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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간호사의 병실일기-그녀는 말했다 "VIP 병동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주한라병원 2012. 12. 13. 16:00

수간호사의 병실일기

그녀는 말했다 "VIP 병동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주한라병원에서도 102병동은 우울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 창밖을 내다보면 “와~~~”하는 탄성과 함께 눈이 즐거워지고 탁 트인 바다에 황혼이 물들어가는 광경을 보게 되는 날이면 행운이 찾아온 것 같은 행복한 예감에 웃음 짓게 된다.


VIP병동은 쾌적함과 조용함, 그리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내 집처럼 편안하게 기거하며 치료받을 수 있는 병동이다. 특히 특실은 넓은 응접실, 조리시설까지 서울의 그 어느 VIP병실 못지않는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한눈에 푸른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은 특히 타도에서 입원하는 환자들이 감탄을 하는 제주도 어느 병원도 따라올 수 없는 곳이다.


또한 간호사들은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환자들을 가족처럼 간호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과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다. 


VIP 환자가 입원을 하게 되면 의료인들이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VIP 신드롬이다. 이 말은 잘 해주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잘 해주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부담감이 생겨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수술하는 것도 꺼려하고 주사를 놓을 때도 가족은 다른 간호사에게 부탁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들도 ‘잘 해드려야지, 불편한 것이 없게 해 드려야지’하고 생각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어느 날 우리에게 찾아온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하루는 열심히 퇴원과 입원 환자를 받으며 일하고 있을 무렵 잘 아는 지인이 입원을 하게 되었다.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하며 웃음으로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치질 수술이라는 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이너 수술이었다. 과장님 역시 별 다른 문제없이 수술하고 2박3일이면 퇴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수술하고는 병실에 오자마자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하며 너무 좋아하였다. 그런데 몇 시간 후 환자는 오심과 두통, 어지러움을 호소하였다. 마침 환자는 통증 조절을 위해 자가 통증 조절장치를 달고 있었다. 이 장치는 대개 큰 수술을 받는 환자들에게 통증 조절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작은 수술에는 하지 않으며 부작용으로 어지러움, 오심, 구토 등이 발생한다. 그런데 VIP환자라고 마취과에서 아프지 말라고 신경써서 해 준 것이었다. 결국 얼마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제거해야만 했고 그 후에도 두통과 어지러움이 계속되어 CT 검사를 하는 등 호들갑을 떨게 되었다. 물론 검사결과는 정상이었다. 수술한 부위 통증보다는 다른 곳의 불편함으로 인하여 환자는 힘들어 했고 입원기간 또한 훨씬 길어졌다.


며칠이 지나 퇴원하면서 VIP라고 좋다고 해서 모든 걸 다해 주면 안 될 것 같다며 집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게 VIP신드롬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조금은 더 잘해주고 싶고,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들게 하고 싶은 게 우리의 마음이었는데…. 그래도 며칠 후 그동안 말 못하는 고통에서 벗어나 밝은 모습으로 열심히 생활하는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폐암을 앓고 있는 환자가 VIP병동에 입원을 하였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는데 전신이 쇠약하고 식사도 잘 못하시는데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어떤 처치를 하거나 말을 하여도 언제나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보통 VIP 환자들은 자기가 최고 인양 특별한 대접 받기를 원하고 치료에 협조도 잘 안 하는데 그분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감사의 표현을 하였다. 그런 그 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용한 방으로 옮겨드리고 정성을 다하여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뿐이었다.
며칠 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퇴원하게 되자 빠른 퇴원 수속을 부탁하였으나 왠일인지 빨리 진행이 안 되어 알아봤더니 이상하게 이 환자의 자료만 전산으로 모아지지 않아 퇴원진행이 안 되고 있다고 하였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집으로 귀가한 후 오후에 보호자분이 내원하여 퇴원 수속을 하였다. 힘들어도 항상 웃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환자였는데…. 항상 따뜻한 기운으로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VIP 신드롬’
영원한 수수께끼다~~~


그래도 우리는 신드롬 따위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의 목표 ‘기분 좋은 병동, 내 집 같은 병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금도 우리 예쁘고 친절한 102병동 간호사들은 자신 있게 말한다.


“VIP병동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강신숙·102병동 수간호사>