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음악과 시가 흐르는 예술의 도시

제주한라병원 2013. 4. 29. 09:55

음악과 시가 흐르는 예술의 도시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

 

 

부다 왕궁에서 내려다 본 부다페스트 시내 전경.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에 의해 왼쪽이 부다지구이고 강 건너가 페스트 지구이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부다페스트는 ‘다뉴브의 진주’,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예술적 향기가 가득한 헝가리의 수도이다. 인구 220만의 부다페스트는 시인의 노래처럼 슬픔도 있지만 리스트 프란츠의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 같은 로맨틱한 낭만도 있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부다페스트는 슬픔과 절망의 도시가 되기도 하고, 기쁨과 희망의 도시가 되기도 한다.


다뉴브 강으로 서쪽의 부다 지구와 동쪽의 페스트 지구로 나뉜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정치, 문화, 경제, 학문 등의 중심지이다. 아름다운 다뉴브 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부다 지구는 13세기 이래로 헝가리 왕들이 거주했던 부다 왕궁과 부다페스트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가 된 마챠시 교회를 비롯한 역사적 유물이 많은 곳이다. 반대로 강 건너편에 위치한 페스트 지구는 중세시대 때부터 상업과 예술이 발전한 곳이다.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두 개의 지역에 란츠히드 다리가 놓이면서(1848년) 부다와 페스트는 하나의 지역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873년에 이르러 세체니 이스트반 백작에 의해 두 개의 지역은 하나의 도시로 탄생했다.


여행은 바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다뉴브 강변에서 시작된다. 두 개의 지역을 연결한 란츠히드 다리에 서면 다뉴브 강과 부다 왕궁 그리고 국회의사당 등의 고색 찬연한 건물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노란색의 전차가 강을 따라 달리고, 강변에는 연인들이 뜨거운 키스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 흐르는 강물 위로 하얀 유람선이 미끄러져 나가고, 강 옆의 벤치에 앉은 노부부는 강물을 바라보며 지나온 삶을 회상하기도 한다.

 

다뉴브 강위에 놓여 진 '세체니 란츠히드' 현수교는 1849년 영국인 클라크 앰덤에 의해 건축된 것이다. 

이미 해가 진 부다페스트는 낭만의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무대가 되었던 부다 왕궁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슴에 안고 150년이 넘은 란츠히드 다리를 건너 헝가리의 수도였던 부다 지구로 발을 옮기면 중세의 향기가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사실 부다 지구는 헝가리의 왕들이 거주한 왕궁과 귀족들이 머물던 가옥, 수백 년이 넘은 중세의 건축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중세시대 때는 이곳이 헝가리를 대표하는 수도였다. 장미의 언덕, 겔레르트 언덕, 자유의 언덕 등으로 유명한 부다 지구는 완만한 페스트 지구에 비해 야트막한 산과 언덕이 있는 곳이다.


높이 60m, 길이 1.5km의 부다 왕궁, 고딕과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마챠시 교회, 다뉴브 강을 굽어볼 수 있는 어부의 요새 등이 있는 부다 지구는 봄부터 가을까지 세계 전역에서 모여 든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 중에서도 부다 지구 여행의 중심이 되는 부다 왕궁은 다뉴브 강과 울긋불긋한 중세의 건축물을 조망할 수 있어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이다. 물론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부다 왕궁의 기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 속에서 부다 왕궁이 흘린 눈물 때문이기도 하다. 부다 왕궁에 살았던 헝가리 왕가 사람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소련제 탄환에 비명횡사한 소녀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다.


유목민이었던 마자르인이 세운 헝가리 왕국은 중세시대부터 타민족의 침략으로 많은 상처와 시련을 맞아야 했다. 지금의 부다 왕궁이 세워진 것도 13세기 때 벨라 4세 왕이 몽골의 습격을 피해 부다 지구에 새로운 거처를 만들고자 왕궁을 지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다뉴브 대평원에서 몽골이 사라진 후 헝가리는 약 300년 동안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해 문화․경제면에서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다. 이때 부다페스트는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성장한다. 하지만 16세기 때 오스만 투르크족과 벌인 모하치 전투에서의 참패로 150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면서 쇠퇴했다.

 

13세기에 건축된 고딕양식의 마챠시 교회는 부다 지구의 상징이다.

마자르인 특유의 근성으로 투르크족의 지배를 벗어날 즈음 다시 헝가리는 150년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으면서 다시 자신의 정체성을 묻어야 했다. 19세기 중엽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의 극적인 대타협을 통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으로 다시 탄생하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헝가리는 돌이킬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그러나 마자르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타민족과 투쟁해 지금까지 헝가리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보낸 부다 왕궁을 둘러보고 나면 부다 지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챠시 교회와 19세기 다뉴브의 어부들이 적군을 막기 위해 세운 어부의 요새가 여행자를 기다린다. 이슬람의 코란이 150년 동안 울려 퍼졌던 마챠시 교회는 13세기 때 건축되기 시작해 15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역대 헝가리 왕들의 대관식이 행해진 이유로 ‘대관 교회’라는 별칭도 얻었다. 교회에서 강변 쪽으로 몇 십 미터를 이동하면 탁 트인 다뉴브 강과 어부의 조국애가 스며있는 어부의 요새가 나타난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다뉴브 강과 페스트 지구가 연출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한다.


부다 지구가 헝가리의 역사와 함께 해온 왕궁을 비롯한 고풍스런 건축물들로 여행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페스트 지구는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의 향기가 거리 곳곳에 스며있어 부다 지구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페스트 지구는 그야말로 헝가리 예술을 대표하는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등 다양한 예술 공간이 많은 곳이다. 300여 개의 크고 작은 관현악단이 일 년 내내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 페스트 지구는 클래식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헝가리가 150년 동안 합스부르크가에 지배를 받는 동안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에서 비엔나 다음으로 클래식의 메카가 되었다. 비엔나에 비해 음악적 수준이 절대 뒤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부다페스트의 장점이다. 몇 십 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3중주 공연 등은 대형 오페라 하우스에서 음악을 듣는 것보다 더 큰 생동감이 넘친다. 악기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선율과 지그시 눈을 감고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숨소리까지도 느낄 수 있는 작은 콘서트는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일 것이다.


음악이 시가 되고, 시가 한 폭의 그림이 되는 부다페스트는 ‘다뉴브의 진주’라는 별칭이 잘 어울리는 도시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자르인의 민속춤 공연을 보게 되면 헝가리 문화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부다페스트에는 관현악단의 수만큼은 아니어도 헝가리 민속춤을 공연하는 극장이 많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에 맞춰 춤을 추는 집시의 자유로운 영혼을 만날 수 있는 헝가리 춤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스페인의 플라멩코보다 더 정열적인 춤이 바로 헝가리의 민속춤이다.


아시아인의 피가 흐르는 마자르인의 춤은 우리의 신명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빠른 템포, 현란한 동작, 경쾌하면서도 한이 서려있는 이들의 춤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가죽신발을 신은 남자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펼치는 공연은 마자르인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문화체험이 된다. 2시간 남짓, 공연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행복이 가득하다. 그만큼 이들의 민속춤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헝가리의 영혼과 정서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