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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간호사의 병실일기-힘든 상황에서 서로 협력하며 슬기롭게 대처

제주한라병원 2012. 12. 14. 13:52

<수간호사의 병실일기>

힘든 상황에서 서로 협력하며 슬기롭게 대처

 

저는 응급병동에 들어온 지 7개월 된 신입간호사입니다. 저희 병동은 특정 진료과 구분 없이 다양한 질환의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습니다.


출생한지 몇 개월 된 소아, 내과환자, 사고환자, 수술환자 등 다양한 환자를 접하면서 처음에는 업무를 익히기가 두렵고 막막하기만 했는데 점차 환자를 간호하는 눈이 생기면서 일에 대한 설렘과 자신감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응급병동은 입원 환자들 체류기간이 길지 않아서 환자와의 관계가 친숙해질까 싶으면 전실 보내게 되다보니 입원에서 퇴원까지 간호해볼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서운할 때도 있지만 다시 새로운 환자들을 만나서 생동감 있는 간호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응급병동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응급병동의 좋은 점을 자랑하자면 휴무 후에 근무하여도 대부분 새로운 환자이기 때문에 그동안의 환자 경과를 파악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지 않아 업무에 대한 중압감이 덜하고 응급 상황 시 CT 및 X-ray 촬영은 예약 필요 없이 곧바로 찍을 수 있습니다. 또한 타 병동으로 전실 시 환자 인수인계를 함에 있어서 재원일수가 짧기 때문에 인계할 내용 파악이 용이해서 인계시간이 단축되고 있어서 참 좋습니다.


입원과 전실이 잦은 병동이라 빠르게 돌아가는 병동 업무에 적응이 잘 안 돼서 선배에게 꾸중을 듣기도 하고 나 스스로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미안함 때문에 ‘왜 이것밖에 못할까?’ 하면서 자책하다보니 어느새 점차 응급병동에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제가 업무에 더 익숙해지고 후배 간호사도 생기고 그러면 신규라는 이름으로 익혔던 업무들이 내 것이 되어있을 것이고 또 다른 업무를 익히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간들 속에서 간호사라는 소명감도 커져가는 거라 여기면서 짧지만 응급병동에서 있었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올 여름 태풍에 배가 전복돼서 응급병동에서 입원 치료 받은 후 본국으로 귀국한 중국인 일행 중 유독 한분이 생각납니다. 23살의 그 청년은 뇌 좌상과 머리에 상처가 있어서 붕대를 감고 있었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와는 통역 없이는 전혀 대화가 안 되었으며 타국에서 사고를 당해 몸과 마음이 힘들었을 텐데도 간호사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와 몸짓과 표정으로 말하곤 하였습니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환자인데도 밝은 표정으로 늘 먼저 인사하며 더 많이 아픈 다른 환자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식사를 챙겨주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에게는 ‘내 몸도 아프지만 나보다 더 힘든 누군가를 먼저 배려하고 있구나’ 하는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응급병동에 입원하는 환자들은 간호사의 집중적인 간호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간호사의 친절한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에 환자와 보호자가 위로받기도 합니다. 나 중심이 아닌 상대방 입장에서 내가 먼저 배려하면 간호사와 환자, 보호자 모두 서로 존중하게 되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하고 그 중국인 청년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간호업무만으로도 시간에 쫓겨서 힘든데 가끔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 환자나 보호자들의 과도한 요구사항에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도 있습니다.


두달 전 60대 환자분이 입원했었는데 병원이 자기 집 인양 마음대로 들락날락하고 속옷차림으로 온 병동을 돌아다니면서 소리 지르고 직원에게 위협하면서 업무를 방해하는 등의 난동이 있었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근무를 하면서도 얼굴은 나도 모르게 찌푸려져 있었고 말은 퉁명스러워지고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는 것 같지 않아 짜증이 났습니다. 일부 환자나 보호자들은 병원이 왜 이러냐하며 불만을 토로 할 때는 왜 내가 간호사를 했을까하는 마음이 들면서 속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였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는 나 혼자인 것처럼 느껴졌던 일들이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동료간호사, 안전요원, 원무과 직원, 간호부, 친절한 환자나 보호자분 등 많은 분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협력해서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함께 해주는 좋은 분들이 많이 있어서 간호현장은 다시 생동감이 살아남을 느꼈습니다.   <81병동 간호사․오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