이다. 다음 호에서 헤라의 분노를 좀 더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