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도우면 내가 좋아집니다
남을 도우면 내가 좋아집니다
29년전 로스에인절스 올림픽에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척수손상을 입고 그곳 병원에서 5개월 가량 치료하고 귀국한 후 다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까 막막했습니다. 걷지 못하고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직장생활은 물론 모든 게 두려웠습니다. 병실에 많은 인척들과 친구, 지인들이 찾아왔지만 말하기도 금세 귀찮아졌고 심지어는 짜증이 났습니다.
그러던 중 물리치료실에서 오전 오후로 운동을 할 때 저처럼 휠체어를 탄 젊은 친구가 가끔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연세대 아이스하키 선수로 훈련 중 다른 선수와 몸을 부딪치며 링 벽에 튕기면서 척수손상을 입은 이성근 씨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어찌나 명랑하게 잘 떠들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지 저도 덩달아 기운을 차리고 운동치료에 적극적으로 매달리게 됐고, 운동을 하면 조금이라도 생활하기가 편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 달 후 퇴원한 다음 자신감을 얻고 한국일보사에 다시 출근을 하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두세번씩 그곳 물리치료실에 들러 운동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새로 만나는 입원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불편한 점과 개선할 점 등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는 동료들과 한국척수손상연맹을 결성하고 일을 하면서 병원을 방문해 같은 형편의 장애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하게 됐습니다. ‘의사 말보다 같은 처지의 장애인의 이야기가 귀에 쏙 들어온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제 딴에는 다른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했지만 지내고 보니 무엇보다 저 자신이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됐고 생활에 적응하게 된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 미국 MD 앤더슨 병원 종신교수로 근무하는 김의신 박사의 ‘암 이야기’가 보도됐습니다. 그곳 핵의학(Nuclear imaging) 센터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나이 지긋한 신사는 자원봉사를 하는데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검사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암 환자들의 손을 잡아주고 얘기를 들어주며, 기운 없는 환자가 검사받으러 들어갈 때 옆에 붙어서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그도 몇 년 전에는 암 환자로 암을 이겨낸 암 생존자(Survivor)였습니다.
MD 앤더슨 암센터에는 이런 자원봉사자가 1,600여명 활동하는데 대부분이 암 생존자들이라고 합니다. 병원이 자원봉사자들에게 주는 특혜는 주차비만 면제해 주고 유니폼을 지급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점심도 자기 돈으로 사 먹습니다. 병원 내 식당의 밥값은 다른 곳보다 1.5배 정도 비싸나 그래도 사람들은 별 불만이 없습니다. 식당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이 병원에 기부되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도 자원봉사를 열심히 하는데 한 변호사는 휴일마다 휴대전화를 한 개 더 들고 병실을 돌아다니며 암 환자들에게 통화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지금 전화하라며 ‘휴대폰 대여’ 봉사를 합니다. 음악가는 병원 로비나 환자 대기실에서 모차르트 곡을 연주하고, 치유의 노래를 불러줍니다. 병원의 한 여의사가 사정이 딱한 중증 장애 어린이를 입양해서 키우기도 합니다. 자가용 비행기를 소유한 부자들은 비행기 무료 대여 봉사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착한 행동을 보면 스트레스가 줄고 면역력이 증가하는 현상을 ‘테레사 효과(Mother Teresa’s Effect) ’라고 합니다. 유고 태생의 테레사 수녀는 1940년대 말 영국의 식민 통치가 끝나가던 인도가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을 때 가난하고 병든 사람과 버려진 어린이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봉사를 하고 ‘사랑의 선교수녀회’ 를 설립해 나눔과 봉사의 의미를 일깨워줘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분입니다.
1998년 미국 하버드 의대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테레사 수녀처럼 남을 돕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우리 몸 속에 있는 병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항체가 생겨 면역기능이 크게 향상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처럼 남을 돕는 일을 하거나 그 분의 돕는 일을 보고 감동을 받기만 해도 자연치유능력이 증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를 내거나 남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저주하는 부정적이 생각을 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로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지며 나쁜 콜레스테롤이 증가하며 면역세포의 수가 줄어듭니다. 반면에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면 뇌에서 상응하는 호르몬이 분비돼 세포의 기능이 좋아지고 자연치유력도 최고 상태가 됩니다. 직접 운동을 하면 몸 상태와 치유능력이 좋아지지만 남이 하는 경기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성원하면 역시 비슷한 효과를 냅니다. 야구장 등에 가서 신나게 응원하는 것도 좋다고 최근 KBS 스포츠에 소개되더군요.
긍정심리학 분야를 개척한 마틴 셀리그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작년에 낸 책 <번성하라>에서 어떤 동료 교수의 소년시절 추억담 하나를 소개합니다. 소년이 무슨 일인가로 잔뜩 기분을 상하고 풀이 죽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때면 엄마가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얘야, 너 오늘 영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구나. 그럴 땐 어떻게 하는지 알지? 얼른 나가서 누구든 다른 사람을 좀 도와줘 보렴.” 엄마의 그런 ‘기분전환법’을 들으며 자란 소년은 지금 대학에서 의료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한 말은 “우리 아들 기분이 영 말이 아니구나. 어디 가서 맛좋은 것 사줄까?”나 “우리 구경갈까?”도 아니고 “나가서 누구든 다른 사람을 좀 도와주고 와 보렴”이었습니다. 남을 도우면 내가 낫는다는 것을 엄마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 치유법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통하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학문적으로’ 풀어보기 위해 그 교수는 그 치유법의 효과 유무를 엄밀한 과학적 실험에 붙여 검증한 결과 그 엄마의 방식이 옳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엄마의 소박한 지혜를 바탕으로 그 교수는 긍정심리학이라는 새 학문 분야를 개척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라고 했고 공자는 “네가 흥하고 싶으면 남부터 흥하게 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